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에도 반성 없는, 대한민국은 화학사고 공화국

[안종주의 안전사회] 화학사고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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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렌모노머 대량 유출 사고는 이번 한화토탈 대산공장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 8월23일 경기도 화성 한 사업장에서 지하저장고에 보관 중이던 스티렌모노머 증기가 벤트관을 통해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큰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6만 리터 저장고에 있던 스티렌모노머 5만 리터가 이상반응으로 외부로 누출됐다. 스티렌모노머 증기는 불티 등 점화원이 있을 경우 폭발성이 있어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당시 이 사고를 조사한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스티렌 열적 위험성 평가보고서’를 펴냈다. 공단에 딸린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조사팀은 이듬해 <화학공학의 이론과 응용>이란 학술지 제22권 제2호에 ‘열량계를 이용한 스티렌모노머 열안전성 평가’란 제목의 논문을 기고했다.

보고서와 논문을 보면 온도가 65도 이상으로 올라갈 경우 제어할 수 없는 폭주중합반응이 일어나며 중합이 시작되면 온도가 상승하고 고체상의 고분자가 통기관을 막을 경우 탱크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대목이 나온다.

또 52도에 이를 경우 중합억제제의 효과가 없어지기 때문에 온도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20도로 관리하더라도 가장 일반적인 중합억제제인 TBC와 산소농도가 감소하기 때문에 주기적인 검사가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폭주중합반응으로 스티렌모노머가 끓는점 이상으로 가열될 경우 스티렌모노머가 증발되어 폭발성 증기구름을 형성하고 점화원이 가까이 있으면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스티렌모노머의 열적 특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2015년 경기 화성에서 대규모 스티렌모노머 유출, 한화토탈은 몰라

하지만 2015년 화성에서 일어난 스티렌모노머 유출 사고와 안전보건공단의 보고서에 대해 한화토탈 쪽은 전혀 알지 못하고 ‘깜깜이’로 있다가 이번 사고 뒤 관련 자료 검색 과정에서 알게 됐다고 밝혔다. 만약 공단 쪽이 2015년 사고 사례를 관련 업계에 적극 전파하지 않았다면 그 자체를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설혹 공단의 적극적인 사례 전파 노력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스티렌모노머 국내 생산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한화토탈 쪽이 이 보고서와 논문을 알지 못했다는 것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한화토탈 쪽이 과거 스티렌모노머 대량 유출 사고 사례를 잘 알고 이를 깊이 새겨 회사 안전 관리에 적용했더라면 이번과 같은 사고는 예방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2012년 구미 휴브글로벌 불산 누출사고로 막대한 인명피해를 낸 뒤에도 화학물질 누출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스티렌모노머 대량 유출 사례처럼 과거 일어난 사건·사고에서 제대로 된 교훈을 마음 깊이 새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요 근래 발생한 대표적 화학물질 누출사고는 경북 구미 휴브글로벌 불산 누출 로 2012년 9월에 일어났다. 노동자 5명이 죽고 주민 등 3천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특히 농작물과 동물들의 피해가 매우 컸다. 이 사고 뒤 정부는 화학물질안전원과 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를 설립했다. 현재 화학방재센터는 울산, 여수, 구미, 익산, 서산, 시흥, 충주 등 화학산업단지 중심으로 전국 7곳에 있다.

▲구미 봉산리 한 농가에 걸린 '절대 식용금지' 플래카드 ⓒ 평화뉴스 정수근 객원기자

2012년 구미 불산 사고 이후 대기업 등에서 화학사고 잇따라

구미 불산 사고 뒤에도 대기업 등에서 벤젠, 불산과 염소 등 독성이 매우 강하거나 인체 발암성이 있는 화학물질이 잇따라 누출돼 많은 사망자가 나오는 등 인명 피해가 생겨 구미 사고의 교훈을 되새기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삼성과 엘지, 에스케이, 롯데, 한화 등 최고의 대기업에서 이런 화학물질 유출사고가 계속 일어나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구미에서는 2013년 3월 2일 반도체 부품공장인 LG실트론 구미공장에서 불산, 질산, 초산 등이 섞인 화학물질 용액이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어 사흘 뒤인 5일에는 경북 구미시 공단동 구미케미칼에서 탱크로리에 든 액체 상태의 염소를 밸브를 통해 옮기는 과정에서 송풍기가 고장 나 역류하는 바람에 염소가스가 누출돼 이 회사 직원 한 명과 인근 공장 노동자 10명 등 모두 11명이 호흡곤란 등을 호소하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구미 휴브글로벌 불산 누출 사고 발생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2013년 1월에는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1월 불산 누출 사고로 노동자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이 공장에서는 그 뒤 3개월 여 만에 안전점검을 소홀히 해 같은 장소에서 또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2015년 11월 16일 합성세제 제조업체인 이수화학 울산공장에서는 1톤가량의 불산이 누출돼 이웃 주민이 악취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 회사에서는 2014년 2월에도 100리터가량의 불산이 누출되는 사고를 일으켜 공장장 등이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구미 LG실트론, 삼성전자 화성공장, 울산 이수화학, 금산 램테크놀로지에서 불산 누출

