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인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12일 오후 브리핑에서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의 조기 달성을 위해 유엔 회원국으로서 안보리의 대북제재를 철저히 준수해 왔으며, 제재 결의를 모범적으로 매우 투명하게 이행하고 있고 국제사회는 이를 높이 평가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일부 일본 고위 인사들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우리 정부의 수출관리 위반과 제재 불이행을 시사하는 무책임한 발언을 한 데 대해 매우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NSC는 대통령이 의장을 맡도록 헌법 제91조에 규정된 헌법기관이다.
김 사무처장은 "우리 정부는 한미일 3국 중 유일하게 불법 환적이 의심되는 선박 총 6척을 최대 1년 반 이상 억류해 왔으며, 이와 관련된 모든 필요 조치를 유엔 제재회의와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아울러 4대 수출통제체계 등 관련 협약과 지침에 모두 가입한 협약국으로서 이중용도 및 전략물자의 제3국 반출을 철저히 통제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 4년간 (위반 사례) 150여 건을 적발해 공개한 것은 우리 정부가 수출통제 규범을 철저하고 투명하게 이행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일본도 그런 조치를 통해 수출통제 제도를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기 바란다"고 꼬집었다.
김 사무처장은 "(우리 정부는) 각종 협의 계기에 일본과 충분히 정보를 공유해 왔다"며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의 규범 불이행 및 부적절 행위 등에 대해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일본을 압박했다. 그는 "우리 정부는 상호 불필요한 논쟁을 중단하고, 일본 정부의 주장이 사실인지 밝히기 위해 유엔 안보리 전문가 패널 또는 적절한 국제기구에 양국의 4대 수출통제 체제 위반 사례에 대한 공정한 조사를 의뢰할 것을 제안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본이 (우리 정부 주장을) '믿지 못한다', '밀반출 사례가 있다'고 하니 일본 측에 '조사를 받아보자'고 제안한 것"이라며 "그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기다려 보겠다"고 했다. 청와대는 이날 브리핑을 통해 안보리 패널 등 조사를 일본 측에 공개 제의한 것이며, 발표 이전 외교 채널을 통한 공문 등 별도의 통지를 보내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만약 일본 측이 제안에 답을 내놓지 않을 경우 한국이 단독으로 안보리 등에서 관련 조처를 추진해 나갈지 등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밝혔고 그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기다리겠다"며 "일본 정부의 입장이 나오는 대로 그 (대응)방향에 대해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만 했다.
김 사무처장은 브리핑에서 "조사 결과, 우리 정부의 잘못이 발견된다면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사과하고 즉각 시정 조치를 하겠다"며 "그러나 잘못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에 대한 사과는 물론, 보복적 성격의 수출 규제도 즉각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한, 일본의 위반 사례에 대한 철저한 조사도 함께 실시돼야 할 것"이라고 재강조했다.
앞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가 일제 강점기 시절의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반발임을 총리대신 발언 등을 통해 사실상 인정해 놓고서도, 한국 정부가 '무역 보복'이라고 반발하자 돌연 '대북제재 위반' 등의 이유라고 말을 바꿨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지난 9일 익명 관계자를 인용해 "(해당) 원재료는 화학무기인 사린 등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데도 일부 한국 기업이 발주처인 일본 기업에 서둘러 납입하도록 압박하는 것이 일상화됐다"고 보도했고, 아베 총리는 지난 7일 후지TV에 출연해 수출 규제 이유로 '부적절한 사안'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이 대북제재를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말해 음모론에 불을 지폈다.
청와대 NSC의 대응은 일본 측의 이런 주장을 정면 반박하는 취지에서 나왔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 8일 "일본 고위인사가 의혹 제기를 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고 관계자 발언을 통해 아베 총리의 발언을 비판했으나 일본 측으로부터는 이에 대한 반응이 없는 상태다. 그러자 이번에는 국가안보 사무를 총괄하는 김 사무처장이 직접 실명 브리핑을 통해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하고 일본을 압박한 셈이다.
이같은 강경 기조는 정부 내 조율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이날 국회 예결위에 출석해 한 답변에서 "(일본이 주장하는) 그런 일은 없다. 현재로선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서로 불신을 자극하는 것보다는 정 의심이 되면 상호 검증을 해서 신뢰를 회복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오는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난다고 해서 일본이 (경제보복 조치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것은 가능성이 크지 않다 생각한다"며 "(일본이) 언제 철회 또는 완화할 것인가가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총리는 답변 과정에서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에 따르면, 오히려 일본이 원료를 북한에 수출했다는 증거자료가 나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전날 하 의원은 일본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CISTEC)로부터 입수한 자료라며, 일본에서 북한으로 핵·생화학무기 활용 가능성이 있는 전략물자 등이 30건 이상 밀수출됐음을 폭로하기도 했다.
정부는 다만 공개 유감 표명과 안보리 패널 조사 등을 제안하며 일본을 압박하면서도, 미국의 중재를 통한 외교적 해결과 수입선 다변화 등 다방면으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방미 중인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날 무역 보복 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일 3자 고위급 협의 추진 방안을 미국 측과 논의했다고 밝혔다. 김유근 처장은 이에 대해 "김 차장은 한미정상회담 후속조치 관련 현안을 협의하러 간 것"이라면서도 "차제에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대해 미국 측과 적극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언급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러시아에서 한국 정부에 불화수소, 일명 '에칭 가스' 수출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 "러시아 정부로부터 우리 정부 측에 그런 내용을 전달한 바 있다"고 확인하고 "현재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