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국보법 폐지를 요구하셨을 것

[기고] 미래 한반도 위해 국보법 폐지, 한미동맹 정상화 필요하다

이영희 선생님은 70-80년대 반공주의만이 지배하던 국내 상황에서 세계 주요 정세 속의 한반도 문제를 조명하는데 기여하셨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충격이었다. 이 선생님은 베트남 전쟁에서 드러난 미국의 침략성, 마오쩌둥과 중국, 한반도 핵문제의 심각성을 활자화해 제시하면서 사회적 의식화를 선도하셨다. 이 선생님은 <한겨레> 신문 창간에 큰 도움을 주셨고 연로하신 상황에서도 세계를 살피고 그 실체를 파헤치는 작업을 계속하셨다. 이 선생님은 현역 기자 생활 당시 국내외 정세를 살펴 현상 분석과 대안 제시에 탁월했던 분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오늘날 선생님이 생존해계신다면 비핵화, 남북관계 등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 틀림없이 국가보안법 폐기와 한미동맹 정상화를 강조하셨을 것이다.

이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좀 더 과학적이고 활발한 통일언론 보도와 운동이 전개되었으리란 아쉬움이 큰 상황이다. 선생님은 틀림없이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대미, 대북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법하다. 필자는 이 선생님이 몸 담으셨던 옛 합동통신, <한겨레> 신문에서 근무했고 좋은 말씀을 많이 들으면서 배우는 행운을 누렸다. 선생님의 명복을 간절히 비는 의미에서, 평화 통일을 가로막는 두 개의 쇠말뚝인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국가보안법에 대해 본인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유를 간략히 소개한다. 이 자료는 최근 <군포시민신문>이 주최한 '왜 지금 리영희인가' 토론회를 계기로 작성한 글이다. (필자인 고승우 박사는 지난 4월 24일 국가보안법 폐지 헌법소원을 냈다. 편집자.)

한미동맹과 국보법 헌소를 제기한 이유

국가보안법은 친일 세력이 해방정국에서 제기된 친일 청산 요구를 빨갱이로 몰 수 있었던 보신책이었고, 한미동맹은 6.25 발생 직후 대마도로 도망가 임시 정부를 세우려 했던 이승만이 미국에 퍼주기를 한 20세기 최악의 불평등 체제다. 수구 세력이 국부로 모시려는 이승만이 앞장서 만든 국보법과 한미동맹은 수구 보수 세력이 반세기 가까이 집권할 수 있었던 최대의 정치적 기반이 되었다.

국가보안법 제2조, 3조, 4조, 6조, 7조, 10조는 헌법에 위반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보법 2조는 반국가단체 정의, 3조는 반국가단체 구성, 4조는 목적수행, 6조는 잠입·탈출, 10조는 불고지며, 7조는 찬양·고무에 관한 것으로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적돼 왔다. 국가인권위원회(당시 위원장 김창국)는 지난 2004년 8월 국회의장과 법무부 장관에게 "국보법은 제정 과정부터 태생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보법은 법률의 규범력이 부족한 법으로 그 존재 근거가 빈약한 반인권법"이라며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권력 장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친일 세력이 만들어 놓은 국보법은 초등학교 –고등교육 교과서 전반을 검열하고 일상적인 언론 보도를 통제한 최대, 최악의 보도지침이다. 통일을 먼 나라 이야기로 치부하는 현실은 국보법이 허용하는 공간에서 성장한 청소년에게 당연한 논리적 결론이었다. 언론은 국보법을 의식한 자기 검열을 체질화한 나머지 국보법을 의식치 못한 채 언론 자유를 이야기하는 기이한 상황에 처했다.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4조는 미군의 한국 배치를 권리(right)로 규정, 한국은 grant하고 미국은 accept하게 되어 있다. grant, accept는 조건 없이 주고받는 의미의 외교용어다. 미국에 '슈퍼갑'의 위치를 보장한 4조에서 SOFA(정식명칭 - 대한민국과 아메리카 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 SMA(방위비분담 특별협정 - SOFA 5조(주한미군에 대한 시설과 구역은 한국이 제공하고 주둔 경비는 미국이 부담하는 내용)의 적용과 관련한 예외적, 특별 조치)가 파생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보장된 특권에 이어 전시작전지휘권까지 장악한 미국이 지난 수십 년 간 북한 선제공격 카드를 대북 협상 또는 위협용으로 휘두를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이 한미동맹 4조 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평택 미군기지가 미군 해외 기지 가운데 최대 규모라는 사실은 부끄러운 한미관계의 상징으로, 한국이 미국의 군사적 식민지를 방불케 하는 대미종속 상태에 처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지적된다.

