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위기 원인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습니다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앞두고 법관들께 보내는 편지

대법원 중앙홀에는 청동으로 만든 '정의의 여신상'이 있습니다. 이 여신상은 흔히 볼 수 있는 여신상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정의의 여신은 눈을 안대로 가린 채 양손에 저울과 칼을 들고 있습니다. 권력과 편견에 흔들리지 않고 공정하게 판단하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법원 여신상은 눈을 뜨고, 칼 대신 책을 들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공식 블로그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책을 들고 있는 것은 힘보다는 지혜로 정의를 밝힌다는 뜻이며, 안대를 하지 않은 것은 두 눈을 뜨고 법전을 올바르게 읽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다."

저는 조금 다르게 해석합니다. 이 여신상은 1995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오랜 세월 사법부는 권력의 그늘 아래 있었습니다. '칼'은 정의로운 도구가 아니라 권력의 명령에 복종하는 무기였습니다. 죄 없는 이들을 베었고, 죽음을 판결했습니다. 그 시절 법은 진실에 눈감고 국민의 고통을 외면했습니다. '안대'로 눈을 가린 채 '맹목'으로 칼을 휘둘렀습니다. 칼과 안대가 없는 대법원 여신상에서는 지난날의 과오에 대한 부끄러움이 묻어나옵니다.

▲대법원 중앙홀에 세워져 있는 정의의 여신상. 1995년 12월에 제작된 이 여신상은 일반적인 여신상들과는 달리 눈을 뜨고, 칼 대신 책을 들고 있다. ⓒ대법원 홈페이지

'칼 없는 여신상'을 무색케 한 '대법원 칼춤'

여신상이 세워진 지 30년, 대법원은 다시 칼을 들었습니다. 더 맹렬하고 무자비하게 휘둘렀습니다. 대선을 눈앞에 두고 가장 유력한 후보를 단칼에 베어내려 했습니다. 국민의 주권, 민주주의 심장인 선거에 정면으로 칼을 겨누었습니다. 예전에는 권력에 굴종해 칼을 들었다면, 이제는 스스로 권력이 되어 칼을 휘둘렀습니다. 대법원 중앙홀의 여신상은 침묵했고, 들고 있는 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법관은 결국 인간과 세상을 베는 자리입니다. 사람의 삶을 가르고 운명을 재단합니다. 그래서 인간과 세상을 깊이 응시한 뒤 칼을 들어야 합니다. 그 칼은 매번 떨려야 합니다. 떨림이 고뇌이고, 그 고뇌가 바로 정의의 시작입니다. 바람처럼 빠른 검법은 미덕이 아니라 악덕입니다. 대법원의 빠른 칼놀림은, 망설임과 절제가 없는 칼질이 어떻게 정의를 배반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26일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립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졸속 판결, 그 파장과 의미를 되짚고 후속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그런데 기류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대법원의 선거 개입이라는 핵심의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와 특검법 추진, 대법관 숫자 증원, 개별 판사의 사생활 의혹 같은 주제가 회의의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듯합니다. 사법부 독립이 위협받고 있다는 불안감이 법관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탓일 것입니다.

법관회의, 조희대 대법원장 거취 논의해야

법관 여러분들로서는, 자신들의 수장인 대법원장을 수사하고 국회 증언대에 세우려는 것을 사법부에 대한 모독으로 여길 법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많은 국민은 '사법부 모독'이 아니라 '국민 모독'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뢰는 감추는 자가 아니라 밝히는 자에게 갑니다. 진상을 밝히는 것은 사법부를 지키는 일의 출발입니다.

대법원은 소상히 설명해야 합니다. 대법원 판결에서 절차가 축소되고, 설득은 생략되고, 숙고가 사라진 이유를 해명해야 합니다. 대법원장이 직권으로 모든 절차를 축약한 것이 정당했음을 국민에게 납득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입을 꾹 닫고 있습니다. 이 침묵은 금이 아니라 오만입니다. '국민은 알려고 하지 말고 사법부의 권위에 복종하라'는 태도입니다.

어떤 이들은 재판에 관한 청문회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법부가 선거에 개입하는 것을 묵인하는 것, 그것은 더 나쁜 선례입니다. 법관 여러분이 우려해야 할 것은 사법부의 체면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입니다.

사법부의 신뢰도는 뚝 떨어졌습니다.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면, 예전에는 늘 위에서 두 번째 정도이던 신뢰도가 꼴찌에서 두 번째로 급전직하했습니다. 간신히 검찰보다 앞섰을 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행정부 등에 크게 뒤처졌습니다. (한겨레 '2025~26 유권자 패널조사'). 대법원의 졸속 판결이 남긴 아픈 상처입니다.

법관들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결코 입을 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니 열 수 없다는 것을. 대법원 졸속 판결의 숱한 의혹들은 말로 설명해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그대로 버티고 있는 한 사법부의 떨어진 권위는 다시 회복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믿음을 되찾기도 어렵습니다.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법관들이 논의해야 할 첫 번째 핵심의제는 다름 아닌 조희대 대법원장의 거취 문제입니다.

