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 '혁신복음', 믿습니까?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산재·고용보험도, 퇴직금도 없는 ‘혁신형 일자리’?

여기 '혁신’적인 자동차 회사가 하나 있다. 이 회사는 다양한 사양의 자동차들이 모두 ‘주문생산’ 방식으로 제작해 주문자에게 인도한다. 물론 완전히 생소한 차를 만들어내는 건 아니며, 몇 가지 생산차종이 있고 거기에 다양한 옵션·사양이 추가되는 수준이다.

‘혁신’ 자동차 회사


이 회사의 공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은 이른바 ‘호출노동’을 하고 있다. 이 회사 IT 서비스팀이 개발한 스마트폰 앱을 설치한 뒤, 자신이 어느 날짜 어느 시간에 일할 수 있는지를 신청한다. 그러면 서비스팀은 날짜와 시간별 필요 인력을 계산하여 신청자들에게 작업시간을 배정한다.

이 회사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서 특별한 자격이 요구되지는 않는다. 그저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일해 본 경력이 있기만 하면 된다. 작업자들은 자신에게 배정된 작업시간 동안 온전하게 작업이 이뤄진 자동차 대수에 따라 차량 1대당 수수료를 지급받는다.

그럼 이 회사가 스스로를 ‘혁신’이라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자동차 회사와 달리 이곳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은 "자신의 근무시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 이 회사의 핵심 홍보 문구였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는 것이다.

▲ 이재웅 쏘카 대표. ⓒ연합뉴스

그렇기 때문에 작업자들은 평상시엔 다른 일자리를 갖고 있을 수도 있었다. 주로 일하던 직장에서 일하다 시간이 날 때를 따로 정해서 투잡, 쓰리잡처럼 이 회사의 공장에서 작업시간을 배정받아 돈을 벌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회사는 최근 ‘혁신’의 아이콘처럼 문재인 정부가 칭송하는 어느 모빌리티 업체와 많이 닮았다. 1종 면허만 있으면 이 업체의 기사 일자리에 지원 가능하고, 근무시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며 근무시간에 따른 수수료를 지급받는 시스템 아니던가.

‘혁신’이 책임지지 않는 것


다른 자동차 회사와의 차이점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우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다. 작업시간은 상호 합의 하에 정해지며, 시급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작업한 자동차 대수에 따른 수수료(100% 성과급)를 지급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 상 ‘근로자(노동자)’가 아니란다. 따라서 노동자라면 당연히 보장받는 기본적인 권리들에 대해 이 회사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4대 보험, 특히 일하다 사고가 나도 산재보험 적용이 안 된다. 당연히 퇴직금이나 최저임금 지급 의무도 없다.

연월차와 병가? 근무시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데 이걸 왜 보장해줘야 하나? 하지만 자동차 주문량이 몰리는 시기에 근무를 열심히 뛰어주지 않으면 일할 기회가 확 줄어들었다. 회사는 바쁜 시기에 일을 많이 한 작업자에게 작업시간을 우선적으로 배정했던 것이다.

조립과정에 문제가 생기거나 불량이 발생하면? 그 차량 조립에 대한 수수료를 떼이는 것은 물론이고 불량 정도에 따라 페널티도 작업자가 물어내야 했다. 작업자가 일하다 다쳐도 책임지지 않고, 자동차 품질과 불량에 대해서도 회사는 책임지지 않는다.

노동조합을 상대할 일도 없다. 이 작업자들은 ‘근로자(노동자)’가 아니니깐 노동조합을 만들 자격이 안 된다… 아니, 그렇다고 우길 수 있게 되었다!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최저임금법·사회보험 등 모든 책임으로부터의 자유! 동종사보다 차량 가격이 싼 데에는 바로 이런 비밀이 있었다.

이런 게 ‘혁신’인가요

그럼 대체 이 회사는 자신의 ‘혁신’을 뭐라고 강조할까? 우선 조립에 필요한 작업자들을 얻는 방식이 ‘스마트폰 앱’을 통해 이뤄진다. "작업시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혁신의 요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것만 갖고 혁신이라 주장하진 않는다.

고객이 다양한 사양의 자동차를 ‘선택’하면 곧바로 그 사양의 자동차 생산 시점이 결정된다. 해당 사양을 만족하는 각종 부품들에 대한 구매도 ‘인공 지능’에 의해 이뤄진다. 어떤 공정에서 어떤 부품을 장착해야 할지 ‘설계도’와 ‘순서도’가 인쇄되어 각 공정의 작업자에게 전달된다.

