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지방보다, 서울과 뉴욕의 거리가 가까워진 시대

[대담②·끝] 로버트 파우저-김시덕의 도시 재생 이야기

서울을 둘러싼 여러 주제는 결국 양극단으로 나뉘기 마련이다. 개발할 것이냐 말 것이냐, 보전하느냐 갈아엎느냐, 집값을 잡을 거냐 말 거냐는 식으로 말이다. 서울이 지금도 활발히 개발되는, 즉 돈이 몰리는 도시여서 그렇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이전에는 외계어와 같았던 단어가 어느새 뉴스 제목으로 나와도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된 배경이다.

로버트 파우저 박사와 김시덕 교수는 앞선 대담에서 도심의 집적도가 높을수록, 즉 도시가 고밀도화할수록 젠트리피케이션을 자극하게 되고, 그 결과 도시의 주인이어야 할 사람은 자본에 휩쓸리고 만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면 필연적으로 거주민의 구성 ‘성분’이 바뀌고, 그 결과 도시는 사람을 쫓아내게 된다는 점을 두 사람을 여러 사례를 들어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궁금증이 생긴다. 서울보다 더 고밀도화한 도시로 손꼽히는 홍콩, 뉴욕과 같은 도시에서는 어떻게 빈민이 살아갈 수 있는가. 더 근본적인 현 상황에 관한 고찰도 곁들여진다. 이제 지방도시의 소멸을 두려워해야 할 시대가 됐다. 세계화는 세계의 도시와 도시를 직접적으로 연결했다. 서울과 런던의 심리적 거리가, 서울과 도쿄의 심리적 거리가 서울과 농촌도시의 그것보다 더 가까운 시대다. 십 수년 전만 해도 서울 집중을 우려하던 기사를 쉽게 찾곤 했으나, 요즘 들어 그런 기사가 보이지 않는 까닭은 그 문제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보편적 현상이 됐기 때문이다. 도쿄-오사카-나고야의 경제권역이 상대적으로 고르게 발달했다는 일본만 하더라도 도쿄 집중화 현상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도쿄에 맞서던 오사카는 이제 도쿄로 인구를 가장 많이 실어보내는 위성도시로 전락했다.

대도시의 초고밀도화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 됐다면, 이를 새롭게 진단할 필요도 있다. 새롭게 진단하면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도 생긴다. 두 대담자는 차라리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초고밀도화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다만 전제가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개발에 개입하는 공공개발이 대안이라고 둘은 입을 모았다.

이같은 흐름에서 도시 재생도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두 사람은 강조했다. 대표적 대안으로 둘은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도시를 살려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파우저 박사와 김시덕 교수의 대담은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혜화1117에서 진행됐다.

▲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혜화1117에서 진행한 로버트 파우저 박사(우)와 김시덕 교수(좌)의 대담. 북촌, 서촌 등이 몰렸고 청와대가 자리한 서울 종로구는 오랫동안 서울을 상징하는 구도심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김시덕 교수는 사대문 안을 박제화하는 이같은 시각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강남과 강서, 구로 역시 서울의 실제하는 모습이라는 지적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서울 초고밀도화가 낫다

-초고밀도 도시가 젠트리피케이션을 자극한다는 이야기를 두 분께서 공통적으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서울은 홍콩, 상하이 등의 대도시에 비해서는 밀집도가 낮다는 이야기도 한편에서는 나옵니다. 오히려 서울의 용적률을 더 올리자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그렇다면 젠트리피케이션을 더 자극하지 않을까요?

김시덕: 저는 서울 도심의 용적률을 높이자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서울의 도심 밀도는 매우 낮습니다. 아마 저와 파우저 박사의 생각이 갈라지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 도심의 밀도를 높이지 말고 마을을 살리자는 식의 주장만 하는 건, 제가 보기엔 부자에게 낮은 밀도로 쾌적한 삶의 공간을 주자는 생각과 같습니다.

