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지운 검찰개혁은 개혁 아니다"…'부실 수사' 겪은 피해자들의 호소

'보완수사 폐지' 추진에 "잘못된 초동수사 바로 잡을 길 사라져 이중고통 커질 것"

더불어민주당이 검찰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사실상 당론처럼 추진해온 가운데, 범죄 피해자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 중심의 사법절차 개선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특히 검찰 보완수사의 전면 폐지가 힘 없는 이들이 당한 일반 범죄에 대한 부실 수사, 수사 절차 지연 등으로 이어져 피해자 고통을 가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폭력, 가정폭력, 살인 등의 범죄 피해자 8명과 이들을 조력하는 변호사들은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가 사라진 검찰개혁은 진정한 개혁이 될 수 없다"며 "국회가 피해자 권리를 보호할 대안을 시급히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날 회견엔 범죄 피해자 5명이 참석했다. 신변 보호가 필요한 이들은 증언을 할 동안엔 회견장을 등 뒤로 하고 돌려 앉아 발언문을 낭독했다. 나머지 3명은 직접 참석하지 못해, 조윤희 변호사가 입장문을 대독했다.

2023년 인천 강화도 가정폭력 유기치상 사건 피해자의 딸 한지유(가명) 씨는 "경찰이 놓친 증거를 피해자가 대신 찾아야 하는 나라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보완수사 통로까지 없애서는 안된다"고 호소했다. 한 씨의 어머니는 가정폭력 피해로 현재까지 의식을 잃은 채 중환자실에 입원해있다.

한 씨는 당시 경찰의 초동수사가 지나치게 부실했다고 밝혔다. 한 씨는 "사건 이틀 뒤, 경찰에 직접 블랙박스와 CCTV 확보를 요청했지만, 확보 시도는 한 달 뒤에야 이뤄졌고 이미 블랙박스와 CCTV가 삭제된 뒤였다"며 "어머니 손톱 아래 DNA 채취도 요청했지만, DNA는 시간이 지나면 쉽게 사라지거나 오염되는 특성이 있음에도 채취는 9일 후에야 이뤄졌고 가해자의 DNA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 씨는 "피 묻은 어머니 옷은 20일 뒤, 피 묻은 휴대폰도 20일 뒤, 루미놀 혈흔 분석은 사건 한 달 뒤에야 이뤄졌다"며 "그땐 이미 큰 가구를 포함해 현장이 청소되고 혈흔 대부분이 지워진 뒤였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 사건에서 경찰의 초동수사는 분명히 실패했다"며 "이는 피해자에겐 입증 불능과 진실을 밝힐 기회가 사라진 것이고, 가해자에겐 방어의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의 권한 남용은 당연히 통제돼야 하나, 이를 이유로 일반 형사사건 피해자에게 필요한 신속한 점검과 보완 수사 통로까지 없애서는 안된다"며 "만약 검찰의 보완수사권까지 전면 폐지되면, 피해자는 또 마냥 기다리면서 불안과 분노로 밤을 지새워야 한다"고 호소했다.

▲성폭력, 가정폭력, 살인 등의 범죄 피해자 8명과 이들을 조력하는 변호사들은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가 사라진 검찰개혁은 진정한 개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손가영)

"수사관 의지에 따라 사건 처리 달라지는 현실왜 구제 통로마저 막나"

'부산 돌려차기' 사건으로 알려진 강간 살인 미수 사건 피해자 김진주(가명) 씨도 "제 사건은 수사관의 정성도에 따라 어떻게 사건이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며 "피해자 없는 검찰개혁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김 씨는 "(당시) 경찰은 멍투성인 내 몸도 촬영하지 않았다고 해서 친언니에게 나체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며 "(사건 초기) 경찰은 상해로 접수했고, 내가 장애진단을 받을 것 같다는 소견을 받자 겨우겨우 중상해로 송치했으며, 이후 재판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검색해 보니 살인미수로 죄명이 바뀌어있었다. 그제야 사건이 제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또 "1심이 끝난 후, 민사를 통해 겨우 받아낸 기록 중에는 경찰이 심문하는 영상도 있었는데, 성범죄 관련 질문을 하고 가해자가 아니라고 딱 한 번 둘러대자 경찰은 그냥 넘어갔다"며 "그의 휴대폰 포렌식에는 '서면 살인', '서면 강간'이라는 자백에 가까운 검색기록도 있었지만, 그들은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씨는 "피해자들에게 검찰이 없어지면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보완수사권이 폐지되면 어떻게 될지, 그 피해는 어떻게 보장해 줄지 얘기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볼 수 없다"며 "가해자 신상공개를 결정할 땐 투표를 받아 놓고, 한 나라의 사법기관을 없애는 데엔 어느 국민의 의견도 받질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그는 "미래에 검찰이 없다면 피해자는 말 그대로 참고인이 된다"며 "돈 많고 힘 있는 정치인들은 피해자가 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을 수 있겠지만, 나같이 돈 없고 힘없는 피해자, 일반 국민은 인생이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패한 초동수사' 공백, 보완수사가 메웠는데"

