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는 사회'는 얼마나 당연한가. 한국은 각종 상거래에서 현금 없는 결제가 일반화되더니, 급기야 공공 교통수단에서마저도 현금 결제가 차단되고 있다. '현금 없는 버스' 정책이다. 공공서비스의 보편적인 접근을 막는 문제임에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만 치부된다.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이에 '삶의 다양성을 지킬 수 있는 선택이 보장되는 사회가 더욱 자유로운 사회'라고 한다. 공공교통네트워트가 보내온 여섯 편의 기고로 '현금 없는 한국'의 문제를 돌아본다. 편집자
최근 ‘현금 없는 사회’를 촉발한 것은 현금 없는 버스다.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은 인천광역시로 2021년 1월 2개 노선에서 현금 없는 버스를 운영하다 2023년 전체 노선의 절반을 현금 없는 버스로, 2025년 1월부터는 강화 군내버스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노선을 현금 없는 버스로 운영 중이다.
서울시는 2021년 10월 8개 노선 171대 버스를 대상으로 현금 탑승을 금지하면서 현금 없는 버스가 확산하기 시작해, 별다른 평가 없이 바로 2022년 1월 18개 노선 418대로 늘렸다. 대전광역시는 2022년 9월부터 단 2달의 시범 운영 이후 모든 노선에서 현금 승차를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대구광역시 역시 군위군을 제외하고 지난 2월부터 전면적으로 현금 없는 버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광주광역시는 오는 8월부터 현금 승차를 완전 폐지할 계획이다.
도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특별·광역시에서 현금 없는 버스가 급속히 늘어났다. 이후 광역도 지역으로도 확산해 광양시는 이미 지난 1월부터 현금 없는 버스를 운영 중이다. 김제시는 오는 7월부터, 부천시는 오는 8월부터, 화순군은 오는 9월부터 완전 현금 없는 버스로 운영할 계획이다. 안양시나 용인시도 상당수의 노선이 이미 현금 없는 버스로 운영 중이다.

현금 없는 버스, 왜 하나?
행정 처리의 가장 기본이 되는 법률인 행정기본법 제9조는 '합리적 이유 없이 국민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정한다. 현금 없는 버스는 현금이라는 특정 지불 수단을 금지함으로써 버스라는 공공성이 높은 서비스의 접근을 제한한다. 단지 지불수단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금지된다면, 법이 정하고 있는 '합리적 이유'에는 충분히 근거가 있을까?
일반적으로 현금 없는 버스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첫째, 이미 현금이 아닌 카드 사용 비율이 높아서 현금 사용은 무시할 만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둘째, 현금수송 수익이 그것을 관리하는 비용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낮아져서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논리다.
이런 입장은 2022년 현금 없는 버스를 먼저 시행한 인천시와 서울시가 적극 개진했다. 인천시는 2022년 현금을 받지 않는 노선의 확대 이유를 현금 승차율이 2.2%(2021년 기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0.83%(2020년 기준)로 줄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국가 데이터에 따르면, 2022년 인천시의 버스 이용자는 2억 명 수준이다. 이 중 현금 사용자가 2.2%라면 400만 명에 해당하고, 서울시도 2020년 기준으로 0.83%면 1000만 명에 달한다. 비율(%)로 보면 매우 적게 보이지만, 실제로 연간 누적된 이용량에서 현금 사용 숫자는 그렇게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경제성 측면을 보자. 서울시는 현금함을 관리하는데 연간 20억가량의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현금을 관리하는 전담 인력이 있는 경우로 과장했고, 해당 시간도 비용으로 간주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그렇다고 '느끼는' 것이지,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은 아니다. 현금 탑승을 금지한 노선의 수익성이 개선되었냐 하면 그렇지도 않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현금이든 카드든 이용 승객을 다양하게 수용하는 것이 수입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즉 관리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 역시 노인 무임 수송을 비용으로 말하는 것처럼, 반대급부로 구체적인 이익이 발생하는 실비용이라 보기 힘들다. 나아가 공공기관이 이용자가 적다는 이유로, 혹은 경제적 이익을 이유로 특정한 이용을 제한하는 것이 법에서 정한 ‘합리적 이유’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힘들다.
운전자의 안전 운행에 도움이 된다거나 정차 시간을 줄여서 빠른 운행이 가능해진다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앞 이야기와 비교하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전체 승객 중 고작 2%에서 0.8%의 현금 수송 때문에 버스 운행의 안전이나 운행 시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타당한 주장인가. 물론 조금이라도 조심해서 사고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버스가 주로 다니는 도로에 갓길 주차를 허용하거나 장애인이 이동할 수 없는 스마트 정류장을 만들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그렇게 시급한 우선순위에 해당하느냐는 질문이 생긴다.
