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또 하나의 청문회

[안종주의 안전사회] 가습기살균제 참사 청문, 산자부는 왜 빠졌나?

지난 27일과 28일 이틀간 가습기살균제 청문회가 열렸다. 지난 2016년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이은 두 번째 가습기살균제 청문회이자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한 뒤 열린 첫 청문회였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한 다양한 의제들이 다루어졌다. 그 가운데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는데도 대다수 언론이 잘 다루지 않은 부분을 중심으로 두 차례 나눠 연재한다. 첫 번째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국가 책임이고 두 번째는 골든타임을 놓친 부분이다(편집자)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국가 책임은 과연 없나?

지난 31일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원인이 밝혀진 지 8년째를 맞았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정확한 피해 규모도 모른다. 아직도 피해자 찾기와 피해자 신청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판 기업들에 대한 단죄도 현재진행형이다. 옥시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 등 일부 기업 관계자 등에 대한 사법 판단은 내려졌지만 애경과 에스케이케미칼 등 나머지 기업들에 대해서는 초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에서 매우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국가 책임 여부다. 피해자들은 이 사건에서 국가 책임 또한 적지 않다고 보고 국가를 상대로 형사책임을 묻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1심에서 국가 책임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로 쓰인 화학물질 성분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법제도가 미비했다는 이유를 대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지난달 27~28일 이틀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청문회를 열었다. 이번 청문회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 그리고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한 것이었다. 당연히 특조위 청문위원들도 국가 책임 여부를 묻고 따졌다.

국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지점은 두 곳이다. 하나는 살균제 원료로 쓰인 물질, 즉 옥시레킷벤키저가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제품인 '가습기당번' 등에 들어간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와 염화에톡시폴리구아니딘(PGH)과 1994년 유공의 첫 제품과 애경 가습기메이트 등에 쓰인 염화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에 대한 정부의 관리 부실과 이들 화학물질을 사용한 제품이 시중에서 팔리는 것과 관련해 정부가 제품 안전관리를 제대로 했느냐이다.

물론 화학물질 안전 관리와 제품 안전 관리를 정부가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이 제품이 17년간 아무런 제제를 받지 않고 팔렸다. 심문의 초점도 그 기간 동안 법·제도적 장치가 미비했느냐와 당시 외국은 어떠했느냐, 그리고 당시 있었던 법 테두리 안에서는 제품 안전관리를 할 수 없었느냐에 모아졌다.

▲28일 서울시청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열렸다. ⓒ프레시안(최형락)

국가 직접 책임을 물을 산자부는 청문 대상에서 제외

직접적인 국가 책임을 묻겠다면 제품이 시장에 나오는 것을 막지 못한 것과 시장에 나온 뒤에도 제품의 안전 여부를 관리하지 못한 것을 따져야 한다. 이와 관련한 책임 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이다. 하지만 이번 청문회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제품 안전 관리에 대한 정부 책임 추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조위는 전·현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관련자를 단 한 명도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부르지 않았다. 청문 대상에서 아예 빠진 것이다.

이 때문에 청문회에서는 제품의 원료로 쓰인 화학물질 안전 관리를 정부가 제대로 했는지에 대해서만 따졌다. 국가 책임을 간접적으로 물을 수 있을 뿐이다. 담당 부처는 환경부이다. 가습기살균제 첫 제품이 나오기 전인 1991년 우리나라에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원료물질인 PHMG, PGH, CMIT, MIT 등을 이 법에 따른 유독물로 지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들 화학물질은 아무런 제제 없이 가습기살균제로 쓰일 수 있었다. 용도 제한도 이루어지지 않아 급기야 흡입 제품에도 무방비로 사용됐다.

PHMG, PGH는 모두 고분자 물질이다. 이는 분자량이 매우 크다는 것을 뜻한다. 물질은 분자량이 클수록 인체 위해 가능성이 낮아진다. 덩치가 큰 물질은 세포 내로 침투해 악영향을 끼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고분자물질이라고 해서 다 안전한 것은 아니다. 양이온을 띤 고분자 물질, 즉 양이온성 고분자물질은 독성이 문제가 된다. PHMG, PGH가 바로 문제의 양이온성 고분자물질에 속한다.