<서울 선언>(열린책들 펴냄)을 쓸 때 취지이기도 합니다만, 서울의 사대문 안과 바깥을 쪼개서 봐야 합니다. 사대문 안에는 역사지구가 많아서 개발 가능한 곳이 별로 없습니다. 사대문 바깥의 용적률을 더 올려야 합니다. 용적률을 높이지 못하는 지역은 다양한 계층이 모여 살 수 있게끔 공공이 적극 나서 개발하고요. 그렇게 해서 저소득층이 먼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힘들게 출퇴근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로버트 파우저(이하 파우저): 뉴욕 이스트사이드의 인구 밀도가 아주 높죠. 홍콩과 같이 초고층 빌딩이 줄줄이 들어서 있습니다. 아마 서울 도심보다 이곳 도심 밀도가 높을 거예요. 서울을 이스트사이드처럼 만들자는 이야기는 글쎄요... 서울은 뉴욕이 아닙니다. 서울 외곽의 도시를 더 잘 개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기존의 주거지역을 잘 지켜가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제가 예전에 종로구 체부동에 살았는데, 이곳은 개발이 활발히 일어나진 않았던 곳이죠. 하지만 요즘 찾아가니 주거지였던 곳이 하나하나 상가로 변화하더군요. 서울을 더 높이 올리는 것보다, 기존에 사람이 살던 도시를 주거지로 잘 보전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더구나 한국과 일본은 출산율도 낮은 국가이니만큼, 무턱대고 고밀도 주거지 개발을 하는 게 바람직할지 의문이에요.

김시덕: 출산율은 낮아지지만 사람들의 서울을 향한 욕망이 줄어 들지는 않았죠. 지금 서울 인구가 줄어드는 건 서울에 살고 싶어도 못 사는 사람이 밀려나서이지, 서울의 매력이 떨어져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을 더 수용할 수 있게끔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물론 서울 도심의 용적률을 올린다면 돈 있는 사람이 더 단물을 먹을 겁니다. 하지만, 도심 기능 자체가 떨어진 곳에는 투자를 해 도심으로서의 기능을 되살려야 합니다. 이런 혜택 사례를 막겠다고 인프라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더 나쁜 결과만 낳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똑같은 아파트 브랜드가 을지로3가와 압구정동에 들어왔다고 해 봅시다. 사람들이 어디를 선택할까요? 대부분 사람이 압구정동을 선택할 겁니다. 사대문 안에는 병원, 학교 등 생활 기반시설이 태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대문 안은 주거지 기능을 살려야 할 대상입니다. 반면 박원순 시장은 그 대안으로 서울 사대문 안을 관광지화하려는 것 같습니다. 차량 유입 막고, 예술가 지원하고, 자전거길만 만들고 있죠. 이는 서울 구도심을 박제화하자는 것뿐입니다. 서울 도심 곳곳의 특색을 잘 반영해 개발함으로써 더 다양한 사람을 더 많이 품을 수 있도록 해야죠.

파우저: 미국은 한국, 일본의 사례와 조금 다릅니다. 이민에 열린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정부 들어 국가 수준에서 이민에 배타적으로 변화했지만, 지역별로 보면 여전히 난민을 적극 환영하는 도시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시간주의 주도 랜싱(Lansing) 시입니다. 인구가 12만 명가량 되는 도시인데, 최근 시리아 난민 몇 천 명(매년 600명 수준)을 한 번에 받았죠.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사람이 늘어나야 도시의 소비력을 유지할 수 있고, 더 큰 공동체를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일종의 도시 재생입니다. 단순히 힙스터들이 찾을 관광지 만드는 게 도시 재생이 아닙니다. 한국은 민주주의, 인권의 차원을 넘어 도시 재생 차원에서, 문화 재생 차원에서도 난민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민자는 도시 재생에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김시덕: 대도시, 특히 서울 사람만 잘 모르지, 한국의 여러 지방도시, 농촌도시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의 농촌지역 지자체는 외국 이민자들이 없다면 당장 무너질 겁니다. 안산, 남양주, 군포와 같은 도시에서도 이민자가 원도심을 살렸죠. 굳이 지자체에 이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라고 권유할 필요도 없습니다. 차별만 안 한다면, 쫓아내지만 않으면 됩니다.

-여태 두 분의 말씀을 종합해 보니, 도시를 움직이는 건 결국 사람인데 도시 정책에서는 사람이 뒤로 빠지고 인프라 논리, 자본의 논리가 앞선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생각이 실패한 젠트리피케이션, 혹은 젠트리피케이션 부작용을 낳는 것 같고요.

김시덕: 말씀하신 바로 그 부분이, 에드워드 글레이저가 <도시의 승리>에서 지적한 많은 사람의 착각입니다. 건물을 잘 짓는다고 사람이 오지 않습니다.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의 도시 재생 사업 방식은 토목업자와 지주에게만 좋습니다.

▲ 뉴욕의 대표적 초고밀도 지역인 어퍼 이스트사이드. 20세기초부터 집중 개발이 진행된 뉴욕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초고밀도 도시다. ⓒwikipedia

이민자와 공존이 도시 재생

-파우저 박사께서 <도시 탐구기>에 쓰신 앤아버(Ann Arbor) 사례가 떠오르네요. 주민들이 복합 상가 건물과 공원 중 공원을 선택했죠. 복합 상가 건물이 빨리 들어서지 않는다고 지역 주민들이 시위한 한국 사례와 비교됐습니다.

