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들의 진심…"제주 4.3을 기억해야 한다"

[어둠서 빛, 日 대마도 4.3위령제] 우여곡절 위령제, "홀대" 느끼지 않도록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9월 29일 일본 대마도에서 열린 '제3회 제주4.3사건 희생자 대마도·제주도 위령제'(대마도 위령제)는 이 짧은 문장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해안가로 떠밀려온 수백 구의 시체. 알고보니 대한해협 해류를 따라 한국 제주도에서 떠밀려온 시체들. 그럼에도 외면하지 않고 손수 거둬 수습하고 안장한 일본의 대마도인.

다시 그의 아들은 아버지 뜻을 이어받아 영령들을 추모하는 공양탑을 시신들이 떠밀려온 그 해안가에 세운다. 매해 봄이면 공양탑을 찾아 나름대로 정성껏 넋을 위로했다. 바로 故 에토 히카루, 에토 유키하루(62) 부자의 이야기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 주인공이 바로 에토 유키하루다.

기억해야 할 또다른 사람들이 있다.

'4.3을 기억하고 세상에 알린다'는 신념 하나로 12년째 4월 3일이면 제주를 찾는다. 누구의 도움도 먼저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모든 비용을 마련한다. 오히려 남는 돈은 꼬박꼬박 4.3희생자유족회에 기부한다. 69년전 대마도에 쓸려온 제주인 영령까지 추모하고자 먼 대마도까지 찾아와 위령제를 연다. 바로 나가타 이사무(72)와 '제주4.3 한라산회'(한라산회)라는 일본인 모임의 이야기다.

이런 정성들이 모이고 모여 29일 대마도 북쪽 사고만(佐護 湾) 인근 공원(미나토하마 씨랜드)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위령제가 열릴 수 있었다.

이날 아침부터 정오까지 반나절 동안만큼은 국적이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아는 시민으로서 제주, 서울을 비롯한, 오사카, 도쿄, 대마도 등 일본 현지에서 모인 참석자 50여명은 하나가 됐다. 50여명은 500명, 5000명에 비교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을 한·일 양국 시민들이다.

▲ 9월 29일 대마도에서 4.3희생자 위령제가 열렸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대마도가 고향이면서 한라산회에 속한 나가도메 히로후미(62) 씨는 "10여년 전 한라산회에 가입하기 전까지 고향 대마도에 이런 엄청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서 "양국 시민들이 이런 추모 자리를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평화 가치를 계승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마도 위령제는 일본 언론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NHK, 아사히신문, 교도통신, 마이니치신문, 쓰시마신문 등이 현장에서 취재했다. 일본 문학계에서 '어른'으로 존경 받는 재일제주인 김시종 시인이 위령제에 힘을 보태면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 한국과 일본 양국 관계가 어느 시기보다 골 깊은 갈등으로 틀어진 상황에서, 대마도 위령제는 진심 어린 민간 교류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 행사였다.

그들의 진심에 제주는 어떻게 화답할 것인가


그럼에도 대마도 위령제는 적지 않은 풍파를 지나야 했다.

대마도 위령제의 실질적인 주최·주관은 '한라산회'다. 위령굿을 제외한 모든 절차·준비를 한라산회가 도맡는다. 애초 올해 대마도 위령제의 굿은 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가 맡을 예정이었다. 한라산회는 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와 이미 지난해 대마도·제주, 올해 제주까지 세 차례에 걸쳐 함께 4.3위령제를 진행 한 바 있다. 그런데 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가 9월 대마도 행사에 참석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제주큰굿보존회가 함께했다.

불참 이유는 '예산 문제'가 컸다. 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는 지난해와 올해 대마도-제주 위령제를 '무형문화재 전승자주관 전승활동 지원사업'으로 문화재청 예산을 지원받았다. 4월 제주시 옛 주정공장 터 위령제까지는 정상적으로 진행했지만, 9월 대마도 행사를 앞두고 한·일 갈등 문제가 불거졌다.

일본 관련 방문을 삼가하는 정부 방침에 따라 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는 예산 집행이 어려워지자 참여가 어렵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한라산회는 4.3 추모 취지와 상호 교류 차원에서 문화재청 사업비가 없더라도 함께 해달라는 뜻을 재차 강조했지만 최종적으로 불참 결정이 내려졌다.

민간에서 일본인들이 희생된 한국인들을 위해 꾸린 한라산회가 한일 양국의 정치적 유탄으로 행사에 차질을 빚을까 매우 크게 낙담했을 것으로 보인다.

▲ 2015년 4.3문화예술축전에서 노래 '한라산'을 부르는 한라산회.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4.3평화재단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4.3평화재단은 올해 처음으로 대마도 위령제 진행 비용 일부(버스 대여비)를 부담했다. 그러나 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 사례처럼 한일 관계가 악화되자 지원이 어렵다는 의사를 한라산회에 전했다. 지리한 논의, 설득 끝에 가까스로 원래대로 집행됐지만, '4.3 위령제'라는 취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중심을 잡아야 할 평화재단의 태도 또한 아쉽기만 하다.

4.3희생자유족회는 대마도 위령제에 2년 째 참석해오고 있다. 제주도민도 대마도 주민도 아닌 엄연히 따지면 '제3자'인 한라산회 입장과 행사의 취지를 고려할 때, 한라산회는 희생자유족회를 각별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난해 대마도 위령제에서 보여준 희생자유족회나 평화재단의 모습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컸다는 평이다.

