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입양의 숨은 열쇳말, 가부장제와 인종주의

[프레시안 books] <왜 그 아이들은 한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나>

"인종 간의 해외입양은 점령군이었던 미군의 장기 주둔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군사정책에 의해 이뤄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이 주둔했던 독일과 일본은 각각 1974년과 1972년까지 미국에 해외입양을 가장 많이 보낸 5대 국가 중 하나였다."

<왜 그 아이들은 한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나>(아라사 H. 오 지음, 이은진 옮김, 뿌리의 집 펴냄)은 해외입양의 숨겨진 역사를 되짚어보는 책이다. 저자 아라사 H. 오는 미국 보스턴 칼리지 역사학과 부교수로 인종, 성별, 혈연에 기반한 미국의 이민사를 연구하고 가르친다. 타인의 자녀를 품는 가장 이타주의적 행위로 여겨지는 해외입양이 가장 거리가 먼 것 같은 전쟁, 경제개발,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 이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종교 등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들여다보는 일은 한국전쟁 이후 현재까지 20만 명의 아동을 해외입양 보낸 한국에서 해외입양의 중단이 왜 이토록 지난한 일인지 깨닫게 한다. 동시에 해외입양을 중단하고 이제는 성인이 된 입양인들의 상처를 보듬는 일의 중요성과 시급성도 절감하게 한다.

▲ <왜 그 아이들은 한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나>, 아라사 H. 오 지음, 이은진 옮김, 뿌리의 집 펴냄. ⓒ뿌리의 집
독일과 일본 VS. 한국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에서도 미군 병사와 현지 여성들 사이에서 'GI 베이비'들이 태어났다. 독일과 일본에서 전쟁의 패배와 굴욕을 상징하는 'GI 베이비'들의 존재에 대해 두 나라는 처음에는 미국인들이 나서서 '자기네 동족'을 입양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친생모들과 민족주의에 기반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해외입양이 중단됐다.

"일본 정부는 이 아동들을 인정하는 차별 금지 정책을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일본에서 혼혈아를 키우는 미혼모들이 한국에서 혼혈아를 키우는 미혼모들보다 정부와 비정부기구로부터 사회적.재정적 지원을 더 많이 받았다."

전쟁 직후 독일과 일본에서 발생했다가 사회적 안정을 되찾은 뒤 중단된 해외입양이 한국에서는 왜 2019년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부분적으로 답하자면, 오리건주 출신의 벌목꾼이자 농부였던 해리 홀트 같은 지도자가 한국에만 있었기 때문이다...한국 정부는 입양과 이민 관련 법을 개정하고 입양 기관을 설립하여 홀트의 노력에 힘을 실어주었다. 홀트양자회(현 홀트아동복지회)는 곧 한국 아동 입양 사업을 좌우했고, 지금은 세계 유수의 국제 입양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어떤 의미에서 해리 홀트는 해외입양 산업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위대함을 알리는 수단, 해외입양

해리 홀트는 '대리입양'(입양 부모들이 아동의 출신국을 찾아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입양기관 등 대리인이 입양절차를 대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입양)과 '전세 비행기'(100명이 넘는 입양아동을 한 번에 이동시키기 위해 동원됐다)를 고안해냈고,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해외입양을 산업화시킬 수 있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한국 아동 입양은 곧 해외입양을 의미하게 되었고, 이 관행이 전 세계 다른 송출국과 수령국에 퍼지면서 오늘날 수십억 달러 규모의 세계적 산업이 탄생했다."

하지만 입양은 상품을 돈과 맞바꾸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입양을 추동하는 힘은 '돈'만이 아니다. 따라서 저자는 현재 해외입양은 서로 연결된 구조와 이념의 집합, 즉 '해외입양 복합체'로 이뤄져 있다고 지적한다. 입양기관, 이민 법률, 사회복지 절차 등은 구조에 속한다. 해외입양 복합체의 '이념'에는 인종 논리에 기반한 민족주의, 인도주의, 반공주의, 종교적 신념 등이 담겨 있다. 저자는 "기독교 이념을 신봉하는 미국인들에게 해외입양은 인종차별과 공산주의를 박멸하고 미국의 위대함을 널리 알릴 기회였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해외입양은 국가가 주도한 산업이었다

"박정희의 군사독재 아래서 한국은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 중 하나로 부상했고, 그와 동시에 해외입양은 국가 산업이자 한국 아동복지 정책의 영구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혼혈 아동의 탈출구로 출발했던 입양 사업은 박정희 정권 아래서 장애 아동, 가난한 집 자식, 미혼모 자식 등 한국이 돌볼 수 없거나 돌볼 생각이 없는 아동을 외국으로 치우는 통로로 바뀌었다...해외입양 산업은 한국의 '경제 기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외화를 벌어들였고, 힘 있는 서구 동맹들과의 우호를 증진했고, 과잉 인구를 조절하는 안전밸브 기능을 했고, 토착 사회복지 기관들을 개발해야 하는 정부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주었다."

한국이 해외입양을 통해 '경제적 이득'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해외입양을 강력하게 추동시킨 힘은 가부장적 민족주의였다. 전쟁 직후 혼혈 아동은 '아버지의 나라'로 돌려보낸다는 명분으로 내보내졌다. 입양은 미혼모와 그 자녀의 존재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수단이었다. "국가와 사회가 미혼모와 그들의 자녀를 지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해외입양이 그 틈을 메웠다." 2019년 현재도 입양아동의 90% 이상이 미혼모의 자녀다. 한국은 미혼모와 그 자녀에 대한 차별이 사법 제도, 사회 제도, 문화 체계 내에 여전히 강고하게 존재한다.

"1960년대부터 한국 입양 산업은 대규모 근대화 사업과 더불어 효율적인 사업으로 발전했다. 1980년대에는 투명성, 속도, 전문성, 덕분에 해외입양의 최적 표준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 기적이 사실은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이뤄졌듯이, 높은 평가를 받은 해외입양 산업 역시 가장 취약한 사회 구성원들이 값비싼 대가를 치른 결과였다. 이는 가난한 가정, 미혼모, 외국에 입양된 아동들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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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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