환절기 감기는 몸의 대청소 신호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병을 가이드 하다

"어! 원장님도 감기 걸리셨나봐요?"
"네~ 그럼요. 저도 사람인데요."

얼마 전 십 수년째 비염이라며 내원한 환자가 잠긴 제 목소리를 듣고 약간은 신이 난 듯 물었습니다. 말 속에 왠지 '의사가 돼서 감기에 걸리냐?'는 작은 가시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 또한 살아 있으니 아프고, 또 언젠가는 죽는 존재지 않겠냐며 그 가시를 웃으며 넘겼습니다.

아마도 40대가 되면서 생긴 일 같은데, 일 년에 두 번, 2~3일 정도를 앓고는 합니다. 보통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다 싶을 때, 그리고 '꽤 추워졌네'라는 느낌이 들 때쯤 그런 순간이 찾아옵니다. 마침 주말과 겹치면 하루 날 잡아 집중해서 아프고 말지만, 주중에 아프면 일을 해야 하니 시간이 좀 더 걸립니다.

이번에도 어느 날 저녁 목이 갑자기 칼칼해 지기 시작한 데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아~ 올해는 이제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도 혹시 몰라 따뜻한 허브티를 한 잔 마시고 양치를 하고 소금물로 가글을 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도 비슷한 정도의 증상이 있었습니다. 평소보다 물을 좀 더 마시고, 하루 한잔 마시던 커피 대신 허브차를 마시고 식사량을 좀 줄였습니다.

일과를 마치고 귀가할 무렵이 되자 목의 통증 정도가 심해지고 콧물이 차는 느낌이 들더니, 몸의 여기저기에 근육통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제 몸이 드디어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한 것이지요. 저녁 식사를 가볍게 하고 근육의 긴장을 푼 뒤, 혈액순환을 돕는 한약과 목과 코의 염증 반응을 개선하는 한약을 먹고 일찍 잠을 잤습니다. 새벽녘에 잠이 깨서 몸 상태를 점검해 보니 그야말로 전면전 상황이었습니다. 몸살 기운은 심해지고 목은 아프고 콧속에서는 진득한 콧물이 만들어지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코를 풀어보니 진득한 덩어리 콧물이 뭉텅 나왔지요. 몸의 60%가 물이라는 게 실감났습니다. 목과 코의 염증반응을 개선하는 약을 따뜻한 물에 타서 마시고 배에 뜨거운 물주머니를 대고 다시 잠에 들었습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코를 풀었습니다. 아직 끈적한 느낌은 있지만 새벽녘보다 점도가 떨어지고 색도 연해졌습니다. 다만 아직 양은 많았지요. 근육통 역시 줄어들기는 했지만 남아 있었습니다. 체온은 37도를 조금 넘는 정도였지요. 이마의 중앙과 광대뼈 주위에 열감이 느껴지고 콧물이 자주 생기는 것으로 보아 비강과 부비강의 일부에서 염증반응이 지속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공간의 소통을 돕고 근육통을 풀어내는 한약을 복용한 후 근무했습니다. 일하는 도중에는 따뜻한 물과 허브티를 자주 마셨습니다. 저녁쯤이 되자 전반적인 증상들이 나아졌습니다. 아직 지속됐지만, 콧물의 색과 점도는 연해졌습니다. 체온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맥을 짚어 보니 약간 에너지 수준이 떨어졌습니다만, 괜찮았습니다. 저녁 식사를 가볍게 하고 에너지를 보충하는 약과 비강으로의 순환을 돕는 약을 먹고 잠 들었습니다.

다음날 일어나니 몸은 개운하고 피부도 왠지 좀 더 맑아진 듯한데 맑은 콧물이 흘렀습니다. 마지막 정리가 남은 셈입니다. 그래서 에너지를 보충하는 약에 염증반응의 부산물을 제거하는 약을 함께 복용했습니다. 오후가 되자 거의 모든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그리 자랑스러울 것이 없는 일련의 과정을 장황하게 이야기 한 까닭은 병을 다루는 방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일 년에 두 차례 찾아오는 이 증상을 몸이 일으키는 일종의 자정반응이라 여깁니다. 평소 관리를 잘 한다고 해도 완벽할 수 없고, 신체의 나이 때문에 새는 부분이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쌓여 물통의 물이 넘치면 한 번씩 몸살을 겪으면서 대청소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니 불편한 증상을 무조건 없애기 보다는, 그것이 더 심각한 상황으로 빠지지 않도록 조절하는 게 중요합니다. 일상에 약간의 불편함을 겪는 수준에서 제 몸이 그 과정을 충실히 겪어내도록 돕습니다.

이렇게 짧게는 하루 이틀, 길게는 사나흘 앓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몸과 환자들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이 일련의 과정을 잘 마치면 몸도 마음도 뭔가 정리되고 가벼운 느낌이 듭니다. 우리 몸이 청소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스스로 외부의 바이러스를 끌어들여 몸살을 일으킨다는 일각의 주장이 있는데, 일리가 있다 생각되지요. 만약 초기에 그냥 강한 약으로 이 반응을 눌러 버렸다면 이런 이익을 얻지 못했을 겁니다. 오히려 자신의 의사 표현을 묵살당한 우리 몸은 다른 형태로 더 강하거나 비뚤어진 형태의 주장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병의 증상을 관찰하면서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은 제 몸이 그 과정을 버텨낼 만했기 때문입니다. 조그만 불에도 전소全燒의 위험이 있는 상태였다면 다른 전략을 짜야 했겠지요.

저의 트위터 아이디는 healthguider입니다. 우리 몸이 본래 가지고 있는 치유력을 회복하고 병의 길을 잘 터주면 스스로 낫지 않을까? 건강이나 병은 고치는 것이 아니라 잘 가이드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지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쉽지 않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 발화한 산불이 지난 후 새로운 숲이 생겨나는 것처럼, 어떤 병이 생기고 그것을 내가 견딜 만하다면 잘 앓아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과 결과 모두에서 분명 새롭게 얻을 것이 있겠지요. 물론 옆에서 가이드 해 줄 누군가가 있다면 더욱 좋을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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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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