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전 초기에는 그 누구도 이렇게까지 확전되리라 예상하기 쉽지 않았을 터다. 그러던 것이 양국의 대내외적 체면이 걸려 물러서기 쉽지 않게 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중국 당국은 미중 무역전쟁에 대해 과연 어떠한 자세로 어떻게 임하고 있을까?
"그동안 우리 중국은 특정 한 나라에 대해 이렇게까지 단결된 적이 없었다. 우리들도 스스로 놀라고 있을 지경이다!".
12일 중국에서 만난 중국 공산당 대외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한 고위 간부의 말이다. 무역 전쟁 초기에는 미중 간 국력 차이 등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지라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들어주며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고개 숙이고 또 숙였다. 하지만 "욕심이 끝도 없고 악랄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는, 중국이 고개를 숙일수록 더해만 갔다.
급기야는 중국 국내에서 "시진핑 당신은 자존심도 없는가? 계속 턱없이 높아져만 가는 저들의 요구를 언제까지 들어주기만 할 것인가? 우리의 자존심은 생각하지 않는가?"라는 비난도 듣기에 이르렀다. 이에 "미국에 끌려 다니며 국내에서도 욕먹을 바에야 차라리 당당하게 맞서자! 국내의 통치기반이라도 더 강화하자!"며 당당하게 맞서기로 했다. 하지만 그래도 국력의 열세로부터 비롯되는 현실적 걱정 등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막상 강경기조로 전환하고 나니 그렇지만도 않음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피동적 자세에서 적극적 자세로 전환하여 "전 인민의 대동단결!" 등을 호소하다 보니 중국사회는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 뭉쳐지더라는 것이다. 그 속에서 현실적 우려 등은 "그래, 한번 해보자.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는, 왠지 모를 자신감으로 빠르게 바뀌어 갔다는 것이다.
전장에 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는 강인한 정신 자세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중국 사회는 "결기"로 충만한 것 같다. 사실 필자는 4월과 5월 사이에 5번이나 중국을 오가며 한중 정상회담의 추이와 더불어 미중 무역 전쟁에 임하는 중국 측의 모습 등에 대해 관심 있게 지켜봐 왔다.
그 과정에서 중국 현지에서 직접 만나고 접한 중국인들과 중국 사회의 일사불란함은, 중국 생활 15여 년 동안 접해 본 적이 없는 또 다른 중국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14억의 거대한 인구가 하나로 똘똘 뭉치기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지난 2개월 동안 지켜본 중국사회는 '진정한' 애국심과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던 '그 중국인들'과는 사뭇 다르게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이 불리하지 만은 않은 이유는?
한편, 또 다른 곳에서 만난 중국 공산당 간부들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이 '궁극적으로' 패배하기 쉽지 않은 여러 가지 이유"에 대해 들려주기도 했다. 그 가운데 정치, 경제 및 사회, 군사적 측면의 이유만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정치적으로 중국은 미국과 달리 사회주의 체제를 취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서 정치 지도자들은 결국 그 무엇보다도 선거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국이 자신들의 생각대로 쉽사리 무너지지 않고 버텨 간다면, 미국의 피해와 손실 등도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중국을 향한 미국 정치권의 전선은 붕괴되어 가게 될 것이다.
이에 비해 중국은 자유민주의의의 그러한 '단점' 등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강한 리더십을 보이는 시진핑 주석에 대한 충성 경쟁 등으로 중국의 정치권은 더욱 단결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중국의 모든 기업은, 국유기업이건 민간기업이건 간에, 중국 당국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다 해도 다른 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다. 호불호를 떠나 이것은 '팩트'다. 이 속에서 중국이 버티면 버틸수록, 중국기업뿐 아니라 미국기업들의 피해도 그만큼 더해져 갈 것이다.
하지만, 중국기업의 피해는 궁극적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은 정부가 나서서 산업계의 피해와 손실 등을 직간접적으로 빠르게 흡수하고 또 해소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어떤가? 미국 또한 이러한 기능이 가능한가?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기업이 과연 중국을 상대로 얼마나 오랫동안 스스로의 피해를 자력으로 감내하며 버텨낼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도 중국인들은 미국인들이 지니지 못한 또 다른 강한 단결의 '요인'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근현대사 들어 중국이 몸서리치게 겪어야만 했던 "아편전쟁"과 서양 열강에 의한 "수치와 굴욕", "고난의 행군" 및 "대장정" 등과 같은 온갖 고초들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세계대전 등을 겪으며 발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타국에 대한 침략도 감행하는 등, 피해자(=을)의 입장에 서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이에 비해 중국은 대내외적인 국난을 거듭하며 외세에 의한 치욕과 혼란 및 분열 등에 대해 강한 트라우마를 지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중국사회는 "암울함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뭉쳐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것이다.
그 외에 군사적으로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충돌이라면 해볼만하다. 물론 중국의 군사력은 당장 핵무기만 해도 수천개를 가지고 있는 미국에 비해 열세다. 중국은 수백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중 양국이 작정을 하고 한판 붙으려 한다면, 굳이 수 백기의 핵무기까지 사용하지 않고 그 일부만 사용하더라도 "나를 건드리면 너도 죽는다" 정도는 된다. 그 정도의 핵무기나 최정예 미사일 등과 같은 최첨단 무기는 중국도 이미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이를 미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서툰 행동을 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 당국은 개전 초기의 어수선함과 당혹함 등과는 사뭇 다른 비교적 차분함과 일사분란함 속에서 총화단결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중국의 이러한 모습이 잘 전달되지 않고 있는 듯 하다. 미중 양국의 대립 속에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중국의 이와 같은 현황과 향후의 추이 등에 대해서도 적확하게 파악해 나가야 한다. 이는 당연히 미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주도면밀함을 토대로 우리의 지혜를 더하면서 이 시기를 "극세척도(克世拓道)"의 기회로 삼는 자세다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중견강국 '대한민국'으로 성장한 우리는 아직도 스스로를 약소국 '소한민국'의 이미지 틀 안에서 자기 비하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이를 고려하더라도 현재의 위기 국면에 슬기롭게 대처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일궈낸 중견강국의 위상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부합하도록 새롭게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로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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