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이 '검은바다'로 변했다" 그들은 왜 검은 옷을?

시민들 "법안 완전 철폐, 캐리 람 장관 사퇴까지 시위할 것"

700만 홍콩 주민 30%가 거리에 쏟아져 나온 사상 최대의 시위에 홍콩 정부가 사실상 '백기투항'으로 몰리고 있다. 16일 홍콩 시민 약 200만 명(주최측 추산)이 범죄인 인도법안(일명 송환법)의 완전 철폐를 요구하며 또다시 대규모 집회에 나섰다.

홍콩 정부는 극도로 긴장하는 모습이다. 거센 반대에 법안 추진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물러섰는데 오히려 '완전 철폐'를 요구하며 더 많은 홍콩 시민이 시위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9일 100만 명이 넘는 홍콩 시민의 시위에도 '늑장 대응'한 홍콩 정부 수반 캐리 람 행정장관은 16일 밤 성명을 내고 "정부 업무에 부족함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며 "홍콩 사회에 커다란 모순과 분쟁이 나타나게 하고, 많은 시민을 실망시키고 가슴 아프게 한 점에 대해서 사과한다"고 밝혔다.


▲ 지난 16일 홍콩 도심에 홍콩 시민 30%에 달하는 200만 명이 검은 옷을 입고 거리에 나와 범죄인 인도법 완전 철폐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

"홍콩 정부 미흡하고 늦은 대응, 시위는 계속될 것"


하지만 영국의 BBC 방송은 "홍콩 정부의 후퇴는 너무 미흡하고, 너무 늦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범죄인 인도법안의 완전 철폐와 캐리 람 장관의 사퇴가 이뤄지기까지 홍콩 시민들의 시위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홍콩 시민은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을 홍콩이 누려온 최소한의 민주적 인권보호 장치를 허무는 악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시민들은 이 법이 중국 반체제 인사 등 중국의 비위를 거스르는 사람들을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은 중국 정부가 마음대로 데려갈 수 있는 통로로 악용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은 '역대급 친중파'로 낙인찍힌 람 장관(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최초의 홍콩 여성 행정장관으로 2017년 선출돼 2022년 6월30일까지 임기)에 대해 철저한 불신을 감추지 않고 있다. 홍콩 시민들이 반대한 수많은 법들에 대해 람 장관이 '잠정 연기'를 한다면서 시간을 끌다 결국 법안을 처리한 전례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범죄인 인도법 완전 철폐와 람 장관의 사퇴는 하나의 '패키지'로 묶여 있는 요구다.

시위를 주도한 재야단체 연합인 민간인권전선에 따르면, 홍콩 정부의 송환법 추진 '무기한 연기' 발표에도 이날 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범죄인 인도법 완전 철폐와 람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며 '검은 대행진'을 벌였다. 시위 참가자 대부분이 검은 옷을 입고 행진해 이같은 별칭이 붙었다.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는 홍콩 도심 빅토리아공원을 출발해 정부 청사가 있는 애드미럴티까지 4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뒤덮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트스(SCMP)는 "홍콩 도심이 '검은 바다'로 변했다"고 전했다.

지난 9일 시위 때 주로 흰옷을 입은 참가자들이 이번에 검은 옷을 입은 이유는 있다. 평화적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을 홍콩 정부가 '폭도'로 규정한 것에 대해 격분한 30대 남성이 이에 항의하기 위해 전날 홍콩 정부청사 인근 유명 쇼핑몰에서 고공시위를 벌이다가 추락해 사망한 것을 애도하기 위한 것이다. 시민들은 시민을 폭도로 몰고 경찰이 과잉 폭력 진압을 한 책임도 반드시 묻겠다는 입장이다.

많은 홍콩 전문가들은 람 장관의 비타협적인 태도가 심각한 통치 위기를 좌초해 남은 3년의 임기를 버텨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03년 홍콩 정부의 국가보안법 추진에 반대해 50만 명의 시민이 집회를 벌였을 때에는 결국 법안이 폐기되고 당시 퉁치화 행정장관이 조기 사퇴했다. 이번에도 사실상 법안 폐기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문제는 있다. 람 장관이 사퇴해도 친중국 성향의 선거인단에서 새로 선출될 인물이 홍콩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행정수반이 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홍콩 시민과 중국 정부와의 갈등도 장기회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미국은 홍콩 문제에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말 일본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홍콩 시위 문제에 대해 분명히 거론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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