파우저: 앤아버에서 주민들이 투표 결과 복합 상가 건물 대신 공원을 선택한 핵심적 이유는 시의 땅, 즉 공공의 땅을 판다는 건 시민의 손에서 땅이 떠남을 의미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앤아버는 본래가 조금 진보적인 도시입니다. 공공성을 높이 평가하는 도시 정체성이 강했죠.

결국 사람 이야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미국의 학교들은 지역사를 매우 중요하게 가르칩니다. 자연스럽게 지역민에게 지역 정체성이 생겨나죠. 유럽의 여러 도시 역시 이런 교육을 강하게 합니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요? 한국의 학교가 지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는지 의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서울 정체성이 생겨나겠어요. 서울의 사람들은 제각기 흩어져 있을 뿐인 듯합니다.

김시덕: 한국은 지난 100년의 역사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지역사를 가르치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그러니 조선시대 이야기만 다루게 되죠. 당장 서울역사박물관만 보더라도 옛 서울, 즉 사대문 안의 서울만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사대문 바깥은 그 대상이 아닙니다. 서울 정체성을 만들기 어려울 수밖에 없죠.

파우저: 한국의 다른 도시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제가 한국에 올 때마다 대구에 한 번씩 가는데, 대구에서는 지역 정체성이 조금 느껴졌습니다.

다시 이민자 이야기입니다. 미국이 이민자를 꾸준히 받았기에 정체성이 흐려지리라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랜싱시 사례에서, 랜싱을 찾아온 난민들은 미시간 사람, 랜싱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민자들은 그 지역 문물을 무의식적으로 흡수하기 마련입니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미국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로드아일랜드주에 갑자기 한국 사람이 확 늘어난다고 해서 로드아일랜드 문화가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이민자, 난민에 배타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김시덕: 일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에 혼혈아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질화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일본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한국의 지방 도시에서도 오래 전부터 이런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혼혈 자녀들이 장성해서 이제 사회로 진출할 때가 됐습니다. 그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시대에 한국이 어떤 문화를 가져갈 것이냐를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을 듯합니다. 저는 한국이 다민족 국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미국이 인구 감소를 걱정하지 않는 이유다. 이들이 모여 '미국적 가치'를 만들어가고, 도시를 살려간다. ⓒ유튜브 'The Daily Conversation' 채널에서 이미지 캡처

파우저: 트럼프 정부 들어 미국이 백인 우월주의로 확 경도된 것 같지만, 기실 그런 사람, 곧 트럼프 핵심 지지자는 미국인의 30% 수준입니다. 나머지 70%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 조카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경우 70%가 유색인입니다. 학교 행사 때 찾곤 하는데, 이상하지 않아요. 이민자들이 늘어난다고 해서 사회가 붕괴한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김시덕: 최근 유럽을 비롯한 세계에 부는 극우주의도 난민을 향한 증오라고 쉽게 이야기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의 문제에는 런던 대 비런던으로 나뉜 양극화가 있고, 독일 역시 (동서 갈등 차원에서) 비슷하죠. 미국으로 돌아가자면, 이민자를 향한 차별적 생각은 오바마 정부 때도 있었고, 그 전에도 존재했을 겁니다. 미국인이 가진 여러 불만 중 트럼프가 인종 문제를 끄집어내 사람들에게 던져줬을 뿐이죠.

파우저: 맞아요. 미국인의 잠재의식에 내재된 생각을 트럼프가 공론화한 거죠. 버클리대의 한 교수가 루이지애나주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을 인터뷰했는데, 그들이 가진 공포는 '다른 이가 나를 앞서가고 내가 뒤떨어진다'는 생각에서 왔다더군요. 어려운 상황에서 희생양을 찾는 이들의 심리를 트럼프가 잘 파고든 거죠. 독일, 이탈리아의 극우화 문제 역시 마찬가지라고 저는 봅니다.

하지만 앞선 랜싱의 사례에서 보셨듯, 온 나라가 같은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지난 12월 중순 독일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한 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탈리아에서도 관광 공해 문제 등이 있는데 이런 문제는 베네치아, 로마에서나 일어나죠. 다른 여러 도시는 각자의 다른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문제가 미국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죠.

-손혜원 의원의 목포 투자를 둘러싼 문제에서도 사람들의 생각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갈리더군요. 정부의 도시 재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손 의원을 응원하고, 도시 외곽의 사람들은 싫어하는 식으로요.