'소수의 특권 지키기'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 확대' 편에

대법원의 이재명 후보 상고심 판결은 이 후보 개인에 국한하지 않고 대법원 판결의 어두운 그림자를 동시에 드러냈습니다. '6만쪽 기록' 문제가 대두되자 대법원은 "다른 상고심 사건에서도 대법관들이 기록을 전부 읽는 것은 아니다"고 변명했습니다. 대법원 재판에 운명을 건 수많은 국민은 알게 됐습니다. 대법관들이 기록도 모두 읽지 않고 자신들에 대한 판결을 내려왔다는 것을.

대법관 한 명이 연간 5000건에 가까운 사건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사법의 신뢰도, 속도도, 품질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대법관 숫자를 늘리는 게 해결책입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을 반대합니다. 사건은 쌓이고 재판은 지체되고 정의는 지쳐 쓰러져가는데도 대법원은 문턱을 낮추기를 거부합니다.

대법원은 소수의 특권 집단이 자의적으로 판단을 남발해서는 안 되는 공간입니다. 그곳은 국민을 위한 정의의 마지막 언덕입니다. 이 언덕이 무너지면 국민은 기댈 곳을 잃습니다. 공정하고 신속한 절차, 억울한 이들의 이야기에 법의 언어로 답하는 판결들이 쌓일 때 비로소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국민의 가슴 속에 깃듭니다. 대법관 증원은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법 정의가 국민 개개인에게 닿을 수 있도록 하는 절박한 제도의 회복입니다. 대법원에는 더 많은 손, 더 정밀한 눈, 더 넓은 귀가 필요합니다. 법관 여러분은 선택해야 합니다. 소수 대법관의 특권 지키기에 동참할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확대에 앞장설 것인지를.

판사의 정직함이 법의 무게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사건 재판장인 서울중앙지법 지귀연 부장판사의 술자리 의혹이 세간에 떠돌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헌정질서를 뒤흔든 중대한 사건을 심판하는 재판장의 이름이 유흥업소 접대 의혹과 함께 언론의 활자 위를 떠도는 것은 그 자체로 비극입니다. 일각에서는 "판사 뒷조사를 통한 사법부 흔들기"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법관들로서는 '나도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과 불안이 더 고조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직자는 누구나 늘 공적 감시의 대상입니다. 청렴과 도덕, 윤리와 품위, 이런 단어들은 공직자의 머리에 씌워진 왕관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이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입니다. 그동안 숱한 공직자들이 크고 작은 비위와 추문으로 스러져갔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도덕성 검증을 '직무 방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유독 법관의 비위 혐의 의혹에 대해서만 '재판 방해 의도' 프레임을 들이대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남을 심판하는 자는 스스로를 더 가혹하게 심판해야 합니다.

지귀연 판사의 술자리 의혹은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에서 조사하고 있으니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유흥업소 접대 의혹에 대해 지 판사는 "주점에서 술을 먹지 않고 사진만 찍었다"고 해명했다고 합니다. 어떤 피고인이 법정에서 이런 주장을 하면 법관 여러분은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상황에 비추어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지귀연 판사는 그 판단의 기준을 자신에게 돌려야 할 때입니다.

판사의 거짓말은 한 사람의 거짓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재판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사법부 권위에 대한 냉소로 이어집니다.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법의 권위는 법전이 아니라 판사의 얼굴에 있습니다. 그 얼굴이 정직할 때 법도 정직해집니다. 판사의 정직함이 곧 법의 무게입니다.

법관들이 사법개혁의 조타수가 되길

사법부 독립을 뒤흔드는 손은 정치권의 압력도, 거리의 함성도, 시민사회의 항의도 아닙니다. 사법부 위기 원인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쌓아온 자기 확신, 고고한 자부심에서 비롯된 세상과의 고립, 스스로를 성역화한 높은 담장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 이런 것들이 사법부가 마주한 진정한 위협이 아닐까요.

이재명 후보 판결은 단지 한 정치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법이라는 제도가 때로는 얼마나 세상과 상식에서 멀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표입니다. 정의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저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울렸는데도 그 소리를 미약한 소음으로 듣는 한 사법부의 위기는 지속됩니다. 사법부의 독립은 권위가 아니라 절제에서 옵니다. 권한이 아니라 책임에서 태어납니다. 그 책임의 무게를 이기는 것은 오직 겸손에 있습니다. 국민이 등을 돌릴 때 독립은 허공에 흩어지는 문장이 됩니다.

법관 여러분의 오랜 수고와 헌신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맡은 바 책무를 다하는 수많은 법관들께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다만 그 수고가 성역의 울타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26일의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부 위엄의 벽을 다시 쌓는 자리가 아니라, 그 위엄의 기원을 성찰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담장을 허물고 담 너머 세상의 목소리를 마주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의는 높은 법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먼지 쌓인 골목길 사람들의 숨결 사이에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사법개혁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습니다. 법관 여러분들은 개혁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개혁에 수동적으로 끌려가기보다는, 개혁의 물살을 가르며 앞서 헤쳐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서로의 말과 생각이 부딪히고 섞이면서, 사법개혁의 키를 함께 잡는 자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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