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쌍용·르노삼성·GM대우 합병해 국유화했다면...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늦지 않게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차라리 GM대우와 쌍용차, 르노삼성을 묶어서 국유화를 추진하는 게 낫지 않을까?"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2009년) 얘기이다. 상하이차 먹튀와 함께 쌍용차 법정관리가 시작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GM대우(지금의 한국GM) 유동성 위기까지 겹쳤다. 르노삼성의 경영상태도 그다지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자동차 3사, 모두 해외자본에게 팔아넘긴 뒤 먹튀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곳들이 일제히 위기를 맞은 것이다.

쌍용차 77일 점거파업이 벌어지던 시기 앞뒤로 심심치 않게 ‘국유화’라는 대안이 논의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연간 생산량 20만 대도 안 되는 기업을 국유화해서 무슨 소용이 있냐는 반론도 있었다. 그런데 GM대우도 위기에 빠져들자 GM대우와 쌍용차를 합병해서 국유화하자는 주장, 차라리 해외매각 3사를 묶어서 한꺼번에 국유화를 추진하는 대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쌍용차 해법? GM·르노·폭스바겐을 보라")

국유화 주장은 당시 낯선 얘기가 아니었다. 미국의 GM 본사도 그해(2009년) 6월에 파산보호신청과 함께 오바마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한시적 국유화’가 진행되기도 했다. SUV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던 작은 기업 쌍용차만이 아니라 GM대우와 르노삼성까지 묶게 되면 승용차·상용차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자동차기업’이 된다는 장점도 있었다.

10년 전 데자뷔


다짜고짜 '국유화' 논쟁을 다시 해보자고 꺼낸 얘기가 아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만에 쌍용차 주인과 한국GM 이름만 바뀌었을 뿐 똑같은 사태가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의 데자뷔가 우리 눈앞에서 다시 펼쳐지고 있다.

우선 GM대우에서 한국GM으로 간판을 바꿔 단 옛 대우자동차는 지난해 3000명에 달하는 희망퇴직·구조조정과 군산공장 폐쇄에 이어 부평 2공장을 1교대로 축소하더니, 올해에는 인천물류센터 폐쇄에 이어 창원공장을 1교대로 축소하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GM은 적자폭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수익이 나지 않는다며 추가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다. 2018년 한국GM 감사보고서를 보면 GM이 지난해 출자한 금액 중 1000억 원 남짓의 금액을 아예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위해 사용할 용도로 별도 관리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위 사진) 아예 구조조정을 공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하이차에서 마힌드라로 주인이 바뀐 쌍용차는 지난 8월 19일, 예병태 사장 명의로 '임직원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비상경영을 발표하게 된다. 곧이어 쌍용차 사측은 자구계획과 관련해 노사 간 심도 있는 긴급 노사협의를 갖자는 공문을 8월 27일 노조 측에 발송하게 된다. 그동안 보장되던 복지 전체를 중단하자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인도 이름도 그대로인 르노삼성은 2012년 이후 다시 한 번 대규모 희망퇴직이 실시된다. 지난 9월 5일 르노삼성 사내에 ‘뉴스타트 프로그램’이라는 희망퇴직이 공고되었다고 한다. 사측은 희망퇴직 목표인원이 없다고 얘기하지만 업계 내에서는 400명 안팎으로 예상한다. 만일 이 수치가 사실이라면 생산직 1800명의 20%가 넘는 규모이다.

'틈새'를 파고든 한국 자동차산업

2009년에 불어닥친 위기는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과 함께 터져나온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당시 금융위기는 매우 폭발적인 양상으로 터졌고, 전세계 경제가 마치 심장마비에 걸린 듯 잠시 동안 완전히 마비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이 위기는 산업위기·생산위기로 번지기는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회복기에 접어든 것처럼 보였다.

