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신공항이 최선인가?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국가균형발전과 남부권 관문공항

국가균형발전을 국책 어젠다로 채택했던 노무현 정권(2003~2008) 하반기에 기존의 지자체 단위로 추진되었던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의 하나로 광역경제권 설정과 함께 광역경제권의 핵심 인프라로 제2관문공항(남부권 신공항)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당시 건설교통부는 2007년 11월 '제2 관문공항(남부권 신공항) 건설여건 검토 연구'라는 연구보고서를 간행했다.

이 보고서는 남부권 신공항의 건설을 전제로 하면서도 검토대상의 공간적 범위를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 경상북도 그리고 경상남도로 한정했다. 바꿔 말하면 '영남권 관문공항' 건설 타당성을 분석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영남권 관문공항' 건설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화와 백지화 및 기존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정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만 전용됨으로서 영남지역을 포함한 남부권 주민들의 열망을 야멸차게 무시했다.

영남권 신공항입지의 선정용역업체인 ADPi(파리공항공단)도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최종안은 정치적인 이유로 선정되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런데 2018년 지방선거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 공약을 내세운 더불어민주당 오거돈 후보가 당선되면서 "영남권 5개 광역시·도의 합의"로 가닥을 잡았던 영남신공항은 다시 정치 이슈가 됐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2월13일 동남권 신공항 재검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착공도 못한 김해신공항계획은 흔들리고 있다. 그 후폭풍으로 아직 입지도 정하지 못한 대구신공항 건설계획도 덩달아 표류하면서 이제는 '영남권 관문공항'건설을 둘러싼 지역 간, 여야 간 나아서 정부와 여당 간의 논쟁과 갈등은 도를 넘어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의 얽히고설킨 갈등은 지난해 10월부터 '부울경 동남권관문공항검증단(부울경 검증단)'이 김해신공항 추진 백지화와 영남권이 아닌 부울경만의 동남권 신공항 카드를 제시하면서 촉발됐다고 하겠다. 더욱이 부울경 검증단은 '동남권 신공항=가덕도'라고 점을 기정사실화 하기도 했다.

현재 계획의 김해 신공항으로는 '제2의 중추공항'을 의미하는 남부권 혹은 영남권 관문공항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문제가 많다는 것은 그동안 수차례 검증된 것이다. 그렇다면 가덕도를 전제로 한 동남권 신공항이 아니라 영남권 전체 혹은 남부권을 아우르는 관문공항 건설이야 말로 노무현 정권의 국가균형발전정책을 계승함과 동시에 부울경을 포함한 남부권의 국제적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검증단은 가덕도 신공항은 영남권 관문공항이 아니라 부울권만의 관문공항이니 대구경북은 관여할 바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당초 국가균형발전과 남부권의 발전을 위한 추진되었던 핵심 국책사업을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행위이다.

남부권 관문공항을 둘러싼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입지론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추진 과정과 절차에 있어서 합리성과 정당성 면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존재한다. 첫째 입지대상 시설의 실체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이에 대한 법적근거와 예산확보가 전제되지 않은 채 입지부터 결정한다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둘째, 인구 1300만 명과 20여 개의 국가산업단지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업집적지를 형성하고 있는 영남권은 산업구조와 가치사슬 상으로 하나의 경제권이다. 이 정도의 경제권라면 단일 관문공항 배후지 규모로서의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따라서 관문공항의 배후지는 당연히 영남권 경제권 전체가 되어야하고, 그 입지는 경제권의 주요 도시와 산업단지로부터의 접근성은 공항입지 선정의 최우선 요소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셋째, 입지 선정은 그 과정과 절차상의 합리성과 정당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결과가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넷째, 입지선정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은 선호요인이 아니라 배제요인이다. 특정 시설의 입지평가 대상지역의 각 요인별 점수의 총합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경우에도 결정적 배제요인을 극복하기 어렵다면 그 지역은 후보지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상의 입지론의 관점에서, 이번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남부(영남)권 관문공항에 대한 대안적 해결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당초 수도권의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부(영남)권 관문공항 건설의 핵심 가치는 국가균형발전이었다. 그리고 국가균형발전의 기본단위는 광역지자체가 아닌 광역경제권이었다. 왜냐하면 각 지자체 규모로는 국제경쟁력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역경권의 핵심 인프라인 관문공항의 배후지, 즉 이용권역의 기본단위는 광역경제권이 되어야 한다.

경제권은 정치나 행정 논리가 아니라 경제주체 간의 네트워크, 특히 산업 내, 산업 간의 가치사슬에 기반하여 설정되어야 한다. 부울경지역이나 대구경북지역은 지구적 차원의 경쟁에 대처하기에는 우선 개별 경제권으로는 규모면에서 한계를 가진다. 뿐만 아니라 영남권은 가치사슬 상으로 단일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

둘째, 영남광역경제권의 핵심 인프라로서의 관문공항 건설에 있어서 최우선 과제는 입지선정이 아니라 공항의 배후지역인 영남권 광역경제권의 여객뿐만 하니라 화물을 포함한 항공수요 잠재력과 향후 항공기술의 발전 등 종합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공항의 기능, 배후지의 공간적 범위, 시설규모, 운영체계 그리고 법적근거와 예산을 포함하는 영남권 관문공항의 실체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이러한 실체에 입각하여 입지 기준과 평가 지표를 개발하고 실제 입지를 선정하는 것이 합리적 과정이다.

셋째, 입지 선정은 결과만큼이나 과정과 절차상의 합리성과 정당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현재 영남권신공항이 정쟁의 핵심이 된 원인은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의 훼손에서 찾을 수 있다.

2016년 6월김해공항 확장이라는 결과에 TK와 PK 모두 크게 반발하였다. 그럼에도 영남권 신공항을 둘러싼 10년이 넘은 논란과 갈등의 매듭을 풀 수 있었던 것은 ①입지선정 기관이 중립적인 세계적 전문기업이라는 것과 ②최종 결정에 다섯 단체장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불복의 명분을 차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를 지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절차적 정당성을 파기한 부울경 단체장과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국무총리실을 비롯한 정부의 처신은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의 갈등과 정쟁의 실타래를 풀고 당초 목표로 했던 제대로 된 남부권 혹은 영남권 관문공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익과 갈등조정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정부가 '절차적 합리성'을 복원하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최선의 방안은 남부권 관문공항의 완공이다. 영남권 전체의 번영과 삶의 질을 제고하고 국가균형발전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추진되었던 남부권 관문공항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였던 지난 정권들의 전철을 현 정부는 답습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남부권 관문공항과 핵심 국책사업을 총선과 대선 관리차원으로 전략화하는 것도 뿌리 깊은 적폐다. 이러한 적폐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반드시 청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정부는 적폐청산을 최우선 정책 아젠다의 하나로 채택하였고 또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절차상 요건을 갖춰 김해신공항에 대한 재검증을 하겠다고 국회 대정부질의를 통해 국민에게 약속했다. 지금부터라도 재검증 결과에 대비해서 모든 관련 주체들이 정략적 이해관계를 떠나 제대로 된 남부권 관문공항 건설을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지역 간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울경'과 '대구경북'은 둘이 아닌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할 필요성을 함께 인정하고 행동하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 소개>

이철우 교수는 일본 나고야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북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경북대학교 지역개발연구소 소장, 대구광역시 도로명주소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중이다. 대한지리학회, 한국지역지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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