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XXX, 왜 중요할까?
옷에 붙어있는 라벨을 확인해보면 정말 다양한 국가들과 만나게 된다. 과거에는 한국 등지에서 생산된 Made in Korea가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Made in China, 그리고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터키, 베트남 등에서 생산된 의류제품도 많이 수입되고 있다. 이는 흔히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브랜드로 대표되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업체에서 생산한 상품에서 두드러진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상품들 중에서도 옷은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 중 하나이자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함께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화로 말미암아 상품의 생산 및 유통 거리가 증가함에 따라 이러한 경향은 더 두드러지고 있는데, 이는 생산된 제품이 소비되는 곳에 도달하기까지의 거리가 길어짐에 따라 누가 내가 사용하는 상품을 만들었는지, 적절한 환경에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지역 간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세계화의 시대에 상품 생산 과정의 불확실성과 불투명성으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물건이 '어느 나라(지역)에서 생산되었는지'가 중요해지게 된 것이다.
'세계의 공장'은 어디로 이동하는가?
중저가 의류 제품의 가격은 지난 10년간 거의 변화를 겪지 않았는데, 생산 과정의 네트워크를 거꾸로 추적하다 보면 이는 글로벌 생산 지리의 변화 속에서 여러 국가들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수행해왔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의류 산업의 지리적 변화는 주로 국제 규제의 영향을 받아왔다. 1970년대까지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생산된 의류 상품이 다른 국가에서 생산된 상품들과 비교했을 때 가격이나 품질 측면에서 모두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한국을 위시한 개발도상국에서 저렴한 인건비와 좋은 품질의 제품을 앞세움에 따라 해외 지역으로의 하청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에 미국과 유럽은 자국의 의류업을 보호하기 위해 GATT 7조에 있는 '세이프가드' 조항을 빌미로 다자간 섬유협정을 체결하였다. 이 다자간 섬유협정은 국가별로 수입 쿼터를 두는 것으로, 쿼터를 넘어설 경우 쿼터 제한을 넘지 않은 다른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확대해야 했다.
그러나 다자간 섬유협정은 WTO의 목표인 자유 무역에 위배된다는 점과 함께 미국 내 주요 초국적 의류 기업들의 압력 등으로 인해 1995년부터 2005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되었다. 다자간 섬유 협정이 폐지된 후, 쿼터제에 의해 유지되어 오던 의류 생산 공장의 지리는 큰 변화를 겪게 됐다. 가격 우위, 봉제 기술 우수 등의 이유로 아웃소싱이 중국과 같은 기술과 인프라를 갖춘 소수의 하청 국가들로 통합되었고, 이에 따라 기존 쿼터제의 혜택을 받았던 멕시코, 카리브 해 등지의 섬유의류산업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됐다.
그러나 수십 년간 세계의 공장으로 기능해온 중국은 인건비 상승, 정부 규제 강화 등으로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에 공장을 설립하는 이점보다 단점이 더 커지면서, 최근에는 인건비가 저렴하고 정부 규제가 느슨한 베트남,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는 업체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생산 지리의 변화로 새롭게 패스트 패션 의류 브랜드의 생산기지가 된 지역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먼저 사회경제적 소득이 증가하고 빈곤율이 감소하는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의류 공장이 들어선 곳은 지역 경제 고용 창출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한다.
실제로 방글라데시의 경우 의류 산업이 전체 제조업 고용의 48.8%를 차지하고 있으며, 봉제공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절대 빈곤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공장의 설립으로 지역이나 국가 스케일에서 긍정적인 변화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2013년 4월 방글라데시 다카 근교 봉제 공장들이 밀집해있던 라나 플라자(Rana Plaza)에서 일어난 건물 붕괴사고로 1000여 명의 근로자가 사망하고 20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라나 플라자 붕괴사고 현장에는 건물의 이상 징후에도 불구하고 납기일에 맞추기 위해 계속 생산되고 있던 유명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옷들이 뒤섞여 있었다.
