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대응 경사노위 만들자

[초록發光] 기후변화 대응이 범정부적, 범사회적 일이 되도록 하는 방법

경사노위(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개점휴업이라는 표현조차 식상하게 들릴 정도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럿일 것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의 여파 속에서 노동자 측을 억지춘향으로 끌어들여 출발한 현 경사노위의 전신인 노사정위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부터 떠오른다. 대량 정리해고와 노동권 후퇴에 대해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내는 것이 주된 목적이자 맥락이었다. 반대급부로 사회안전망 구축과 경제 개혁이 약속되었지만 결과는 시원치 않았다. 서유럽과 같은 노사정 대화와 타협의 전통이 거의 부재한 가운데에 정부의 노동조합운동 탄압 또는 묵인이 반복되었으니 서로 간의 신뢰가 갖춰질 틈은 없었고, 기구의 실효성에 대한 믿음도 생겨나지 못했다.

경사노위라 이름을 바꾼 현 정부에 와서도 사정은 그다지 변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이 참여 결정을 못하는 게 이유라지만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처럼 정부와 국회가 당위적으로 하면 될 일을 노동자에게 줄 선물처럼 의제로 다루는 반면, 탄력근로제와 같은 노동유연화 조치 의제가 부각하면서 노동 측에서 사회적 대화기구에 들어갈 절실한 이유를 찾기 어려운 탓도 크다. 결국 참여하는 3주체 모두에게 긴급하거나 중요하게 여겨지고 국가적으로 큰 영향을 갖는 의제를 설정하거나 테이블조차 세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 산업, 고용, 인권, 복지 같은 여러 영역에 걸쳐있고 그 해결을 위해서는 부처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획과 사회의 주요 주체들 사이의 협력이 요구되는 문제를 다룰 국가적 수준의 특별 기구 필요성이 요청된다는 당위는 여전하다. 그렇다면, 기후변화라는 문제는 어떠할까?

돌이켜 보면, 이명박 정부 시절 만들어진 녹색성장위원회를 비슷한 성격의 기구로 해석할 수도 있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여 관련부처 장관들과 방통위원장, 20여 명 이상의 민간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범부처간, 그리고 정부와 민간을 아우르는 대화와 협력을 할 수 있는 구성이다. 녹색성장 관련 계획, 법제도, 산업 정책, 국제 협력 모두를 다룰 수 있도록 권한도 적시되어 있다. 현재는 기후변화 대응 분과와 에너지전환 분과로 편성되어서 활동의 방향도 명확한 편이다. 하지만 지금 녹색성장위원회가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전환 정책을 이끌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사정은 녹색성장위원회의 태생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4대강 사업을 핵심으로 하는 녹색성장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실제는 4대강 사업의 녹색 포장을 위해 만든 기구이다 보니 자율성이 크지 않았고 심의 보다는 홍보 기능이 앞섰다. 박근혜 정부 때는 거의 잊히다시피 했다가 현 정부 들어와 정부 정책에 대한 의견 수렴과 비판 역할을 주문받고 있지만, 녹색성장위원회가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사업이나 의제를 만들기는 어렵다. 정부 내에서도 녹색성장위원회의 자리매김이 명확하지 않고, 무엇보다 노사정위에 비견되는 사회적 주체 대표의 구조적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다. 당연직 위원으로 과기부, 교육부, 외교부, 행안부, 문체부, 농림부, 산업부, 보건부, 환경부, 여가부, 국토부, 해수부 장관이 참여하지만 고용노동부 장관은 포함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눈에 띈다.

기후변화 대응 정책, 결국 온실가스 감축과 이미 일어나고 있는 기후 격변에 대한 적응에는 주지하다시피 정말 다양한 영역의 지식과 역량이 필요하고 부처를 넘나드는 협력이 필요하다. 어떤 부문에서 얼마나 온실가스를 감축할지, 어떤 부문을 제도적으로 강제할지를 결정하고,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처하기 위한 긴 안목을 갖춰야 한다. 중앙정부부터 지방정부, 기업과 시민사회까지 작동하는 정책 시그널과 행동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이를 수평적, 그리고 수직적 정책통합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 목표 따로,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 따로, 신사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 목표 따로, 미세먼지 저감과 탈석탄 목표 따로, 취약계층 지원 목표 따로 만들어지고 시행되는 게 지금의 모습이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산업부가 관할하고,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환경부가 책임지며, 기후변화 총회에는 외교부가 참여하지만, 이들 업무 목표가 서로 들어맞는지를 부처들이 마주앉아 점검하는 일은 없다. 그러니 목표와 수단 사이의 정합성이 떨어지고 각 목표는 달성되지 않으며, 정부가 바뀔 때마다 예전의 목표를 깨끗이 잊고 새 계획을 수립하는 일이 반복된다. 에너지전환 정책의 경우 석탄 발전과 핵 발전 관련 산업이 지역별로 상당한 영향을 받는 만큼 산업부와 고용노동부가 함께 영향을 점검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하지만,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전기차와 수소경제, 경남지역 경제 대책과 광주형 일자리 정책이 따로 놀거나 상충하는 것도 그런 상황의 일부다.

기후 비상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는 정부라면, 그리고 지금의 온실가스 정책과 에너지전환 정책 및 사업과 고용 정책이 연결되어야 할 필요성을 인지하는 정부라면 이런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되며, 이를 제도적으로 해결할 고민을 방기해선 안 된다.

두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하나는 기후변화 대응 노사정위원회를 만드는 것이다. 맥락과 효과에서 제약이 분명한 현재의 경노사위에 분과를 추가하기보다는, 별도의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두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지금의 녹색성장위원회를 차라리 기후변화 경노사위로 재편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관련 부처와 노-사-정-시민 대표가 구조적으로 참여하여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 방안의 적절성과 책임성을 점검하고 그 영향을 소화할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기후변화 대응이 환경 정책이자 산업 정책, 일자리 정책, 복지 정책, 지역 정책임을 분명히 하고, 부담과 희생이 어떤 사회적 집단이나 지역에 부당하게 기울지 않도록 챙겨야 한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기후변화와 산업 정책을 노사정 3자 기구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나, 독일의 탈석탄위원회처럼 특정 산업과 부문의 전환 문제를 노사정과 시민 사회의 참여를 통해 해결한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최근 주목받는 미국 민주당 진보그룹의 '녹색 뉴딜' 프로그램도 그 실현을 위해서는 이러한 전 사회적 논의 기구가 요청될 것이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정부 부처마다 내부에 기후변화 부서 두는 것이다. 환경부와 국토부뿐 아니라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 내에도 기후변화 부서가 필요하며, 보건복지부, 교육부, 문화관광부, 아니 모든 부처에 기후변화 담당 조직과 인원이 별도로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부처의 담당자가 국무총리 주관으로 정례 회의를 하고, 목표 달성 상황을 점검하고, 개선 과제를 도출하는 것도 필요하다.

요컨대 무엇이 전 국가적, 전 사회적인 일이고, 무엇이 범부처적인 대응이 필요한 일인지를 묻는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이 그 중 하나라면 거기에 걸맞은 대응 기구와 제도를 만들어야 하고 예산과 인력을 두어야 하며, 중요한 이해당사자를 불러들어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자기기만적, 자기분열적 정책목표 수립과 서로 들어맞지 않는 효과 없는 수단 나열을 그만두려면 말이다.

▲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는 상황에 맞는 정부 회의 기구의 개편이 필요하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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