2016년 6월 4일에는 충남 금산 램테크놀로지 공장에서 55% 불산 용액 이송 작업 중 압력을 견디는 디스크가 파열되면서 배관을 통해 하역장 집수조로 흘러들었고 집수조 내 이송펌프가 작동하지 않아 불산이 하역장 밖으로 7킬로그램가량 유출됐다. 주민 대피 요청은 사고 발생 1시간 넘게 지난 뒤 이루어졌다. 화학물질안전원과 금강유역환경청 관계자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사고 뒤 2시간 가까이 되어서다.

이 사고로 주민 3명과 공장 노동자 4명이 구토와 발열 증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 공장에서는 2015년 7월과 2016년 1월에도 불산이 외부로 유출됐다. 이로 인해 마을 하천에서 물고기 수천마리가 떼죽음을 당하는 등의 일이 계속 벌어지자 신변 안전에 위협을 느껴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공장 이전을 촉구한 바 있다.

불산과 함께 대표적인 유해 가스인 염소 누출 사고도 최근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5월 17일 울산 남구 여천동 한화케미칼 2공장 염소 하역장에서 탱크로리 차량에 실려 있던 액화 염소를 공장 자체 저장탱크로 옮겨 싣는 과정에서 호스가 파열돼 염소가스가 누출됐다. 이 사고로 인근에서 작업하던 노동자 27명이 유독성 염소 가스를 들이마셔 호흡 곤란과 메스꺼움, 어지러움 등을 호소하며 병원 치료를 받았다.

2018년 7월14일에는 대전 대덕구에 있는 한 제지업체에서 과산화수소가 다량 저장된 탱크에 수산화나트륨이 잘못 투입되어 강한 산화성을 띠는 과산화나트륨이 생성되는 반응으로 발열미스트가 급격히 발생해 상부 배관이 파손되면서 과산화수소 35입방톤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2018년 대산단지 내 롯데케미칼 발암물질 벤젠 다량 누출

인체발암물질인 벤젠이 누출되는 사고도 있었다. 벤젠은 미국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소(NIOSH)가 작업장 허용기준을 0.1ppm으로 정해 놓을 정도로 독성이 매우 강하다. 사고는 지난해 1월15일 한화토탈과 함께 대산석유화학단지에 있는 롯데케미칼 공장에서 배관에 금이 가 벤젠이 6톤가량이나 외부로 누출되면서 일어났다.

이 사고 뒤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고 했다가 사흘 뒤 공장 내 유수지에 사는 숭어가 집단 폐사한 것을 발견했다. 폐사한 어류와 유수지 물의 수질을 분석한 결과 벤젠에 오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벤젠 사고 뒤 주민들의 요구로 대산공단 입주기업들이 공동 부담해 인근 마을회관들에 유독가스 누출 시 개인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방독마스크를 지급해 비치하고 있다. 지금도 대산읍 곳곳에는 롯데케미칼을 나무라고 암을 걱정하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화학사고가 얼마나 잦고 심각한지는 통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고용노동부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 산업재해 발생 현황’을 보면 2014년부터 2018년 7월까지 4년 7개월간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에서 화학물질에 의한 폭발·파열·화재나 화학물질누출·접촉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100명, 부상자는 2169명에 이른다.

잇단 화학물질 누출 사고를 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례에서 노동자의 부주의와 회사의 노동자 안전 교육과 안전 부문 투자 미흡, 사고 숨기기, 늑장 신고, 솜방망이 처벌, 관계기관 간 공조 미흡, 당국의 늑장 대응과 허술한 누출 화학물질 측정 등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같은 공장에서 유사 사고가 반복해 일어나는 사례도 많다. 이를 면밀히 살펴 화학사고를 예방하고 사고 빈도를 낮추며 조기 대응해 피해를 줄이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는 것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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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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