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존재다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파블로 카잘스의 생애에서 배우기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을 지나 겨울에 접어든다는 입동이 가까운 요즘, 진료를 마칠 무렵이 되면 어느덧 한밤중과 같은 어둠이 내립니다. 그래서 환자도 직원도 다 가고, 텅 빈 진료실을 정리 할 때면 한 해가 이렇게 지나는 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됩니다.

퇴근길, 즐겨 듣는 라디오 채널에 주파수를 맞추니 파블로 카잘스에 관한 일화가 소개됩니다. 전 세계가 인정한 첼로의 대가이면서도 96세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연습을 했다고 알려진 카잘스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와의 인연으로 유명합니다. 스페인의 한 악기점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200년 전의 악보를 발견한 13세의 카잘스는 그 순간을 하늘의 계시를 받은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고 하지요. 그 후로 그는 평생을 그 곡을 연습하고 연주했습니다. 지금 그 곡은 많은 연주가들에 의해 연주되고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곡이 되었죠.

라디오에서 소개된 일화는 그의 나이 90세 때의 일입니다. 그 나이에도 매일 몇 시간씩 연습하는 그에게 옆에 있는 스태프가 물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누구나 인정하는 첼로의 대가인데 왜 그렇게 매일 연습을 하시나요?"

그 질문에 파블로 카잘스는 이렇게 답했다고 하지요.

"요즘 실력이 좀 느는 것 같아."

93.1메가헤르츠의 주파수를 타고 약간의 잡음과 함께 들려 나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창밖의 어둠을 보며 얼마 남지 않은 올 해에 대한 멜랑꼴리에 빠졌던 마음에 번개가 칩니다. 그리고 '너는 도대체 뭐하는 인간이야!'라는 질문의 화살이 뇌와 심장에 동시에 날아듭니다.

줄어든 일조량과 짙어진 밤의 농도 탓인지, 저도 그렇고 요 사이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의 몸과 마음에도 가을빛이 짙습니다. 근육은 조금씩 더 침체되고 무거우며, 맥의 흐름에는 약간의 불안정함이 느껴집니다.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느라 애 쓰는 와중에 별 특별한 이유도 없이 자고 나면 몸이 아프기도 하지요. 감기는 이 시기의 단골손님이고요. 계절에 관계없이 일 년 내내 똑같이 사는 도시인들이지만, 그 속내는 자연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이와 함께 2019년이라 명명한 일 년이 지나간다는 인식은 지난 10개월을 되돌아보고, 더 나아가 자신이 살아온 과거의 시간을 자꾸 반추하게 만듭니다. 오늘 만난 한 환자는 매 순간 참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손에 쥔 바닷가의 모래처럼 모두 흘러가 버리고 남는 것은 아픈 몸뚱이 뿐이라고 하십니다.

그 분에게 카잘스의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다 산 것처럼 살면 지난 온 삶도 억울하고 앞으로 남은 시간도 재미가 없지 않겠냐고 말씀드렸습니다. 새로운 아침을 맞이했을 때 어제 읽다 잠든 소설의 다음 이야기처럼 아주 소소하더라도 기대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래야 뇌가 조금씩 새로워지고, 뇌가 새로워져야 몸이 천천히 늙고, 몸이 천천히 늙어야 병도 잘 생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절반 정도는 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했지요.

태어난 존재는 늙고 언젠가는 그 생명을 다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의 뇌는 죽는 날까지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크게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이룩한 문명은 이 변화의 가능성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요. 새로운 것에 도전해도 좋고, 카잘스처럼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심연을 개척해도 좋습니다. 그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의 성장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내 성장의 정점이 이른 그 날이 생을 다하는 날이라면 그 또한 멋진 인생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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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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