따라서 PHMG, PGH와 같은 양이온성 고분자물질에 대해서는 독성 자료 제출을 요구해 유해성 심사를 적극적으로 벌였어야 했는데 이런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청문회에서 당시 환경처(지금의 환경부)가 이 성분들의 독성과 위험성을 알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시행과 더불어 당시 환경처는 화학물질심사단을 꾸렸다. 심사단에는 국내 화학물질 전문가들도 대거 포함됐다.

양이온성 고분자 PHMG, PGH, 독성 알고도 유해성 심사 안 해

심사단은 양이온성 고분자 물질의 독성을 파악하고 있었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양이온성 고분자물질을 일반 고분자물질과는 달리 유해성 심사를 까다롭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당시 회의록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물질에 대한 유해성 심사를 하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환경부는 이들 물질의 사용 용도에 대한 조건 없이 유독물이 아니라고만 고시해 해당물질이 아무렇게나 쓰여도, 즉 흡입할 수 있는 형태로 사용돼도 문제를 삼을 수 없었다. PHMG, PGH는 처음 국내에 사용된 신규화학물질로서 최초 용도는 카펫 항균제였다.

하지만 한번 시장에 진입한 이 물질은 용도가 완전히 바뀌어 1997년 가습기살균제로 쓰였다. 2001년에는 옥시레킷벤키저가 이 성분이 들어간 가습기제품을 만들어 시장을 주도했다. 그 뒤 PHMG, PGH 성분의 가습기살균제는 주류 제품이 되어 불티나게 팔렸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뒤 숨진 사람의 90% 가량이 이 성분의 가습기살균제를 들이마셨다.

애경 가습기메이트 제품 등에 사용된 성분은 CMIT/MIT이다. 이 성분은 가습기살균제가 개발되기 전부터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 곳곳에서 널리 사용되어온 살균제 물질이다. 미생물 생육 억제 등을 위해 화장품이나 샴푸, 물휴지, 치약 등 매우 다양한 제품에 보존료나 살균제 용도로 들어갔다. 지금도 유럽 등 선진국 등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겪은 뒤 사실상 퇴출됐다.

환경부, 22년간 CMIT/MIT 유해성 심사 손 놓아 비극 자초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제정 이전부터 사용돼온 물질을 기존화학물질이라고 부른다. CMIT/MIT는 기존화학물질이다. 기존화학물질은 그동안 널리 사용해온 물질이기는 하지만 안전성이 확보된 상태는 아니다. 안전한 물질일 수도 있고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용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위험성 정도는 달라질 수 있다.

당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은 기존화학물질에 대해서는 국가가 직접 유해성을 평가하도록 했다. 하지만 당시 환경처는 물론 그 뒤 환경부 시절에도 이 물질의 유해성 심사를 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 물질과 관련한 무려 22년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벌어진 뒤 환경부는 뒤늦게 2012년 유독물로 지정했다. 이 부분이 바로 국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지점이다.

2016년 국회 가습기살균제 사건 국정조사에서 당시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CMIT/MIT는 사용유통량이 적어 유해성 심사 우선 대상에서 밀려 지금까지 안전성 시험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번 청문회에서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 이들 물질보다 유통량이 훨씬 적은 화학물질 가운데에도 유해성 심사가 이루어진 것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청문회에서 출석한 관련 증인과 참고인들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우리나라는 화학물질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낮았고 관련 예산도 미미했으며 법·제도 또한 선진국의 그것에 견주어 미비했다고 밝혔다. 이런 변명은 물론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엄청난 참사가 일어난 뒤의 해명이기에 변명처럼 들린다. 그런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거의 모든 사고와 재난은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PHMG, PGH, CMIT/MIT와 같은 유해화학물질을 1990년대와 2000년대 유독물질로 지정했다고 하더라도 이들 물질이 가습기살균제 성분으로 쓰이는 것을 막지 못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지적이 맞다 하더라도 적어도 유독물로 지정되었더라면 이들 물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한 정부와 전문가들의 관심이 커져 가습기살균제로 쓰이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떨치기는 어렵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로 인한 피해와 우리 사회에 준 충격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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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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