김시덕: 손 의원을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조선내화공장이 위치한 목포 서산·온금 주민이죠. 손 의원으로 인해 아파트 개발이 어려워진 사람들입니다. 손 의원은 자신이 보존 운동에 앞장선 조선내화공장을 철거하고 개발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는데, 저도 지난 연말에 현지를 답사하면서 그런 분위기를 확인했습니다.

앞서 서울 얘기를 주로 했지만, 한국의 모든 도시, 세계의 모든 도시는 그 안에서도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화해서 '서울은 어떻다' '목포는 어떻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골목길 자본론>(다산3.0 펴냄)을 쓴 모종린 교수는,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서울지하철 2호선 라인을 중심으로, 대개는 강북 지역에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지역은 전부 재개발이 완료됐거나 애초에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날 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거죠. 뒤집어 보자면,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오직 특정 지역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라는 소리입니다.

▲ 일본의 대표적 관광명소로 떠오른 가나자와시. 압축도시(콤팩트 시티)의 대표 사례이기도 하다. ⓒflickr.com

서울은 고밀도화, 비서울은 압축도시 중심으로 생존해야

-도시의 과밀화 문제는 세계 주요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듯합니다. 일본의 경우 정부와 지자체가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노년층과 청년층에게 대규모 지원을 하면서 지역에 정착시키려 했지만, 결국 생활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이들이 전부 도시로 회귀하는 일을 겪었습니다. 결국 도시의 밀집화는 어찌할 수 없는 현상인가요?

파우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린 문제 같아요. 저는 세계 여러 도시에서 살아봐서 그런지, 이제 대도시보다는 중규모 도시가 더 좋습니다. 만일 한국에 다시 장기 거주하게 된다면 대구에 살고 싶네요. 서울이 인재가 몰리고, 여러 편의시설이 밀집하는 큰 도시지만 삶의 질만 따지자면 대구가 더 낫죠. 당장 서울에서는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큰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이 문제는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뉴욕의 좁고 비싼 아파트에 살면서 고급 음악회를 즐기며 살 거냐, 한적한 곳에서 여유롭게 살 거냐의 문제죠. 마냥 큰 도시만이 경쟁력을 가진 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앞으로는 생활비가 저렴하면서도 인프라를 잘 갖춘 중규모 도시의 경쟁력이 더 올라가리라고 봅니다. 지역 중심도시라고 할까요. 앞서 말한 대구가 대표적이죠. 앞으로 미래의 도시에서 생활공간 크기는 중요한 연구 과제가 될 겁니다.

김시덕: 어느 사회에나 서울, 부산과 같은 선도도시가 있고,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하는 도시가 있죠. 모든 작은 도시를 다 살리기는 앞으로 어렵다는 게 마강래 교수가 <지방도시 살생부>(개마고원 펴냄)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인구 감소가 필연적이기 때문이죠.

한국보다 먼저 지방소멸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의 경우, 도시 생존 마지노선이 인구 40~50만 명 수준인 듯합니다. 가나자와가 대표격이죠. 이 정도 밀집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도시 주변 인구를 빨아들여 생존이 가능합니다. 압축도시 개념이죠. 한국으로 따지자면 군산과 같은 사례입니다. 군산이 GM 사태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졌지만, 인구는 늘어나고 있어요. 더 큰 도시로 떠나기에는 거리상 떨어져 있지만, 인근 주변에서는 가장 잘 밀집된 도시가 그렇습니다.

파우저: 모든 지역에 좋은 인프라를 갖추고 밀집화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미국이 꾸준한 이민자 수용으로 인해 지금도 인구가 늘어나는 나라이지만, 미국에서도 농촌의 경우 생활 인프라는 좋지 않습니다. 먹거리 쇼핑 한 번 하는데도 자동차로 두 시간을 나가야 하는 게 보통 미국 농촌의 생활 모습이죠. 미국에서도 작은 도시의 황폐화는 진행 중인 문제입니다. 대신 시애틀과 같은 중규모 도시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죠.

김시덕: 인구 감소 시대에 압축도시, 곧 인프라를 큰 도시나 도시 중심부에 밀집화하는 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문제인 듯합니다. 일본에 살 때 체감한 건, 도쿄 외곽 주택단지에서도 슈퍼마켓이 점차 사라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어차피 모든 지역에 인프라를 채우는 건 불가능하니, 사람들이 더 모여 살도록 하고 중심부에 인프라를 갖추는 게 피할 수 없는 도시의 전략이라는 겁니다. 도시가 사람을 더 빨아들이고 집중화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이 경기 불황 시대 민간 토건 자본의 주도로 인해 겪은 '다람쥐 도로(생활 인프라를 마구잡이로 짓던 당시 만들어진 신조어. 사용하는 이가 거의 없는 곳에 세금으로 도로를 만들었더니 다람쥐만 사용하더라는 비아냥이 담겼다. 토건에 매달린 일본의 인위적 경기 부양책은 유바리시 파산 사태 등으로 파국을 고했다.)' 사례와 같은 부작용을 우리도 겪게 될 겁니다.