당시 미국의 빅 3(GM·포드·크라이슬러) 중 GM과 크라이슬러가 파산보호신청에 들어가 GM은 연방정부 구제금융으로 한시적 국유화의 길을, 크라이슬러는 이탈리아 피아트에 매각되는 길을 걷게 된다. 금융위기는 ‘미국발’이었고 따라서 미국의 생산과 산업, 특히 자동차산업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당시 틈새시장을 파고들 수 있었다. 위기로 인해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지자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저가형 소형차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당시 글로벌 메이커들 중 유럽 쪽을 제외하면 소형차에 강점을 가진 기업은 현대기아차가 유일했다. GM의 글로벌 네트워크 내에서도 소형차라면 단연 한국GM이 강점을 갖고 있었다.

미국의 빅 3가 맥을 못 추고 있던 그 시기에 현대기아차는 미국 시장점유율을 극적으로 높일 수 있었고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 GM이 파산보호신청으로 허덕이고 있던 시절, 한국GM은 전세계 GM 생산물량의 무려 20%를 차지하며 잔업과 특근으로 공장가동이 멈춰지지 않았다. 당시 한국GM에 닥쳐온 건 '유동성' 위기, 즉 생산이 아니라 현금 부족 사태였다.

ⓒ연합뉴스

위기의 배경과 양상은 다르지만

하지만 그 '틈새시장'은 오래가지 않았다. 구조조정을 마친 빅 3는 새 단장을 마치고 출격을 시작했다. 그 사이 어마어마하게 성장한 중국은 이제 저가형 자동차가 아니라 미래자동차의 최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기아차와 한국GM이 누리던 소형차 주류시대는 대략 2013~2014년을 정점으로 꺾이게 된다.

2013~2014년을 정점으로 한국의 자동차산업 생산량과 판매량·수출량은 정체와 하락을 거듭하게 된다. 다만 조선업처럼 위기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오지 않았을 뿐, 위기의 징후들은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10년 전 데자뷔는 데자뷔, 즉 기시감(이미 본 것 같다는 느낌)이라는 이름의 착시현상일 뿐이다. 10년 전과 지금의 위기는 배경과 양상이 조금씩 다르다. 3사의 위기 수준만큼은 아니지만 현대·기아차 역시 2009년의 상황과는 완연히 다른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그 본질적 문제가 달라졌을까?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어쩌면 일개 기업이나 국가가 어떻게 해볼 여지가 없는 것, 즉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고 해도 좋을 상황이다. 하지만 위기를 맞은 3사 모두 해외자본에 매각된 기업이라는 점, 즉 한국의 산업정책과 무관하게 해외 본사의 이해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는 점은 여전히 똑같은 상황이다.

10년 전처럼 당하지 않으려면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대안과 관련한 논의가 시작될 필요가 있다. 10년 전처럼 이미 늦어버리면 대응할 시간을 가지 못하게 된다. 앞에서 소개한 ‘국유화’는 선택 가능한 여러 가지의 대안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게다가 산업과 경제의 문제는 객관식 문항의 답지를 선택하는 것과 달리 서술형·논술형 문제를 푸는 것 아니던가.

그러나 여전히 '혁신성장'이라는 획기적인 산업정책을 기획하겠다던 문재인 정부는 '수소 경제'가 어떠니 '광주형 일자리'가 좋다느니 하는 얘기만 늘어놓고 있다. 그러는 사이 산업과 경제는 사라지고 사업장별로 자본가들이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해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대규모 희망퇴직, 공장 폐쇄, 복지 중단, 임금 삭감….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나설 수밖에. 이번 위기의 뿌리가 무엇인지 파헤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위기의 양상과 배경이 무엇인지, 전혀 다른 해법을 내놓은 자본에 맞서 어떻게 노동자들의 해법을 만들어낼 것인지, 그리고 해법을 내놓지 않는 정부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바로 지금부터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늦지 않게 <인사이드 경제>도 나서볼 생각이다. 추석 연휴를 보내고 곧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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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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