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입지의 찬란한 정상과 죽음의 계곡 사이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창업이 드나드는 자리

창업은 한자리에만 머무를 수 없다. 이는 갓 태어난 신생아들이 병원 인큐베이터를 가급적 빨리 떠나서 부모와 세상을 만나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창업보육(business incubation)이라는 용어가 존재한다.

<그림 1>은 대학이나 기업연구소의 실험실이 창업보육센터를 경유하여 도시의 교외지역으로 확대해가는 동안 기업이 만날 수 있는 기업입지의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표현한 것이다(류승한, 2019, "공간적 관점에서 본 지역혁신생태계 구축과제," 한국경제지리학회, 4차 산업혁명시대의 지역산업성장 뉴딜, 국회포럼.).

▲ 그림 1. 기업입지의 죽음의 계곡(death valley). 서울시 등 소수 대도시 지역을 제외하고는 창업보육센터 졸업기업이 산업단지에 입주할 규모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매우 긴 기업입지의 '죽음의 계곡'을 통과할 필요가 있다.
찬란한 정상에서 죽음의 계곡을 두려워하다

우리나라에서 창업의 '시간적' 죽음의 계곡은 창업 후 3∼7년 시기에 나타난다. 그 이유는 정책적으로 창업에 대한 투자가 대체로 초기 3년과 후기 7년 이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신동평‧배용국‧손석호, 2018, 2018, 기술기반 창업 활성화 지원정책의 현재와 시사점, KISTEP Issue Weekly,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즉, 시간적으로 4년 동안의 정책적 공백이 생기게 됨을 의미한다.

반면, '공간적' 죽음의 계곡은 3년∼7년 사이의 동안에도 나타날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기업입지의 '공간적' 죽음의 계곡은 빠르면 7년 이후부터 시작되는, 창업 시기를 졸업한 졸업기업(Post-BI)을 대상으로 나타난다. 여기가 우리나라 기업입지의 죽음의 계곡이다.

이 시기가 되면 기업들은 졸업을 꺼려한다. 그 이유는 이 기업들은 대체로 부지규모가 66.6㎡∼165㎡ 규모의 도심에 입지한 공장을 선호하는데, 이를 구하기가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업의 성장단계를 고려할 때, 이들이 1650㎡이상이 되는 도시외곽의 산업단지에 갈 재정적 여력도 없고, 필요도 없다.

결국 우리나라 창업의 찬란한 정상은 초기 3년 동안 정부의 지나친 관심 속에서 이루어지는 시기이며, 창업 후 7년을 갓 넘어가면서 졸업을 앞둔 시기이다. 이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당면하고 있는 취업의 서글픈 현실과도 유사하다. 창업의 초기 3년은 과도할 정도로 시설과 투자가 넘쳐 난다. 그러나 후기 7년은 투자가 집중된다하더라도 공간을 걱정해야 하는,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창업공간의 불균등성

더욱 심각한 문제는 창업 공간의 불균등성이다. 초기 창업공간의 입지는 철저히 대도시 지향적이거나, 도심에 입지한 대학 캠퍼스 지향적이다. 이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큰 격차를 반영하고 있으며, 수도권 내에서도 서울과 경기도, 인천시 간의 격차 또한 크게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 내에서도 지역 간 격차의 유발은 당연한 현상이다.

또한 창업이 활성화된 강남이라고 할지라도, 대로변과 골목길이 다르다. 대부분의 창업 공간들은 강남의 대로변에 입지하면서 대로변 뒤에 입지한 꼬막 빌딩들의 공실률을 높여가고 있다(Startup Alliance, 2018. 6., Coworking Space Trend Report, Naver.)

그렇다고 필자가 전국토의 '균등한' 창업공간화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이와 같은 사실을 제시하고 있는 의도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매우 불균등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 창업의 문제점을 함께 개선해보자는 데 있다.

랩투시티(lab-to-city)를 중심으로 편견의 칸막이들을 허물어 가기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한 창업 문제의 일부라도 해결해보고, 이후 기업의 성장과정을 지원하기 위해서 필자가 제안하는 방안은 '랩투시티(실험실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기술‧공간의 통합적 혁신, lab-to-city) 모델'이다. 이는 기술혁신과 공간혁신의 통합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대학 교수, 기업 또는 개인 실험실에서 이루어진 기술 상용화의 성과가 팩토리(생산단계)로 확대되고, 이후 이러한 팩토리가 모여서 산업 또는 과학단지를 만들고, 이러한 단지가 확대‧성장하여 도시를 이루는 기술혁신과 공간혁신의 통합적 경로를 압축한 용어이다.

이와 같은 랩투시티 모델이 정착하기 위한 선결 요건으로, 사회혁신(사람에서 사회로, people-to-society)과 교육혁신(개인학습에서 공동학습으로, person-to-school)이 함께해야 하며 그 기저에는 금융혁신의 중요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통합적 혁신이 일부라도 달성되려면, 먼저 부처 간, 부처 내 정책 칸막이를 허물어야 한다. 정부는 창의와 융합을 강조하는 4차 산업혁명을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부처 간 또는 부처 내 정책적 진입 장벽을 높이 세우는 경향이 강하며, 창의‧융합형 인재양성은 '수능제도'라는 만리장성을 뛰어 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대학에서 인문계와 자연계라는 학문적 분단을 경계로 그 칸막이가 더욱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다음으로 부처별 창업에 대한 사업 조정이 필요하다. 이 조정은 현재까지 정부가 투자한 창업 자산에 대한 조정, 정부의 새로운 시간적‧공간적 투자에 대한 효율적‧효과적 배분과 창업 기회의 확산에 초점을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서울만 벗어나면 유휴화되어 가고 있는 '유사한' 창업 시설이나 장비가 많아지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창업 기관에 장비를 파는 외국기업들은 '한국은 저렇게나 많은, 똑같은 장비들을 누가 사용할까?'라는 궁금증 속에서 장비를 팔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창업의 의지와 도전정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진정한 창업 교육이 필요함을 의미하며,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장년층을 겨냥한 교육이 더욱 절실함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창업 성공률이 장년층에서 더 높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닐 것이다. 현재 당면한 창업의 시간적‧공간적 불균등성을 일부라도 해소하기 위해 이러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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