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의 제주 4.3위령제, 韓·日시민 하나 되는 계기"

[어둠서 빛, 日 대마도 4.3위령제] 재일제주인 김시종 시인

"일본에 수십 년 동안 살면서 고향 제주에서 쓰시마(대마도)로 흘러온 시신들이 늘 가슴에, 마음에 찔렸다."

일본 문학계에서 고유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원로 재일제주인 시인 김시종(91) 선생. 취재진에 둘러싸여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가던 그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가득 찼다. 물속에서 잔뜩 부풀어 오른 시체를 마주했던 공포, 동지들을 잃고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은 100세를 바라보는 오늘 날까지 빠지지 않은 못처럼 가슴 속에서 남아있다.

9월 29일 대마도 북쪽 사고 만(佐護 湾) 일대에서 개최한 '제3회 제주4.3사건 희생자 대마도·제주도 위령제'는 선생에게 특별한 자리다.


부산에서 약 50km, 제주에서는 220km 정도 떨어진 대마도에는 1950년 경 수백 구의 한국인 시체가 서쪽 해안가로 떠밀려왔다. 시체들은 제주4.3과 예비검속 희생자로 추정한다. 한국어가 적힌 옷과 팔다리를 묶은 흔적들이 추측을 뒷받침한다. 대마도 주민 에토 히카루는 다른 주민들과 함께 사고 만에서 시체를 수습했고, 시간이 지나 2007년 5월 그의 아들 에토 유키하루는 영령들을 기리는 공양탑을 같은 자리에 세웠다.

▲ 9월 29일 대마도 4.3위령제에 참석한 김시종 시인이 수장된 도민들을 생각하며 고통스러운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김시종 선생은 2014년 5월 자신을 믿고 따르는 후배 나가타 이사무(한라산회 고문)와 함께 대마도에서 첫 위령제를 개최했다. 장소는 '미네마치 오오미'(峰町青海)로 이곳 역시 1950년 한국인 시체들이 떠오른 지역이다. 몇 해 지나 에토 일가의 선행을 알게 된 김시종 선생은 사정상 자신이 불참하는 대신 나가타를 통해 지난해 사고 만에서 '합동 위령제'를 개최했다. 그리고 올해 세 번째 위령제에서 처음으로 공양탑과 함께 에토 유키하루를 마주할 수 있었다.

1945년 일본으로 밀항한 이래 '재일제주인' 경계인으로 살아온 선생은 2011년 일본에서 가장 저명한 시 문학상인 '다카미 쥰(高見順) 상'의 대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에서 주목받는 원로 작가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일까. 29일 위령제 현장에는 NHK, 교도통신, 아사이신문, 마이니치신문 등의 일본 현지 취재진들이 참석해 시인의 말에 귀 기울였다.

"1948년 10월 말경부터 제주시 주정공장에서 작은 미군 상륙정에 사람들을 태워 떠나는 모습을 두 번 본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탑동 자갈밭에서는 손목이 묶인 수장 시신도 봤다. 물 속에서 오래 있었는지 시체는 살이 부풀어 올랐는데 파도가 치면 살이 벗겨져 하얀 뼈가 보였다. 제주해역 물결은 동북으로 흐르면서 대마도 난류와 합류한다. 기록에 보면 4.3으로 500여명이 수장 학살당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신들은 분명 대마도에 표착됐을 것이다. 6.25 사변을 전후한 예비검속자 약 40만명도 있을 텐데 고려하면 대마도에는 수백 구, 많게는 수천 구의 시체가 표착됐다고 봐야 한다."

그는 수십 년을 일본에 살면서 '그것'이 늘 가슴에 찔렸다고 털어놨다. 살아서 섬(제주)을 떠나 죽어서 섬(대마도)에 도착한 고향 사람들을 간절히 위로하는 그것이다.

구사일생 밀항이었지만 자신은 산 채로 오사카 마이코(舞子) 해변에 도착했고, 다른 제주인들은 숨진 채 해변에 떠밀려왔으니 그에게 대마도는 특별한 장소일 수밖에 없다.