정치권, 언론, 학계, 시민운동권은 한미동맹을 원론적으로 거론하는 것을 지난 수십 년 간 극력 회피해왔다. 사드 사태는 한미동맹으로 인해 발생했지만, 새 정부조차 박근혜 정권과 같은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진실을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필리핀, 일본이 미국과 맺은 동맹관계와 한미의 그것을 비교만 해도 그 실상이 분명해질 터인데, 어느 언론도 그것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되돌아보면 박정희 정권은 1966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을 대대적으로 국회와 언론을 통해 부각했다. 오늘날 이런 사실을 완전히 망각한 채 한국 사회가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너무도 한심한 일이다.

국보법과 한미동맹이 현재의 상태로 온존하는 한 비핵화, 남북교류·협력이나 평화통일 노력이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국보법, 한미동맹이 만들어질 때와 오늘날 남측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북측의 그것의 30~40배에 달하고 남한은 세계 최대 무기수입국의 하나가 되었다. 북한은 정치, 언론의 자유가 없으며 아시아 최빈국의 하나다. 그런데도 냉전 시대의 악법을 유지하면서 북한을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유지하려 하는 것은 심각한 국민 기만이다.

촛불로 들어선 정권이 과거 정권과 같은 태도를 지녀서는 안 된다. 미국이 한국에서 자국 군대와 무기를 자국 영토에서보다 싼 비용으로 관리하게끔 하고, 핵무기까지 제 마음먹은 대로 이 땅에 주둔시킬 빌미를 주는 한미동맹관계를 구태의연하게 온존한 모습을 유지하는 가운데 21세기의 험난한 국제 경쟁 무대에서 우리가 남북평화통일을 추진하려는 태도는 기이하다.

4차 산업혁명은 상상력이 그 성패를 좌우한다. 국보법은 남북한을 포함시킨 평화적인 미래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게 제약한다. 남한의 미래학이 그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다. 현재와 같은 상태라면 국보법에 의해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억압되고 한미동맹에 의해 남한이 한반도 당사자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후손에게 불행한 조국을 물려주는 과오를 피할 수 없다. 그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다.

언론은 이제 자기 검열을 일상화하는 타성에서 탈피하고, 비핵화 국면에서 세계 경제력 12~13위권인 한국이 제 역할을 하도록 견인함으로써 한반도 평화 통일은 물론, 동북아 평화와 안정이 달성되게끔 유도해야 한다. 오늘날 한미동맹 관계에서 한국이 자율적인 주권 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현실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는 모습은 100여 년 전 조선이 외세에 휘둘리다 망한 시절을 연상케 한다. 조상이 범한 과거의 치욕은 교통, 통신이 발달치 않아 국제 정세에 어두웠던 탓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오늘날 정보 최강국을 자부하는 한국이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되는 이유는 언론 등이 제 역할을 하지 않은 탓이다. 정말 부끄럽고 참담한 일이다.

이념 대결은 냉전 시대와 함께 종식됐고 무력에 의한 통일은 불가능함이 6.25를 통해 검증되었다. 이런 점에서 국보법과 한미동맹을 정상화하는 방안에 대한 언론의 격렬한 토론과 방향 모색이 절실한 때다.

참고로 필리핀과 미국의 방위협정에 따르면 미군은 필리핀에 항구적 기지를 만들 수 없고 필리핀 부대 기지 내에 주둔해야 한다. 미군은 필리핀 국내법을 준수하고 무력사용 시 안보리에 즉각 보고해야 하며, 핵무기를 절대 필리핀에 반입할 수 없다. 일본과 미국의 방위협정은 미군의 일본 주둔이 권리가 아님을 규정한다. 조약의 유효기간은 10년이고 조약의 적용을 양자가 수시로 협의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무기한 유효하다. 그 폐기는 한 당사국이 통보한 후 1년 후에 이뤄진다. 이 조약에 따르면 한반도 분쟁 발생 시 한미 양자는 유엔 등에 보고할 의무가 없다. 한반도 유사시 중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훈련을 하는 이유의 하나다.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경우 한반도는 자칫 군사 강대국들의 분할 점령으로 귀결되는 각축장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남북이 자율적으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주변 국가와 협의하는 통일을 추진하는 것이 한반도 영역을 한민족의 영토로 유지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이 때문에 국보법은 시급히 폐기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한국 대통령이 한미상호방위조약 6조에 의해 폐기를 선언한 뒤, 불가피하게 동맹을 유지한다 해도 필리핀 식으로 개선하는 방법을 심사숙고해야 한다. 국보법이 없는 상황이 될 때 언론 등이 모든 개연성을 변수로 한반도 미래를 활발히 논의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설 수 있을 것이다.

▲ '80년 해직언론인 협의회' 회장인 고승우 박사는 지난 4월 24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연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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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전 한겨레 부국장, 전 한성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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