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전국이 '젠트리 불바다' 될지도

[기고] 도시재생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의 주범은 정부다

현재 중앙 및 지방 정부는, 도시재생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크게 두 가지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바로 '상생협약 체결'과 '공공안심상가 조성' 사업이다. 결론부터 말한다. 두 사업 모두 실효성이 거의 없다.

먼저 '상생협약 체결 사업'을 살핀다. 상생협약서에는 상가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자는 내용이 들어간다. 그런데 잘 알려진 것처럼, 상생협약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임대인이 약속(협약)을 어겨도, 달리 제재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상생협약이 법적 구속력을 갖출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부가 ‘임대인 임차인 간의 상생협약 체결 그 자체’를 강제할 방도가 없어서다.

결국, 정부가 임대인을 어르고 달랜 후에야 겨우 체결되는 것이 상생협약이다. 그런데 그런 상생협약서 안에 임대인 개개인을 법적으로 구속할 수 있는 장치를 설계한다? 어림도 없는 소리다. 서울의 대표적 도시재생지 중 하나인 세운상가 출입문에 나란히 붙어 있는 두 상생협약 관련 공고문은, 상생협약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래에 그 내용을 (띄어쓰기 등을 교정하지 않고) 그대로 옮긴다.

제목 : 상생협약 준수 협조공문

1. 서울시 공사가 준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재생사업을 준비 하면서 임대료 급등을 방지하기 위해 박원순 시장님이 참석하여 상생협약을 체결 하였습니다.
2. 새로운 상가 매수자가 협약서 내용을 모르고 있어 협의회 에서는 중개업소는 계약서에 상생협약 내용을 알리도록 종로구청 과 서울시에 협조공문을 보냈습니다.
어렵게 마련된 상생협약이 준수될 수 있도록 협조 해 주시고 궁금한 사안이 있는분은 세운상가 시장협의회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7년7월20일
세운상가 시장협의회

제목 : 임대료 인상 요구현황 조사
서울시 재생사업 공사가 마무리 되면서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는 사례가 있기에 협의회에서 현황을 접수하고 있습니다.
건물주에게 임대료 인상 요구를 받은 회원께서는 각층 대표에게 요구현황 등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2017년8월31일
세운상가 시장협의회

다음은 ‘공공안심상가 조성 사업’이다. 공공안심상가는 정부가 직접 상가를 매입하여 세를 놓는 사업이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모든 상권의 모든 상가를 매입할 수 없을뿐더러, 심사를 통해 선발된 몇몇 사업장만 특정 건물에 입주하는 형태이므로, 사업의 수혜자가 극히 적다는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소수 사업장만 특정 건물에 입주하는 공공안심상가의 특성상, 주변 상가의 임대료를 낮추는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임대차 시장에서 공공안심상가를 일반 시장과 관계없다고 취급하기 때문이다. 비용 대비 그 효과가 매우 떨어지는 것이다.

정부가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추긴다

정부가 이상의 두 사업을 젠트리피케이션 잡는 특효약인 것처럼 과대 선전하는 사이, 현장의 도시재생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계속 꼬여간다. 지난 2월, 소수의 건물주가 의기투합하면 건축 규제 완화 등의 특례를 적용받아 재건축을 할 수 있는 「빈집 및 소규모주택정비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되었다. 해당 법률에 따른 '소규모주택정비 사업(자율주택정비 사업, 가로주택정비 사업, 소규모재건축 사업)'은 현재 세간에서 ‘미니 재개발’, ‘미니 도시재생’ 등으로 불리며 도시재생 방법론 중의 하나로 취급된다.

오는 6월에는 그 소규모주택정비 사업이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규정하는 도시재생 사업의 하나로 편입된다. 역시 결론부터 말한다. 곧 전국이, '젠트리피케이션 불바다'가 될지도 모른다.

흔히 '골목 사장'이라고 불리는, 동네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임차상인들 안위가 걱정이다. 우리네 골목 상권은 보통 1층은 가게이고 2층 이상은 살림집인, 소위 '상가주택'이 주를 이룬다. 그렇게 생긴 건물은 (소규모주택정비 사업을 벌일 수 있는) 법률상 주택이다. 한편, 대부분의 임차상인이 적용받는 (그리고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있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다른 법령에 따라 철거 또는 재건축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임대인이 임차인의 계약 갱신 요구 등을 거절하고 바로 내쫓을 수 있다.

요컨대 이렇다. 도시재생이라는 기치로, ‘미니 도시재생’이라는 별명의 사업으로, 상가 주택에 소규모주택정비 사업이 시행되면, 골목 사장들은 꼼짝없이 (권리금을 잃고) 길거리로 내쫓긴다.

8월, 정부가 전국 100여 곳의 도시재생뉴딜 사업 선정지역을 발표한다. 7월부터 신청을 받는다. 소규모주택정비 사업을 추진하면 가점을 준다고 한다. 도시재생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의 주범은 정부다.

헬멧 쓰지 않고 오토바이 타기

도시재생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에 구체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안내한다. 우선 전국에서 진행 중인 모든 도시재생 사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 시점 이후로는 '도시재생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이 더는 발생하지 않는다. 도시재생 사업을 잠시 멈춘다고 해서 나라 망하지 않는다. 누가 죽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도시재생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도시재생 사업이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군다. 혹세무민이다. 도시재생 사업을 멈춘 뒤에는, 법률을 정비해야 한다. 그간 시행되었던 도시재생 사업을 전부 검토하여, 어떤 법률 어떤 조문의 빈틈에 의해 사람들이 내쫓겼는지를 추적한 뒤, 그 빈틈을 수선/보완해야 한다.

푸념으로 글을 맺는다. 사람들은 위험한 일을 하기 전에 항상 안전장치부터 착용한다. 가령 오토바이를 타기 전에는 꼭 헬멧을 쓴다. 그런데 정부는, 젠트리피케이션에 제대로 된 안전장치도 설계하지 않는 채로 도시재생 사업을 휘뚜루마뚜루 벌이고 있다. 도시재생 사업은 '상식파괴 사업', '안전불감증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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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기

'나는 나와 내 친구, 우리 이웃이 왜 돈에 쪼들려 사는지를 연구합니다'를 모토로 하는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 소장으로 상위 10%의 부자들이 아닌, 90%의 보통 사람들을 위한 금융, 보험, 부동산, 소비연구 및 컨설팅에 주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합법적으로 임차인을 내쫓아드립니다> <당신이 믿고 가입한 보험을 의심하라> <월급을 경영하라> <우리는 왜 소비를 줄이지 못하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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