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담배를 어찌할까

[안종주의 안전사회] 전자담배에 사전주의 원칙 적용해 판매 금지해야

담배가 아니라 전자담배가 우리 사회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전자담배를 애용하는 인구가 최근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강력한 사용중단 권고를 내리면서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3일 '관계부처 합동 액상형 전자담배 안전관리 2차 대책'을 발표하면서 “(폐손상과) 액상형 전자담배와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규명되기 전이라도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청소년은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아동·청소년·임산부와 호흡기 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절대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발 액상 전자담배 쇼크가 국내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에스25와 씨포유,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등 주요 편의점들도 판매 중이던 일부 액상담배 카트리지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우리 사회의 흡연율은 꾸준히 떨어져왔다. 지난 20년 사이 반토막이 났다. 하지만 전자담배 사용률은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높아졌다. 이는 27일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018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됐다. 이 조사결과 전자담배 사용률은 4.3%이며, 남녀 모두 높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남성의 경우 2016년 4.2%이던 것이 2018년 7.1%로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여성도 같은 기간 0.4%에서 1.1%로 증가했다. 청소년 전자담배 사용률도 3년째 급증하고 있다. 2017년 2.2%에서 2018년 3.2%로 높아졌다.

전자담배 사용 급증, 특히 청소년 사이에서 인기

액상형 전자담배는 일반 담배와 달리 냄새가 나지 않고 일반담배보다 유해성이 낮다는 이유로 기존 흡연자와 청소년 사이에서 몇 년 전부터 상당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전자담배 카트리지를 문 모습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여성들도 종종 눈에 띈다. 전자담배를 물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거리 풍경이다. 새로운 흡연 문화로 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였던 전자담배가 된서리를 맞게 된 것은 유해성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 액상형 전자담배로 인해 중증 폐손상 사례가 1457건, 사망 사례가 33건이나 된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자담배로 인한 폐렴 의심 사례가 처음으로 보고됐다.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보다 덜 해롭다는 사실을 사실상 해롭지 않은 것으로 자위하며 전자담배를 피웠던 사용자에게는 충격적인 뉴스였다.

담배가 매우 해롭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중독성 때문에 담배 해악의 구렁텅이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담배 속 니코틴이 중독성이 아주 강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담배 연기에는 중독성 니코틴뿐만 아니라 방사성물질, 여러 종류의 발암물질, 타르, 일산화탄소 등 수천가지의 유해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담배는 사람의 생명을 가장 많이 빼앗는 악마의 제품이다.

2003년 담배규제와 맞물려 전자담배 등장

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인식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2001년 세계보건기구(WHO)의 주도로 흡연 관련 질병과 사망을 줄이기 위해 담배규제기본협약까지 만들어져 2008년 발효되면서 각 나라들이 강력한 금연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이 협약이 시행되던 2003년 중국에서 전자담배가 처음 등장했다.

전자담배가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퍼져나가게 된 것은 전자 담배가 기존의 궐련 담배보다 덜 유해하다는 보고와 함께 전자담배의 제조사가 전자 담배로 흡연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카트리지의 니코틴의 양을 차츰 줄여가는 원리로 담배를 끊을 수 있다고 광고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는 한 유력 정치인도 한때 이런 광고를 믿고 전자담배를 피우다가 몇 달 만에 맛(?)이 없다며 다시 일반담배를 피우고 있다.

하지만 전자담배 회사의 금연 가능 광고는 귀담아들을 가치가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전자 담배에 니코틴이 들어 있어 금연보조제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세계보건기구는 2008년 일찍이 전자 담배가 안전하고 효과적인 니코틴 대체 요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가 세계적인 학술지에 발표된 적이 없으므로, 전자 담배를 적법한 금연 도구로 여기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캐나다 보건부도 2009년 3월 “전자 흡연 제품들이 기존 담배보다 안전한 대체품으로 마케팅 되고 있고, 일부는 금연 보조도구로서 선전되며 팔리고 있으나, 전자 흡연 제품은 니코틴 중독 및 중독의 위험을 내포할 수 있다"는 권고문을 발표했다. 담배가 세상에 첫 선을 보였을 때도 인체 유해성에 대한 역학조사나 임상조사가 없었던 것처럼 전자담배 또한 인체 안전성 조사나 연구 없이 시장에 선보였다.