"난 도가니 속에서 빠져나와서 도피한 비겁한 사람이다. 일본에서 연명하면서 불법 입국자임을 나타낼 수 없어 정체를 숨겼다. 내가 오랜 기간, 1990년대까지 (4.3에 대해) 입 다문 것은 두 가지 이유다. 이것은 똑똑히 전하고 싶은데, 예전 제주 동포들은 4.3을 인민봉기라고 불렀다. 의지적으로 궐기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인민봉기다. 나는 남로당 말단 당원이었다. 내 정체를 밝히면 이승만 정권이 말하는 공산 폭동의 증명이 될까 싶어서, 인민봉기의 정당성이 손상될까 걱정해서 입을 다물었다. 다른 이유는 아주 비겁한 내 보신의 이유다. 일본 출입국 관리령에는 불법체류에 대한 시효가 없다. (내게) 강제 추방은 즉 죽음이었다. 보신을 위해 입을 다물었다. 때문에 죽어서 대마도에 표착한 많은 분들에게, 수장 학살당해 눈감은 분들에 대한 마음이 늘 응어리졌었다."

▲ 위령제 전날인 28일, 저녁 식사 자리에서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김시종 시인. ⓒ제주의소리

선생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대마도 4.3위령제는 "아주 뜻깊은" 행사라고 강조했다. 국적을 뛰어넘어 인륜이란 공감대 속에 국적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표착 시신들은 4.3 뿐만 아니라 전후 일제 식민지 국가의 비극의 결과다. 아시다시피 한일 관계가 아주 험한 지경이다. 그럴수록 우리들이 명심할 것은 민간끼리 교류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껴야 한다. 표착 시신들을 마음 놓고 지켜주는 일본인도 있지 않나. 이번 위령제가 시기적으로 아주 뜻 깊은 날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위령제 일정 상 인터뷰는 그리 길게 진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선생은 위령제 인사말을 통해 "사자의 위령에 그치지 않고 일본과 한국의 민심을 어루만지는 자애로운 탑으로서 앞으로도 손을 모아 위령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며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로 향하는 양국 관계를 당부했다.

다음은 김시종 선생의 인사말 주요 요약본이다. 번역은 일본어 전문 통번역가 안행순 씨가 맡았다.

▲ 위령식에서 인사말하는 김시종 시인의 말을 취재진과 참가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태평양 전쟁 종결만으로도 74년이란 덧없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전전(戰前)·전후(戰後)의 기억을 이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만큼 지난한 세월이 흐른 오늘입니다. 1950년 전 쓰시마로 흘러들어온 수백 구의 수장 학살 사체를 위해 실제 이렇게 공양탑까지 건립됐습니다. 쓰시마 바다의 철썩철썩 파도소리를 영령들이 소리 내고 있습니다.

쓰시마는 일본의 지울 수 없는 근현대사의 잘못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이 공양탑 앞에 서면 떠오르지 않은 사자(死者)들이 우리들을 바다를 넘어 만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 위령제에 시간 내서 일부러 참석해주신 일본의 뜻있는 분들에게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주4.3사건이나 6.25를 전후해서 발생한 40만명을 넘는 예비검속자 학살,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민족적 비극마저도 제국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서 유래합니다.

'포츠담 선언'에 의한 일본의 패전 처리가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일본에 대한 항복 권고가 내려진 포츠담 선언은 종전의 해인 1945년 7월 26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국체호지(國體護持)를 둘러싼 이견으로 우물쭈물 하고 있는 사이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됐습니다. 항복권고를 받아들였다면 도쿄·오사카에 대공습, 그리고 이오지마·오키나와·히로시마·나가사키의 대 참극은 없었을 것이며, 소련 참전에 의한 한반도 북반부의 점령도 없었고, 한반도의 남북 분단도 당연히 없었을 것입니다. 제주4.3사건 당시 엄청난 학살을 저지른 자들은 대일본제국 군인 장교, 또는 조선총독부 고위 경찰관이었던 친일우익으로 유명한 세력을 가졌습니다.

대마도 공양탑은 원통한 사자들을 위령하는 것뿐만이 아니고 과거 일본의 속죄의 일부분을 바다에서 올려 드러내고 있습니다. 기념비적인 공양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를 이어 공양하고 계신 마음 넓은 에토상 가족 분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원래 쓰시마는 선린우호 조상들의 외교를 해왔고 당시 한국과 교류도 해왔습니다. 조선통신사가 왕래하는 사이였던 유서 깊은 땅입니다. 이런 유래가 에토씨 일가의 유래까지 이어졌다고 확신합니다. 여기로 표착해서 억울하게 희생된 수장 학살 사체 수백 구를 잘 수습해주시고 위령해주셔서 이 탑을 세웠는데, 사자의 위령에 그치지 않고 일본과 한국의 민심을 어루만지는 자애로운 탑으로서 앞으로도 손을 모아 위령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들은 오늘 그 이정표를 여기에 새기고 있습니다. 옷깃을 가다듬어 진심을 담아 합장을 올립니다.

2019년 9월 29일
김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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