매니지먼트사 대표의 위력 관계 성폭행 피해자 김윤지(가명) 씨도 "경찰은 나를 한 번 조사하고, 가해자가 제출한 증거를 믿고 반박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불송치 결정했다"며 "이후 검찰이 직접 수사해서 기소됐다. 사건이 불송치로 끝났다면 내가 살아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 국회가) 직접 고통받는 피해자 의견은 듣지도, 묻지도 않고 형사소송법을 바꾸는 의도를 모르겠다"며 "주장하는 의도는 그럴싸하지만 적어도 피해자가 고통을 받지 않는 방향으로 재고해 달라"고 호소했다.

2023년 서현역 칼부림 사건 희생자 고 김혜빈 양의 부모는 수사부터 재판까지 형사 사법 체계 전 과정에서 피해자의 알 권리와 참여권이 배제되는 현실을 이야기했다.

김 양의 어머니는 "경찰이 어떤 수사를 하는지, 검찰이 어떤 내용으로 기소했는지조차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검사가 피해자 측을 대변한다고 들었지만 법정에서 본 검사는 유족에게, 저희가 궁금했던 사건경위나 증거관계 등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양의 아버지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계속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느끼며 아무도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고 느꼈던, 범죄피해 이상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해소하는 방향의 검찰개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피해자는 어떤 증거로 가해자를 어떻게 처벌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하는 수사기관을 만나야 한다"며 "피해자를 외면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경찰관과 검사를 만나야 한다. 최악의 사건을 겪은 피해자는 최선을 다하는 국가를 만날 권리가 있다"고 개혁 방향을 제시했다.

▲성폭력, 가정폭력, 살인 등의 범죄 피해자 8명과 이들을 조력하는 변호사들은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가 사라진 검찰개혁은 진정한 개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손가영)

"형소법 전반 개혁 필요…피해자 알 권리·참여권 명문화"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대한 우려가 거세지자, 더불어민주당 형소법 개정 태크스포스는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권 등을 보완책으로 제시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검사가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해 추가 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다.

그러나 오선희 변호사는 "수사 지연이나 부실 수사 문제를 막을 수 없다"며 "보완기간을 3개월이든 1개월이든 정하고, 기간 준수를 못하는 경찰을 문제삼는다 한들, 인권보호관을 둔다 한들, 보완수사 요구권만 존재해 사건기록이 경찰과 검찰을 여러 번 왔다 갔다하며 지연되는 걸 피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오 변호사는 "발의된 안 중 홍기원 의원의 개정안이 특정 범죄에 보완수사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등 그나마 대안을 갖추고 있지만 제한적"이라며 "검찰은 법리적 판단, 경찰은 직접 수사로 함께 협업하고 견제하는 시스템이 가장 이상적이나, 논의를 돌이킬 수 없다면, 보완수사권의 일정 부분이라도 반드시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선희 변호사도 "경찰이 사건에 왜곡된 시선을 가졌거나, 담당 사건이 너무 많아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을 상황 등에서 오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한 번의 추가적 제도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며 "보완수사를 요구해도 같은 경찰 수사관이나 같은 부서의 동료가 사건을 맡게 되는데, 인간의 속성상 스스로 혹은 동료의 잘못된 점을 고치기란 어렵다"고 우려했다.

안지희 변호사는 "보완수사권 유지 여부만 주로 논의되나, 형사소송법 체계에 반드시 반영돼야 할 피해자 권리는 더 많다"며 "수사단계에서의 피해자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수사진행상황 통지 의무를 명문화하고 DNA검사나 압수수색 목록 등 수사기록에 대해 피해자의 열람·등사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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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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