WHO, 전자담배 금연보조제 아냐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보다 덜 해로운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자담배가 안전한 제품, 즉 무해한 제품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전문가들은 전자담배 회사들이 주장하는 금연보조제 역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2014년 10월 열린 WHO의 제6차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당사국 총회에서 참석한 179개국 모두 전자담배를 비롯해 니코틴 유무와 관계없이 담배 사용을 촉진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제품을 규제하는데 합의했다.

하지만 전자담배가 얼마나 해로운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며 연구가 덜 돼 있다. 미국임상종양학회와 미국암연구협회는 전자 담배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체계적인 연구를 할 것을 미국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전자 담배의 안전성과 유해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 건강을 책임진 보건복지부와 전자담배의 유해성 연구를 책임지고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모두 전자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연구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전자담배 유해성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자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연구에 소홀히 해온 측면이 있다. 뒤늦게나마 유해성과 역학연구에 힘을 쏟아야 한다.

정부가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규제와 위해성 우려에 대한 홍보를 게을리 하는 동안 전자담배는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담배는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기 위해 거리에서 함부로 피울 수 없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전자담배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특히 청소년 가운데 전자담배를 피우는 문화가 급속히 확산됐다.

정부의 액상 전자담배 사용중단 강력 권고를 놓고 반응은 크게 엇갈린다. 한국전자담배협회와 같은 전자담배를 판매하려는 쪽은 정부의 조치가 과도하고 근거가 희박하다고 공박한다. 협회는 미국에서 발병한 중증 폐질환 환자들 중 합법적인 전자담배 사용자가 없었으며 마약 성분인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THC)을 액상형 전자담배에 혼합·사용해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이를 정상적인 액상형 전자담배에 적용하는 것은 오류라고 지적했다.

위해 우려 제품 금지할 수 있는 법체계 갖추어야

반면 금연운동가나 보건전문가들은 사용중단이 아니라 사용금지와 같은 보다 강력한 조치를 정부가 취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행 국내 '제품안전기본법'은 제품의 위해성 관련 인과관계가 확인돼야만 판매를 금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전자담배를 사용금지하고 싶어도 법적 근거가 없어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복지부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을 통해 공중보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 제품을 회수하거나 판매금지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우리나라는 엄격한 인과주의 법체계 때문에 가습기살균제 참사 대응 때에도 문제가 드러난 바 있다. 2011년 8월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PHMG 등 가습기살균제 제품 속 화학물질 성분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질병관리본부가 역학조사를 통해 밝혀냈음에도 동물실험 등을 통한 독성 연구가 덜 됐다는 이유로 이들 결과가 나온 2012년 2월까지 판매금지를 하지 못하고 판매·유통 중단 권고만 한 적이 있다.

반면 미국은 우리와 달리 보건·안전과 관련해 인과관계 확인 전이라도 심각한 위해 우려가 있을 때에는 해당 제품을 판매 금지할 법적 근거를 갖추고 있다. 일종의 사전주의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을 보건·안전과 관련해서도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원칙을 적용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미 여러 나라에서 전자담배에 대해 강력 규제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홍콩에서는 전자담배의 판매가 불법이다. 오스트리아와 덴마크에서는 전자담배를 의료제품으로 분류한다. 중국, 캐나다에서는 별다른 규제를 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로스엔젤리스 등 일부 주와 도시에서 최근 전자담배 판매를 금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온라인에서만 판매를 하지 못하는 정도의 직접적 규제를 하고 있다.

사전주의원칙 또는 사전예방원칙은 확실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심각한 환경파괴 또는 기후변화처럼 회복하기 어려운 환경오염의 위험이 있을 때는 그 피해를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한 개념이다. 최근에는 이런 원칙을 환경 분야 외에 식품안전과 보건안전 등의 분야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자담배 유해 논란을 계기로 우리 사회 법체계와 인식체계에서 사전주의 원칙을 확대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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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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