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제로'를 법으로 정한 최초의 국가는?

[초록發光]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

유례없는 폭염이 유럽을 휩쓸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연일 수은주의 수치가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고 하며 학교에 휴교령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작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폭염에 대비해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나름 선제적인 대응책으로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해 폭염으로 인한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이제는 필수재가 되어버린 에어컨 사용을 고려하지 않은 과거의 누진제로 인해 가구당 부담해야 할 전력 소비 비용이 급증하자,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누진제 개편을 선택한 것이다. 가구당 1만 원가량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저소득 가구에는 실효성이 큰 정책일 수도 있겠지만, 전기요금 인하로 인한 전력 소비 증가와 이로 인한 기후변화 기여 효과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여름의 폭염을 비롯한 이상기후 징후들은 지구촌 전반적으로 위기 인식을 증폭시키고 있다. 다보스포럼(WEF)은 매년 발간하는 <Global Risk Report>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큰 위험 사건으로 이상기후를 꼽고 있다. 또한 영향력이 가장 큰 두 번째와 세 번째 위험 사건으로 기후변화 완화 및 적응 실패와 이상기후를 선택했다고 한다. 기후변화 완화 실패로 인한 이상기후가 지구촌을 파괴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이라는 것이다.

이런 위험 인식은 최근 새로운 시민운동의 전개로 이어지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하여 지금 당장 천연 자원의 개발과 화석 연료를 중단함으로써 지구를 구하기 위해 헌신하는" 멸종저항 단체와 "석탄 발전을 폐쇄해 기후 위기로 인한 파국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행동하는 Ende Gelaende(번역: 토지의 종말) 단체가 바로 기후 위기를 막고자 직접 시민 행동에 나선 이들이다.

멸종저항의 경우, 죽어가는 생물 종을 상징하는 가짜 피를 광장에 뿌리고 워털루 다리를 점거하거나 영국 의회 방청석에서 알몸 시위를 하면서 영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기후 변화 대응 정책에 나서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여러 반핵, 반석탄, 기후 및 환경 운동 그룹 연대체로 2015년에 출범한 Ende Gelaende는 갈탄 광산 점거, 기후 스트라이크 등의 다양한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여 독일을 비롯한 세계 전역의 석탄 발전 조기 폐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인해 영국 경찰에 체포된 멸종저항 단체 회원의 숫자는 이미 과거 영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킨 1982년 반핵 시위 당시 체포된 이의 숫자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들 시민운동가의 희생 덕분인지 독일은 올해 3월 현재 운영 중인 석탄 발전을 2038년에 모두 폐쇄한다는 탈석탄 로드맵을 공표하였다. 그리고 영국 정부는 며칠 전 의회에서 탄소 제로 배출 법안을 제정하였다. 이 법에 따라 영국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어야 할 법적 의무를 지게 됐다. 이로써 영국은 가장 급진적인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법으로 명시한 유일한 국가가 됐다. 스웨덴도 2045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을 제로로 만든다는 법을 제정한 바 있으나, 배출량에서 국제 항공이나 선박 운송으로 인한 부분은 포함하지 않고 있고 프랑스가 유사한 법 제정을 준비 중에 있으나 아직 의회 통과가 되지 않은 상황이다.

탄소 제로 배출 법의 의무를 실천하기 위해 영국은 앞으로 전 경제 영역에서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정책을 실시할 것이며, 2050년까지 현재의 8GW 해상 풍력 설비를 75GW까지 확대 하는 등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천연가스 대신 수소 이용을 확대하고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을 개발하기로 하였다. 2035년까지 신차를 모두 전기차로 대체하기로도 하였다.

이런 에너지 전환 영역만이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에 영향을 주는 정책도 포함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가 건강한 식단 장려 정책이다. 탄소 배출 제로를 위해서는 시민 일상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함을 들어 영국 정부는 소고기, 양고기 등 낙농제품 소비를 줄이는 건강한 식단 장려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법안 통과에 앞서 영국 노동당 대표인 제레미 코빈은 지난 5월 1일 영국 의회가 기후변화 비상사태를 선언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탄소 제로 법안이 영국 의회를 통과함으로써 이제 영국 사회에서 기후 변화 대응은 가장 핵심적인 정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멸종위기가 이끄는 시민운동이 지속되자 영국의 대표 매체인 <가디언>은 역시 지난 5월 기후변화란 용어 대신에 '기후위기', '기후 비상사태'를 사용하여 "독자들이 현재 직면한 문제를 보다 더 정확히 직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을 맞이하여 영국 의회가 기후위기에 처한 영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안하기에 이른 것이다.

어떻게 다가올지 모를 올 여름의 폭염 혹은 이상기후는 우리 역시 기후 비상사태에 직면해 있음을 알려준다. 호주 연구자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2050년에는 주요 도시가 생존 불가능한 지역으로 변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영국에서와 같은 탄소 제로 법안을 준비하지는 못하더라도 2030년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 에너지 소비 감축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 이행에 정부가 나서야 할 때이다.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맞이하는 정부의 폭염 대책은 다만 요금 부담 없이 많은 가구가 에어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폭염 원인인 기후위기를 극복할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이에 시민이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에너지 전환 정책, 에너지 수요 절감 정책 등에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고, 기후위기 비상사태 인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기후변화란 용어 대신 기후위기를 사용할 때이다.

▲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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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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