아울러 도시 경제 생태계가 특정 산업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특정 기업이 빠진다면 그 도시는 곧바로 큰 위기를 맞게 되죠. 가깝게는 거제의 사례가 그렇고, 대표적으로는 미국 디트로이트의 사례도 있습니다. 제인 제이콥스가 강조한 것처럼, 도시에는 여러 계급과 여러 직종이 섞여야 합니다.

파우저: 독일의 도시 사례가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제조업 기반이 여전히 탄탄하면서도 직업적 다양성이 존중받으니 자연스럽게 여러 계층이 도시에 섞여 살게 되죠. 독일의 대학진학률은 여전히 25% 수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클린턴 정부 이후 사람들의 대학을 향한 욕망이 커지면서 현재는 대학진학률이 40% 수준까지 올라왔죠. 그만큼 사람들은 (학비로 인한) 융자금 부담을 더 크게 지게 됐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도시 집중화의 중요한 원인으로 계층 상승 욕구를 거론해야만 할 듯합니다. 오직 상위 5%의 사람만이 강남에 집을 구하고 대학 학비를 충당할 수 있을 텐데, 모두가 성공하기 위해 이 같은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나머지 95%의 사람이 어떻게 살 것인지에 관한 비전을 리더십이 이끌어내야 합니다. 미국은 이에 실패해, 밀레니얼 세대는 한국인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게 됐습니다. 좋은 대학 나와야 해, 좋은 동네에 집을 사야 해, 이런 욕구가 이전 세대에 비해 아주 강합니다.

▲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서울로 인구가 몰려드는 흐름을 거스르려하기보다, 이들을 수용해 더 질 좋은 생활환경을 제공하도록 도심은 초고밀도화하되, 대신 개발에 공공이 적극 관여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프레시안(최형락)

결국 답은 공공개발...정부가 나설 때

-도시 집중화가 앞으로 생존을 위해 필연적이라는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도시 집중화가 이뤄진다면, 즉 민간 자본의 아파트 개발 주도만이 이뤄진다면 결국 도시에서 가난한 이는 모두 쫓겨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김시덕: 한국의 문제는 정부가 조정 기능을 수행하지 않고 나랏돈을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정부가 임대주택을 적극적으로 공급해야 합니다. 앞서도 강조했듯, 한국의 문제는 개발이 아니라, 공공 개발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적극적인 정부 주도 개발로 도시 밀도를 높여야 합니다. 저는 박 시장의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은 좋다고 봅니다.

요즘 임대주택 차별 문제로 사회가 또 시끄럽습니다만, 그럼에도 답은 임대주택 공급 확대뿐입니다. 되도록 자연에 가깝게, 넓은 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건 누구나 가진 꿈이겠지만, 이를 만족하면서 인프라까지 갖춰진 공간에 모두가 거주하는 건 현재로서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파우저: 임대주택 위주로 개발하고, 도시 밀도를 올리자는 김시덕 교수의 말에 동의합니다. 저는 물론 생활공간이 널찍한 삶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서울의 경우 특히 아파트 단지의 밀집도가 너무 낮습니다. 심지어 100% 사람이 사는 게 아닌데도 너무 단지를 넓게, 군부대처럼 짓습니다. 조금 더 콤팩트하고, 주차장은 심지어 없는 아파트도 많이 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홍콩이나 뉴욕과 같은 인구 과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아파트죠. 이처럼 주거단지는 콤팩트하게 올리되, 나머지 공간을 시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원으로 도시 곳곳에 만드는 게 시민 삶에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유럽의 여러 도시처럼 건물 사이사이에 작은 포켓공원을 많이 만드는 게 좋습니다.

김시덕: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서울숲 같이 시 외곽에 커다랗게 자리한 공원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공원이란 동네에서 바로 걸어서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산재해야 합니다. 정부가 민간주택 용적률을 올려주는 대신, 공공을 위한 공간을 내놓게 하면 한국도 가능합니다.

파우저: 이런 문제는 정치가가 리더십으로 밀어붙여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각 주민의 욕망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주민 자율에 맡긴다면 결국 자본 논리에 따라 문제가 휘둘리기 마련이니까요. 올바른 생각을 가진 정치가가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밀어붙여 공공을 위한 답을 내놓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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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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