고객들은 자신이 주문한 자동차가 어떤 상태인지, 언제 조립되어 출고되는지, 어떤 부품을 어떤 작업자가 조립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스마트폰 앱을 통해 확인할 수도 있다. ‘자동화’와 ‘스마트’라는 단어가 이 회사의 홍보 멘트에서 수십 차례나 반복된다.

그런데 기껏해야 이런 수준이 ‘혁신’이란 말인가? 저 정도 스마트한 자동화는 기존 자동차 회사들도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어려운 기술도 아니다. 이들이 미래자동차에 투자하는 금액의 1%도 안 되는 돈만 들여도 당장 실현할 수 있는 기술들이다.

그런데 왜 안 할까? 자동차 생산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 산재사고와 불량 등은 모두 ‘제조업체의 책임’이지 작업자 개인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어떤 부품을 조립하느냐를 노출시키는 것은 프라이버시 법리에도 안 맞는다. 이건 ‘혁신’이란 이름으로 작업자들의 권리와 자유를 옥죄는 행위 아닐까?

혁신의 요체는 면책 특권

사실 이 회사만 그런 건 아니다. 요즘 ‘혁신’의 아이콘처럼 떠오르는 모빌리티 업체도 그렇지 않던가. 오밤중에도 배달을 해주는 음식업체와 배달업체들도 마찬가지다.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최저임금법·산업안전법과 사회보험 모두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지지 않고 있다.

그럼 소위 ‘혁신’적인 기업들이 이런 책임을 지지 않음으로 해서 얻는 이익은 얼마나 될까? 내친 김에 계산을 직접 해보기로 했다. 만약 이들 작업자들과 근로계약서를 체결할 경우 사용자로서 부담해야 하는 4대 보험료와 퇴직금 등이 얼마인지 말이다.

우선 이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함으로써 소위 ‘혁신’ 기업들이 얻는 이익의 최소치를 얻기 위해, 작업자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월 174만5150원)을 적용해 보았다. 그 경우 월간 지급해야 할 사회보험료 및 적립해둬야 할 퇴직 적립금을 계산한 뒤, 12개월을 곱해 연간 부담액을 구해보았다.


즉, 다른 자동차 회사의 경우 당연하게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사회보험료와 퇴직적립금만 계산해도 노동자 1명당 연간 400만 원에 육박한다. 이 노동자가 주40시간, 월 209시간만 일하고 월 급여 수준이 최저임금이라 가정하고 계산한 최소치에 불과하다. 만일 연장노동·야간노동·휴일노동이 추가된다면 사용자부담액은 이보다 훨씬 늘어난다.

‘혁신’ 자동차회사의 생산라인에는 약 2000개의 공정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매일, 아니 때로는 매시간 일하는 작업자가 달라질 순 있지만, 어쨌건 2000명의 작업자가 있어야만 자동차가 조립된다. 그렇다면 이 회사가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보험·퇴직적립금 규모는 연간 80억(작업자 1명당 400만 원)에 달한다. ‘혁신’의 비법은 바로 면책 특권이었던 것이다.

법인택시와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최근 ‘혁신’의 아이콘처럼 청와대와 정부 관료들이 칭송해 마지않는 모빌리티 서비스 ‘타다(TADA)’.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타다 베이직’에 2000대의 차량이 투입된다. 대부분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하는 이들 덕분에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VCNC와 모기업 쏘카는 연간 최소 80억 이상의 비용을 절감한다.

박재욱 VCNC 대표는 SNS를 통해 "평균수입이 160만 원이라는 정규직 법인택시기사와 같은 시간을 한 달에 일하면 300만 원 넘는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라고 주장한다. 만일 그가 밝힌 타다 기사의 월 평균 수익 액수가 사실이라면 VCNC가 절감하는 사회보험·퇴직적립금은 연간 200억에 육박할 것이다.

그 대신 타다 기사들은 일하다 다쳐도 산재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 잘려도 퇴직금 한 푼 없이 나와야 하며, 고용보험 적용이 안 되니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다. 직장의료보험이 아니라 지역가입자 신세가 되어 본인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 액수도 높은 편이다.

