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는 안보 위기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기후변화로 인류 파멸, 사실인가, 과장인가?

‘"기후변화로 30년 뒤 인류 파멸" 이미 파멸은 진행 중’(<미디어오늘> 7월13일), ‘"기후변화로 30년 뒤 대부분의 인류문명 파멸"’ (<뉴스 1> 6월5일) ‘"2050년 전 세계 주요 도시 생존 불가능"…서울은?’(<헤럴드경제> 6월5일자).

최근 국내 언론이 기후변화가 지구촌과 인류에게 악영향을 줄 파국적 결과를 소름끼치는 표현을 사용하며 잇따라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보도는 호주 국립기후복원센터가 지난 5월 22일 펴낸 ‘실존적인 기후 관련 안보 위기–시나리오적 접근’이란 짧은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지난 10일에는 국내 민간연구기관인 생태적지혜연구소(ecosophialab.com)가 전문을 번역했다. (이 글에서도 이 번역문을 일정 부분 참고했다).

또 이 보고서가 나온 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은 지난 12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시민사회의 공동 행동 논의를 하는 집담회를 제의한 바 있다. 그 결과 오는 23일 그린피스 등 9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모여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살펴보고 구체적인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지구온난화로 인한 폭염의 계절에 우리나라에서도 기후변화 위기가 논의의 광장에 본격 진입하여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 보고서의 내용과 지향은 서문에 잘 드러나 있다. 호주국립대학교(ANU) 아시아-태평양 대학인 코랄벨스쿨 전략방어연구센터의 명예교수인 크리스 배리는 이 보고서의 서문에서 동료 교수 윌 스테판(Will Steffen)의 말을 빌려 “기후변화는 기술적 문제도 학문적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사회·정치적 가치들의 문제이다. (…) 우리는 기후 체계가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에 우리의 생각을 확 뒤집을 사회적 변곡점 필요하다.”며 “직접적이고 과감한 조치가 없다면, 전망은 어둡다. 우리는 집단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우리의 공동체들을 이끄는 강력하고 단호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호주 보고서, 기후위기로 세계 인구 절반은 생활 불가능

국내 언론은 이 보고서 내용 가운데 기후변화가 몰고 올 아포칼립스(종말, 대참사)적인 미래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후변화와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가뭄, 해수면 상승, 환경 파괴로 수십억명의 인구가 이주해야 한다거나 뜨거운 지구(Hothouse Earth) 효과로 지구 면적의 35%, 전 세계 인구 55%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생활이 불가능해진다는 것 등이 그런 내용들이다.

다시 말해 기후변화로 아마존 열대우림, 북극 등 생태계가 붕괴하면서 빠른 속도로 지구 생태계가 변해 인도 뭄바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중국 텐진과 광저우, 홍콩, 태국 방콕, 베트남 호찌민 등 세계 주요 대도시에선 인류의 생존이 불가능해지고 또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네덜란드, 미국, 남아시아 등 전 세계 해안도시도 범람한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이와 함께 2015년 맺은 파리기후협정에 따르면 2100년경 지구 온도는 현재보다 3°C 이상 상승하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지만 이 수치는 장기간의 탄소순환변동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현재 인간 활동이 전례 없는 속도로 기후 체계를 교란시키고 있기 때문에 실제 온난화는 2100년경에 약 5°C 상승할 것이라는 매우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지구 재앙 초래 위험은 최악 시나리오에 바탕을 둔 대응해야

호주 보고서는 인류 멸망 내지는 지구촌 붕괴 등과 같은 문제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쪽과 인간의 개입으로 인해 실제 위험은 훨씬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는 낙관적 입장 가운데 전자를 반영하고 있다. 비관과 낙관 두 관점 가운데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는 쉽게 판정하기 어렵다. 미래 예측은 매우 힘들고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촌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사안의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에 바탕을 둔 사고와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수십 년간 지구촌 인류에게 대재앙을 초래할 것으로 지목된 것들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만 꼽아도 핵전쟁, 감염병 창궐, 인구폭발과 식량 부족으로 인한 대량 기아,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이상 기후, 급격한 생물종 소멸, 농약 등 유해화학물질과 환경호르몬 범람으로 인한 인간 생식 불능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아직 그 전망을 확실하게 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실제보다 많이 부풀려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핵전쟁은 미소냉전 시절 매우 위험하고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 위험을 피부로 느끼는 이들이 많지는 않다. 인구폭발과 식량 부족의 경우에도 맬더스 이후 여러 인구학자가 줄기차게 그 위험성을 지적해왔다. 그러나 그 사이 녹색혁명 등으로 아직 현실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지금 이 상태를 그대로 두면 2100년께 지구촌 인구가 109억 명이 되기 때문에 과잉인구로 인한 지구 생태계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또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열대우림 등 산림파괴로 동식물종의 급격한 감소로 생물다양성이 크게 파괴돼 새로운 생물 멸종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1960년대 레이철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1990년대 테오 콜본 등은 <도둑맞은 미래>에서 각각 살충제와 환경호르몬 물질의 남용으로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이 무너지고 정자 감소로 인한 인간의 종 번식에 심각한 결함이 생기면서 인류의 멸절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30~5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염려했던 현실이 도래하지는 않았다.

