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가 아니라 '덩치 큰 용역업체'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자회사가 정규직 전환이라는 기막힌 사기술

"비정규직 없는 비정규직 세상, 덩치 큰 용역업체"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의 상당 부분은 온전한 정규직화가 아니라 '자회사'라는 짝퉁 정규직화였다. 이런 방식을 민간부문에서도 도입하기 시작했는데, SK브로드밴드의 인터넷·IPTV 설치와 수리를 담당해온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 4~5000명이 2017년 7월에 '홈앤서비스'라는 SK브로드밴드 자회사로 흡수된 바 있다.

하지만 반년도 지나지 않아 본색이 다 드러났다. 언론에선 '민간부문 최초 대규모 정규직 전환'이라며 대서특필을 해댔지만, 받는 월급봉투는 달라지지 않았고 노동강도 역시 그대로였다. 실질적 권한을 가진 모회사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면 "교섭에 응할 법적 의무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홈앤서비스 노동자들은 자회사 전환 1년 만에 총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뭐가 달라진 걸까? 비정규직 시절과 달라진 게 없는데 언론에선 나를 자꾸 정규직이라 부른다. 50~100명 규모의 용역업체가 4~5천 규모의 큰 하청업체로 바뀐 것뿐이다. 그러니 홈앤서비스 노동자들은 자회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비정규직 없는 비정규직 세상, 덩치 큰 용역업체'라고 답한다.

"이게 무슨 정규직 전환이냐?"

공공부문이건 민간부문이건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은 거의 똑같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자회사 전환 1년도 되지 않아 총파업에 나선 SK브로드밴드 자회사 홈앤서비스 노동자들 역시 가장 큰 불만은 그저 소속만 바뀌었을 뿐 임금과 처우는 용역업체 시절 그대로라는 사실이었다. 몇 가지 사례를 직접 들어보도록 하자.

""자회사 전환 후 1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홈앤서비스(자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전혀 나아진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자회사 노동자들의 월 기본급은 158만 원으로 올해 적용되는 최저임금 157만 3,770원과 비슷한 수준"이라 밝혔다".(2018년 6월 30일 자 <민중의 소리>)

"(잡월드파트너스라는 자회사 소속으로 변경된 뒤) 임금은 최저시급에 150원 더 받고 주 6일 일해야 200만원 간신히 받고 있습니다. 개관 7년을 자랑하는 잡월드가 7년 근속한 직원과 오늘 입사하는 신입직원과 같은 임금을 주고 있습니다."(2019년 7월 10일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한국잡월드분회 이주용 부분회장)

"2017년 자회사 역무원 2,553만 원, 용역회사 역무원은 2,680만 원이었고, 사실 이마저도 실제로는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우린 2004년 이래로 매년 기본급이 최저임금보다 낮고, 직무수당까지 더해야 겨우 최저임금을 받았으며, 15년을 일해도 그랬습니다."(2019년 7월 15일 "자회사 싫어! 비정규직 이제그만 투쟁문화제"에서 코레일네트웍스지부 서재유 지부장)

"20년 넘게 근무한 노동자의 월급이 182만원에 불과합니다. 정규직화가 된다고 해서 좋아했는데, 일부는 월급이 30만 원 깎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먹고 살 만큼의 온전한 정규직 전환이자 상식적인 정규직 전환을 원하는 것뿐입니다."(2019년 8월 26일 <아시아타임즈> KAC공항서비스 노동자)

고용안정은 개뿔

그래도 공공기관의 자회사 소속으로 변경되었으니 용역업체 시절에 비하면 고용은 안정되지 않았을까? 최소한 업체가 변경될 때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일은 없어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자회사를 이미 겪어본 노동자들의 얘기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구조조정을 하기에 자회사만큼 유리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2015년 신분당선에서 일하던 역무원들이 이브릿지라는 민간회사로 넘겨졌습니다. 2016년 유카에 근무하던 직원들이 조용히 해고됐고, 2017년 여객업무분담역에 근무하던 역무원들이 해고됐습니다. 자동화·무인화를 한다며 2017년 5월에는 여객철도 역무원 200여 명을 단계적으로 해고하려 했고 (중략) 자회사는 스스로 인력충원을 할 수 없고, 고용안정도 보장하지 못합니다."(2019년 7월 15일 코레일네트웍스지부 서재유 지부장)

""더 버텨봤자 꿈이 없는 것 같다. 자회사 정규직 채용 이후에도 최저임금만 받는 건 여전하고, 복지 역시 별반 나아진 게 없었다" "동료들 상당수가 버텨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중략)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에 따르면 조씨처럼 정규직 전환 이후 잡월드파트너즈를 떠난 강사는 지난 7개월간 20여명에 달한다."(2019년 7월 10일 자 <국민일보> "7년 버텨 정규직 됐는데3개월 만에 자진 퇴사")

"스마트톨링이 도입되면 이를 빌미로 톨게이트 인력을 줄여야 한다고 구조조정을 밀어붙일 테고, 이 업무들을 자회사로 모아놓으면 구조조정을 용이하게 할 수 있게 된다. 한국도로공사는 이미 자회사였던 하이플러스카드, DB정보통신, 드림라인 등 여러 개 자회사를 매각한 경험도 있지 않은가!"(2019년 6월 30일 해고된 톨게이트 수납노동자)

기타 공공기관 지정 통해 안정성 강화?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자회사를 강요해 도로공사에서 해고당한 무려 1,500명의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의 투쟁이 2달 넘게 진행되고 있다. 도로공사 이강래 사장은 "고용안정을 위해 자회사를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공기관의 자회사를 다시 공공기관으로 지정한다? 하지만 이것도 이미 대안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상태이다.