법인 택시의 월수입이 160만 원이라면 앞에서 계산한 최저임금액수와 거의 일치한다. 즉, 법인 택시는 기사 1명당 연간 400만 원의 사회보험·퇴직적립금을 부담하는 반면, 타다 서비스는 이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 법인 택시와는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일하다 다쳐도 산재보험을 포기한 대가, 퇴직금과 실업급여를 포기한 대가, 고용안정과 노조 할 권리를 포기한 대가로 월 300만 원의 평균 수입을 보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VCNC는 이걸로 법인 택시 시장을 잠식해 점유율과 독점을 강화하는 일석이조를 누린다면, 300만 원의 평균 수입은 자랑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안전을 포기할래, 노동자성을 포기할래?

"음주운전검사를 하는 것이 지휘감독이어서 문제라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이동수단을 운전하는 법인택시, 버스, 개인택시, 대리기사를 포함해 모든 운전자가 사전 음주운전검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것이 지휘감독이어서 불법이라고 말씀하시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VCNC 박재욱 대표의 SNS 글)

음주운전 검사는 ‘이용자 편익’을 위한 것인데 이걸 지휘감독으로 몰아붙여 기사들을 직접 고용하라고 하면 사업을 어떻게 하냐는 얘기이다. ‘직접 고용 하라고 하면 음주운전 검사도 하면 안 되겠네. 그럼 과연 누가 피해를 볼까?’ 이 정도면 거의 협박 수준이다.

"충돌 테스트를 하는 것은 고객의 안전을 위한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작업에 투입된 작업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좀 했다고 지휘감독, 불법파견이라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만일 ‘혁신’ 자동차회사의 사장이 이런 얘기를 하면 누구나 협박으로 받아들인다.

엔진 장착 공정, 백미러 조립 공정, 변속기 가공 공정에 대해서도 똑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기존의 자동차 회사와 똑같이 지휘·감독을 하면서도 그들을 노동자가 아니라 ‘프리랜서’로 둔갑시키는 길이 열린다. 이거야말로 현대‧기아차나 GM 자본가들이 원하는 ‘꿈의 공장’ 아닌가.

앞에서 사례로 든 ‘혁신’ 자동차회사는 비록 가상의 설정이긴 하지만, 타다 서비스를 혁신으로 포장하고 칭송하는 지금의 상황이 지속되면 언제라도 실제 상황이 될 수 있다. 사회보험도, 퇴직금도, 노동조합도 피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데 어떤 자본가들이 마다하겠는가.

"안전을 포기할래, 노동자성을 포기할래?" 이른바 ‘혁신’을 말하는 자본가들은 지금 이런 협박을 쏟아내고 있다. 우리가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하는가. 안전도 포기할 수 없고, 노동자성도 포기할 수 없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하면 그 대가는 노동자가 치르거나 시민들이 치른다. 다시 말해 자본가들이 치러야 할 대가를 사회 전체가 대신 치르게 된다. 이게 어떻게 ‘혁신’인가 말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면책 특권을 발행해주는 문재인 정부

"불법이라거나 그게 혁신의 상징인지 증명해 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증명할 수 있으면 혁신이 아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검찰이 타다 서비스를 기소하자 무려 청와대 정책실장께서 하신 말씀이다. 이게 왜 혁신인지 증명해 보라는 말도 해선 안 된다고 말이다. 이쯤 되면 문재인 정부에게 ‘혁신’은 거의 종교 수준에 가깝다. 의심해서도 안 되고 무조건 믿어야 하는 교리와도 같다.

"아무나 혁신을 이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맞는 말이다. 노동자성과 사회보험 면탈을 해도 이걸 ‘혁신’이라고 칭송해주는 권력자들과 친분관계를 갖고 있어야만 ‘혁신’ 자본가의 반열에 들 수 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디 청와대 정책실장 뿐이던가. "대한민국은 기획재정부와 기타 잡부로 구성된다." 그 주인공인 기획재정부 장관을 겸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주무 장관이라 할 수 있는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과 박영선 중기벤처부장관까지 나서서 "타다=혁신" 교리를 설파하고 있다. 머지않아 ‘혁신(Innovation)’ 복음가도 나오지 않을까.

혁신을 향한 나의 비법은 무책임, 무책임이야~ ♪♬
혁신을 향한 나의 비밀은 특급 면책이야~ ♩♬
산재보험 Skip 고용보험 Skip, 노동조합 건너뛰고서~ ♪♬
이윤이 부르면 달려갈 거야, 혁신으로 장식하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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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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