당연히 노동자로서는 승객과 대면하는 일이 적으면 더 좋을 수 있다. 이것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공공부문 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이다. 하지만 민원인이 싫다고 일선 공공행정기관이 민원을 금지하는 것이 안 되듯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불편함을 핑계로 특정한 결제 방식을 금지하는 것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그 순간 훼손되는 공공성은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금 없는 버스’는 버스가 민간사업이라는 증거일 뿐
헌법 제37조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않았단 이유로 경시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당연히 자유와 권리에는 불법이 아닌 범위 내에서 이동과 공공서비스에 대한 접근권이 포함다. 하지만 이것이 제한되는 경우가 있는데, 완전히 민간사업인 경우가 그렇다. 대표적으로 ‘노키즈존’이 그렇듯, 특정한 상업 공간에 이용자를 제한하는 것이 타당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 그것에 대한 평판은 오로지 민간사업자의 재량으로 보이고 이용자의 관점에선 다른 매장을 이용함으로써 그와 같은 선택에 대한 선호를 표시할 수 있다.
실제로 제주특별자치도는 도내 현금 없는 버스 운영에 대한 민원에 ‘현금 승차를 거부하는 것은 사업자 자유계약의 원칙’이라는 답을 내놓은 바 있다(제주도는 현금 사용률이 9.8%로 가장 높은 편임에도). 즉 버스 사업자가 결제 수단을 제한하는 것은 상행위의 재량범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권리 침해를 주장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사실 앞서 언급한 서울시나 인천시 그리고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현금 없는 버스의 본질이 결국 민간이 운영하는 사업으로서 버스 사업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기본적으로 서울시나 인천시, 그리고 제주도와 같은 지자체가 버스를 공공서비스라고 생각했다면, 이용자가 소수여도 이들을 배제하는 정책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처럼 막대한 보조금을 주고 있어도 버스의 본질은 민간사업이라고 보고, 인천시나 서울시처럼 준공영제라 하더라도 현금 탑승 거부는 민간사업자의 재량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현금 없는 버스가 이처럼 확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이용자인 시민 누구도 현금 없는 버스가 사기업의 ‘자유로운 계약’에 의한 것이라 인식하지 않고 다 지자체가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아가 이를 자유 계약의 대상으로 삼으려면 ‘노키즈존’과 같이 이용자가 자유롭게 대등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현행법은 버스 사업자의 독점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이를 국가가 면허제도를 통해서 보장한다. 애당초 대안적인 선택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사업자의 자유로운 계약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지자체들의 낮은 공공성에 대한 인식을 보여줄 뿐이다. 궁극적으로 현행 버스 사업이 얼마나 모순된 상황에서 운영되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하나의 차별은 다른 차별을 부른다
전세버스 형태로 운영되는 오산시 학생 통학용 마을버스는 아예 애당초 현금수송이 안 되도록 했지만, 다른 일반 노선의 경우에는 현금 사용이 가능하다. 통학하는 학생에게만 현금 없는 버스를 강제하는 셈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학생들은 교통카드를 통해서 이동한다고 말할 것이다. 마치 노인에겐 별도의 복지 카드를 제공하기 때문에 현금 없는 버스가 별문제가 없는 듯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어떤가. 갑자기 선불권 사용이 어려운 사람은 어떤가. 서울시는 서울시 정류장의 85%가 근처 200미터 이내에 편의점이 있어서 구매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서울시는 현금 없는 버스가 다니는 버스정류장마다 근처 편의점 위치를 공지했을까. 아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나오는 말을 그냥 한 것에 불과하다. 당장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편의점을 반경 200미터에서 찾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이 정상적인 행정의 대응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서울시는 주차장을 신설하거나 거주자 우선주차 구역을 확대해달라는 민원에 대해 반경 200미터에 다른 주차장도 있으니, 거기를 이용하라는 말을 할까? 그러진 않을 것이다. 이는 명확하게 서울시 행정이 버스 이용자들을 바라보는 차별적 관점이 투영된 것에 불과하다.
연초 서울시는 올해 버스 운행 평가를 위한 기준을 제시했고 거기엔 작년에 없었던 지표가 몇 개 들어갔다. 그중 하나가 현금 없는 버스 안내 불친절로 ‘요금 납부 방법 안내 미비, 승객의 하차 요구’를 할 경우에는 운전기사 평가에서 감점을 받게 해놓은 것이다. 당장 운전기사로선 현금 없이 승차하는 승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계좌번호를 안내하는 수준밖에 없는 상태에서 이런 평가 요소가 반영됐다. 결국 현금 없는 버스가 가진 최소한의 합리성인 안전 운행이란 근거마저 스스로 무너뜨린 셈이다.
무조건 현금이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키오스크가 한국의 디지털화를 상징하는 혁신이 아니라 노동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행위에 불과하듯이, 현금 없는 버스 역시 사업자의 편의를 위해 이용자에게 불편을 전가하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특히 버스가 공공서비스로서 매우 중요한 필수서비스라면 말이다. 이것이 그토록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지, 여전히 현금 없는 버스를 중요한 시책인 것처럼 내세우는 지자체가 우후죽순 늘어나는 것에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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