"코레일네트웍스는 철도공사의 자회사이자 기타 공공기관입니다. 그러나 이는 형식상 목적이고, 실제로는 용역형 자회사 입니다."(2019.7.15. 코레일네트웍스지부 서재유 지부장)

이미 코레일네트웍스는 철도공사의 자회사이자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어 있음에도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려왔던 것이다. 또한 공공기관 지정과 해제는 매년 1월 기획재정부 주관으로 '공공기관 운영위원회'를 열어 결정하고 있는데, 다양한 조건에 따라 언제든지 공공기관 해제가 가능하다. 올해 1월에도 부산항과 인천항 보안공사 등 6곳이 공공기관 지정이 해제된 바 있다.

"정부 정책이 바뀌면 다시 외주화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자회사로 전환해야 한다."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립대병원에서도 파견·용역 노동자들을 온전한 정규직화가 아니라 자회사 방식 전환을 밀어붙이려 한다. 그 과정에서 병원 관계자들이 자회사를 고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권이 바뀌면 또 외주화할 수 있으니 언제든 외주화가 가능하도록 자회사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자회사가 왜 정규직이 아닌지 제대로 보여주는 얘기 아닌가!

자회사를 또 쪼개? 도로 용역회사!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한 전국의 14개 공항을 통합 관리하는 공기업 한국공항공사, 여기도 인천공항과 마찬가지로 파견·용역 노동자 대부분을 'KAC공항서비스'라는 자회사로 몰아넣었다. 비정규직 중 소방과 폭발물처리반 200여 명은 공항공사가 직접 고용하고, 공항운영·시설관리 등 4000명은 자회사로 전환하기로 했으며 올해 6월 30일 현재 1285명이 자회사로 전환되었다.

출발할 때에는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고 선언했지만, 그 선언이 휴짓조각이 되기까지는 불과 1년도 걸리지 않았다. 우선 자회사 전환 과정에서 기존 상여금 200~400%가 100%로 대폭 삭감되었다. 상여금 삭감분은 기본급으로 전환되어 임금총액은 변화가 없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임금인상 효과를 전혀 누릴 수 없었다.

그뿐이 아니다.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을 결정했던 공사의 '노·사전문가 상생협의회'는 지난 7월 2일 자회사를 다시 3개로 쪼개자는 결론을 도출했다. 공항운영·시설 분야는 복수 자회사(중부 권역 1개, 남부 권역 1개)를 설립하고 보안검색·특수경비 분야는 단일 자회사를 설립한다는 합의서를 발표한 것이다. 인천공항 역시 호시탐탐 자회사 쪼개기를 노리고 있다.

여러 개의 용역회사에 쪼개져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하나의 자회사로 모았다가, 다시 자회사를 3개로 쪼개서 노동자들을 갈라놓는다? 이거야말로 덩치 큰 용역회사를 만들었다가 도로 쪼개서 과거 용역업체 시절로 되돌린다는 것 아닌가. 아니, 이럴 거면 대체 뭐하러 '정규직 전환'이라는 쇼를 벌였단 말인가!

자회사라는 사기에 맞서

문재인 정부 정규직 전환 정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자회사 방식, 이건 정규직화가 아니라 조금 큰 용역업체로 바꾸는 것에 불과했다. 고용도 불안하고 여전히 최저임금에 시달린다. 하지만 정부는 이제 더 이상 이들을 비정규직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비정규직 없는 비정규직 세상'이 열린 것이다.

정부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그동안 용역업체에 지급하던 이윤, 일반관리비 등을 아낄 수 있어서 처우개선에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그건 온전한 정규직 전환, 즉 직접고용으로 전환할 경우에나 확인할 수 있는 효과일 뿐이다. 자회사로 전환할 경우 덩치 큰 용역업체에 불과한 자회사 관리자들에게 이윤과 일반관리비가 소모되고 만다.

그래서 문재인식 정규직화인 자회사 전환은 1년도 지나지 않아 사기임이 모두 드러나고 있다. 당선된 지 사흘 만에 인천공항을 전격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에 환호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제 그 모든 약속이 사기와 거짓에 불과했음을 온몸으로 경험하며 저항에 나서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자회사 전환에 반대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1,500명 집단해고를 겪은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은 지금도 서울톨게이트 고공농성과 청와대 앞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대병원·부산대병원을 비롯한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회사 전환을 밀어붙이는 대학 당국에 맞서 지난 8월 22일부터 무기한 전면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철도공사의 자회사 코레일네트웍스지부는 임단협이 진행 중이며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9월 초부터 파업 돌입을 논의하고 있다. 자회사 쪼개기가 시도되고 있는 KAC공항서비스 노동자들은 현재 쟁의 절차를 밟고 있으며 추석을 전후로 파업 시기를 고민하고 있다.

"덩치 큰 용역회사란 말도 아까워요. 정확히 말하면 용역업체만도 못한 자회사인 거죠."

자회사로 전환된 노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던 때,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29일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 우수사례집'을 발간하고 모범사례로 꼽은 한국 국제협력단 사업장을 방문했다. 자회사로 전환된 노동자들과 고용노동부, 둘 중 어느 한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거짓말쟁이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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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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