지구 재앙 문제들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 모두 일리 있어

여기에 대해서는 서로 엇갈린 주장이 가능하다. 애초 저자 등이 미래 발생 가능성이 낮음에도 너무 비관적 전망을 하여 곧 현실이 될 것처럼 예측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저자 등의 주장에 따라 그 뒤 염소계 농약을 비롯한 맹독성 농약과 환경호르몬 물질 사용에 대해 규제 내지는 금지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설명도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대표되는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도 그동안 이런 비관론과 낙관론이 엎치락뒤치락 하며 엇갈린 전망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호주 국립기후복원센터의 보고서도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또 하나의 비관론 최신판인 셈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비관론적 보고서로만 여기지 말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여 전략과 정책을 다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에 대해 온몸으로 저항하는 시민과 학생, 정치인들이 점점 세력을 넓히고 있다. 한재각 소장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시민사회의 공동 행동 제안 성명을 통해 “영국에서는 '멸종저항'이라는 대중조직이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비폭력 직접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스웨덴의 16세 청소년이 시작한 '기후 학교 파업' 시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벨기에, 호주, 독일 등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3월 15일과 5월 24일, 세계적인 기후파업이 조직되어 수십만 명의 학생들이 학교 대신 거리를 메워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도둑맞은 미래를 돌려놓으라고 주장했다.”며 최근의 상황을 전했다. 한국에서도 지난 5월2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524청소년기후행동 주최로 기후변화 대응 촉구 집회가 열린 바 있다.

그는 “과학자들의 경고, 전 지구적으로 목격되는 기상이변, 그리고 대중의 급진화한 기후행동으로 인해 세계 각국 정부가 반응하고 있다. 올해 들어 영국, 프랑스, 캐나다, 아일랜드 등 15개 국가와 뉴욕을 비롯한 1백여 개의 도시들이 기후변화를 국가 비상상태로 선언하고, 많은 자원과 역량을 동원해서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나섰다.”며 “2030년 혹은 2040년부터 석유를 태우는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겠다는 선언이 선진 각국에서 잇따르고 있다.”고 소개했다.

시민사회, 에너지전환 위축 등 기후위기 대응 부실 각성 촉구

오는 23일 시민단체 연대회의를 통해 시민사회가 공동 행동 방침과 전략을 세우면 최근 유럽에서 벌어진 것과 유사하게 학생과 시민들을 더욱 짜임새 있게 조직해 강력한 기후변화 대응 행동을 벌일 것으로 본다. 이를 통해 정치권과 우리 사회, 그리고 시민들이 기후변화의 위험성에 대해 각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더 강력한 탄소배출 감축 목표 설정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기업, 시민 등의 변화를 촉구할 것이 틀림없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에너지전환 정책이 과거 정부 정책에 비해 진일보한 것은 분명하지만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또 기후위기 대응은 에너지 부문뿐만 아니라, 노동, 인권, 보건의료, 농업, 식품, 교통, 건물, 복지, 수자원 등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진지한 논의와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애초 약속한 에너지전환마저 오히려 점점 위축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우리 사회에서 에너지 전환 속도가 느리고 기후 위기 대응이 답답한 배경에는 보수 야당, 보수 언론, 그리고 기득권 세력들이 탈원전 반대를 외치며 똘똘 뭉치고 있는 것에 잔뜩 움츠린 정부와 여당이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드러내어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하고 있다.

기후 위기는 안보 위기, 미세먼지보다 중요

한편 호주 보고서에서 눈여겨 볼 대목의 하나는 보고서 제목 ‘실존적인 기후 관련 안보 위기’에서 보듯이 기후변화 위기를 안보 위기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식량과 물, 에너지 등을 안보 측면에서 받아들이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안보가 위기에 빠지면 국가와 국민의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는다. 다시 말해 안보 위기 상황에서는 여야와 이념, 계층과 빈부를 떠나 기후위기 대응에 한 마음 한뜻으로 뭉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상황은 서로 반목하고 자기주장만 옳다고 고집하고 있어 정말 안타깝다.

기후위기는 지금보다 지구온도가 3~5도 더 올라가는 재앙 수준에 이르렀을 때는 손을 쓸 수 없는 단계가 된다. 인간의 힘으로 되돌릴 수 없는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따라서 설혹 과장된 면이나 예측이 있는 시나리오라 할지라도 무시하지 말고 귀담아 들을 부분은 깊이 새겨야 한다. 기후 위기는 사전주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을 적용할 필요성이 큰 특성을 지닌 전 지구적 재난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우리 사회 일반 시민의 인식 정도는 미세먼지에 견주어 훨씬 낮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후위기가 미세먼지보다 몇 배, 몇십 배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일반시민, 즉 유권자의 관심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권에서는 미세먼지 관련 예산이나 대책 수립에 힘을 쏟는 반면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책과 예산 투입에 대해서는 열성을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미세먼지 해결 못지않게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그 중요성에 걸맞은 특별한 관심과 대책 수립·시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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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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