라나 플라자 사건은 의류 생산의 편리함과 저렴한 가격 뒤에 감추어져 있던 만성적인 저임금 문제,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근무환경을 폭로하는 계기가 되었다. 라나 플라자 붕괴 사고에 분노한 시민들은 옷 안의 라벨을 가리키며 "누가 나의 옷을 만들었나?"(Who made my clothes?)라는 캠페인을 벌였고, 몇몇 다국적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을 약속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바닥치기 경쟁(Race to the bottom)인가? 희망을 향한 길인가?
그동안 의류 산업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패스트 패션 산업 이면에 숨어있는 문제는 인건비 문제 하나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났던 의류업 관계자는 패스트 패션 의류 생산 문제의 핵심은 인건비 절감뿐만 아니라, 이익의 불균등한 분배라고 주장한다.
윤리적인 생산과 소비를 강조하며 아무리 많은 돈을 주더라도, 그것이 생산네트워크의 주변부, 최하단까지 제대로 도달하지 않는다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명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은 윤리적 생산으로 상승하는 비용을 중소규모의 제조업체, 그리고 봉제하청 업체들에게 떠넘기곤 한다.
2013년 라나 플라자 붕괴 사건 이후로 다국적 기업들은 노동 조건 개선을 약속하고 하청공장의 윤리적 기준 강화에 나섰지만 이로 인한 생산비용 상승은 리테일러에서 제조업체로, 제조업체에서 다시 봉제 하청 공장으로 전가된다. 이 과정에서 네트워크의 주변부이자 최하단에 속하는 하청 공장들에 가해지는 압력은 어마어마하다.
비용 상승 압박을 견디다 못한 개발도상국의 하청공장은 하청에 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단가를 맞추고, 이 과정에서 저렴한 아동 노동력이 동원되곤 한다. 결국 패스트 패션의 근본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이상, 하청에서 하청으로,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저개발국으로 이어지는 착취의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 없다.
1970년대 한국의 경우 봉제업 등을 기반으로 오늘날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었으나, 현재 하청 공장들이 위치한 저개발/개발도상국 국가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바닥치기 경쟁을 통한 공멸의 길이 아니라 '희망을 향한 길'이 되기 위해서는 생산 네트워크의 구조적 문제와 지리적 불균등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생산 과정에서 복잡하게 얽힌 구조적이고 지리적인 문제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구매하는 물건들을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와 관련된 상품사슬과 가치사슬,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와 관련된 경제지리학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영국의 지리학자 이안 쿡(Ian Cook)이 Follow the Things 프로젝트를 통해서 우리가 구매하는 물건들의 생산 과정 이면에 숨겨진 구조적 문제를 추적하고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사는 물건들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 이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구매하는 커피, 티셔츠, 휴대폰 및 기타 수많은 상품에 숨겨진 재료를 보여주는 다양한 작업들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은 보다 윤리적인 소비자 또는 기업 행동을 장려하기 위해 불유쾌한 노동 조건을 '폭로하고(expose)' 있다"
경제지리학은 산업의 문제를 단순히 비용, 기업 구조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국가, 장소, 지역, 정체성 등 다양한 스케일의 장소들이 처해있는 구체적인 시공간적 맥락이 촘촘하게 교차하는 역동적인 현장으로 바라본다. 경제지리학의 관점에서 상품이 생산, 유통, 소비되는 구체적인 장소와 지역에서 시작해 그 연결을 확대해나간다면, 상품 이면에 있는 생산 네트워크의 구체적 맥락을 드러내고 '바닥치기 경쟁'이 아닌 '희망을 향한 길'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김수정 박사는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교육과 인문지리학 전공으로 '로스앤젤레스 의류 산업의 글로벌 사회-경제 네트워크와 민족관계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전남대학교 지리교육과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중에 있다. 글로벌 이주와 한인 디아스포라, 산업의 글로벌화와 관련된 경제지리학과 문화지리학 분야를 아우르는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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