대마도 위령제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 A씨는 "지난해 위령제는 주최 측과 사전 논의도 전혀 없던 제주지역 방송이 찾아와 일본 한라산회 측이 무척 당황했다. 방송사가 희생자유족회에게 내용을 듣고 참석한 것으로 확인했는데, 난데 없는 상황에 한라산회 사람들은 상당한 불쾌함을 느꼈다. 평화재단 역시 하나의 실적처럼 대마도 위령제를 대하는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와 비교하면 이번 행사는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된 편이다. 하지만 희생자유족회나 평화재단에 대한 불신은 꾸준히 쌓이고 쌓였다는 것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이제는 워낙 챙길 분들이 많아서일까, 4월이 되면 한라산회에 대해 희생자유족회와 평화재단이 홀대해왔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솔직히 말해 유족회 체육대회나 재단 사업비에 쓸 비용의 극히 일부를 한라산회의 대마도 위령제에 지원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또다른 관계자 B씨 역시 "한라산회는 4.3 추념식에 참석하고 나서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남은 여비를 모아 꼭 희생자유족회에 전달하곤 했다. 그런데 유족회는 최근 몇년 전부터야 제주를 찾아온 한라산회 회원들에게 식사대접해주는게 전부"라며 "밥을 얻어 먹고자 하는게 아니라 상대방(한라산회)이 어떤 자세와 진심으로 4.3을 대하는지 알고 있다면, 제주 안에서도 그에 맞게 화답해야 발전적인 관계가 되지 않겠냐"고 일침을 가했다.

이와 관련해 4.3희생자유족회 관계자 C씨는 "지난해 대마도 위령제는 방송국에게 정보를 알려주긴 했지만 유족회가 동행하진 않았다. 아마 방송국 자체 기획으로 대마도 위령제를 취재한 것으로 안다. 일처리 과정에서 다소 착오가 있던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은 담당자가 바뀌어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제주4.3평화재단 관계자 D씨는 "지난해 위령제에서는 유족회나 재단이 제각각 움직인 점이 없지 않아 있었다"면서 "시민 평화행사로서 대마도 위령제를 발전-지속시킬 수 있도록 재단의 역할을 찾겠다. 예를 들어 대마도에 4.3평화재단과 유족회 이름으로 위령비를 하나 추가로 세운다던지, 위령제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던지 하는 방식을 고민할 수 있겠다"고 설명했다.

혼자 기억하는 건 역사가 아니다


4.3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이다. 희생자유족회과 평화재단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4.3은 죽은 역사가 된다. 그렇기에 '4.3의 세계화'라는 화두가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한라산회는 일본인들로 꾸린 모임이다. 4.3과 직접적인 인연도 없지만 '4.3을 기억해야 한다'는 공감대만으로 2008년부터 매해 4월 3일 제주를 찾는다. 나아가 대마도 위령제까지 도맡고 있다. 희생자유족회와 평화재단이 뒷짐만 지는 대신, 한라산회의 손을 잡아야 하는 이유는 더 이상의 설명이 없어도 충분해 보인다. 구호처럼 외치는 4.3의 세계화는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 4.3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이다. 희생자유족회과 평화재단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4.3은 죽은 역사가 된다. 맨 앞줄 왼쪽부터 나가타 이사무, 송승문, 에토 유키하루, 김시종.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이 세상 10년이면 저승은 1년이라. 고향산천 봄이 되면 한라산에는 진달래꽃이 만발하고 가을이면 한라산이 울긋불긋 단풍지는데, 언젠가 올 것인지 살았으면 편지 연락이라도 하지. 한도 많고 원도 많은 영혼님들, 명절 때도 못가고 제사 때도 가지 못하고. 살려 달라 말도 못한 채 잡아다가 수장시켜버리고, 깊은 밤에 데려다가 던져버리니 아기들은 집에서 찾지 못해 애간장이 타고, 저 바다 이 바다 떠다니다 파도에 치어 물가는 대로 이 대마도 바다까지 왔구나. 70년 넘도록 가슴에 한이 맺혔구나. 어서 가자, 어서 가자, 태어난 제주 땅으로. 젊은 청춘에 떠나온 제주 땅으로. 산을 넘고 바다 넘어 걷고 걸어, 이승의 원도 한도 '미여지뱅디'(이승과 저승 사이) 가서 모두 털어 극락세계 왕생하길."

두 팔이 묶이고 두 발이 얽매인 채 천길 바다 속으로 떨어진 선조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일까. 29일 대마도 위령제에서 서순실 심방은 연유닦음 내내 눈물로 통곡했다.

서 심방은 "영령들이 지금은 무사히 잘 계시는 것 같다. 내년에도 그 다음에도 빠지지 않고 다시 와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지막 기념 사진 촬영에서 송승문 4.3희생자유족회장, 나가타 이사무 한라산회 고문, 공양탑을 세운 에토 유키하루, 김시종 시인을 비롯한 4.3유족과 한라산회는 두 손을 꼭 잡고 카메라 앞에 섰다.

손에서 손으로 이어진 진심이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계속 전해지길, 심방을 통해 대신 전한 영령들의 바람이 매끄럽고 아름답게 이뤄지길 바란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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