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현재 미중 무역전쟁의 심화로 한국 경제와 안보에 위험 신호가 켜졌고, 북핵 문제는 비핵화 단계에 대한 북미 간 간극이 좁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노딜, 미국의 '중국 책임론' 제기,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와 미국의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호' 억류 등으로 북미관계가 경직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에 많은 힘을 투사하고 있는 미국은 북한이 미국을 직접적으로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북핵 문제를 최우선순위에 두고 있지 않은데, 자신들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 북한에 대해 힘과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적극적인 대응을 유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 과정은 북미 협상이 핵심이지만 과거 6자 회담 당사국들의 이해관계 조율, 무역전쟁으로 인한 중국과의 협력이 어려움 때문에 협상의 동력만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대일로'로 자국 중심의 질서 확립과 역내 통합을 이루려는 중국, '인도-태평양 전략'과 미중 무역전쟁을 중심으로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면서 흔들리는 아시아에서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 에너지 협력·신동방정책을 중심으로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면서 동아시아와의 협력을 모색하는 러시아, 미일 동맹을 강화하면서 인도양을 넘어 아프리카까지 영향력을 확장하는 일본까지 동북아는 미·중·일·러의 지정학적 전략으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동북아 4강의 중심과 미중 대결구도 사이에 있으며,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의 최접점에 위치해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심화로 경제는 중국에, 안보는 미국에 기대고 있는 한국이 미중 간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상황이 더욱 빈번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한국의 국내외적 갈등과 지정학적 딜레마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한국은 양자 중 한 쪽을 선택할 때 발생할 손실과 보복, 선택을 유보했을 때 양국과의 신뢰 관계 훼손 우려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더욱이 미중 무역전쟁이 미중 패권 전쟁의 시작인 동시에 패권을 건 자존심 대결로 치달으면서, 양국은 큰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목적 달성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장기전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양국 간 갈등은 상대국의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가안보를 위한 미국의 반(反) 화웨이 전략, 위안화 환율 조작에 대한 상계관세 부과가 가시화되면서 급속도로 확전되고 있다.
한국은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에 대해 3년 동안 결정을 유보하면서 중국과 갈등이 심화됐고 그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으로 큰 경제적 타격과 외교적 입지가 축소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안보문제에 있어서 미중 갈등이 한국에 투사됐고, 중국의 경제보복에 미국은 동맹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 한국은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선택할 한편을 선택할 수도, 전략적 모호성으로 일관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 한국에 '일대일로'와의 협력을, 미국은 한국에 '인도-태평양 전략'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지역패권주의에 대한 도전, 중국몽의 실현, 신창타이를 선언한 중국 경제의 활로 모색, 에너지 확보와 해상권 장악을 위한 지정학적 전략이다. 시진핑 주석이 제시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중국의 꿈(중국몽)' 실현을 위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중국 특색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이룰 전략인 셈이다.
미국은 일대일로의 해상 전략에 대응하여 대중국 포위망으로 '인도-태평양 구상'을 펴고 있다. 이 구상은 셰일혁명으로 에너지 독립을 이룬 미국이 2011년부터 지정학적 가치를 동북아로 옮기는 '아시아 재균형(Asia Rebalancing Strategy)전략'의 연장선에 있으며, 서태평양과 동인도양의 해상 연속성에 기초하여 미국의 전략 공간의 지리적 충심축을 서쪽으로 이동시키고 환인도양을 포함해 동중국해에서 인도양에 이르는 중국의 해양굴기를 견제하기 위한 지정학적 전략이다. 여기에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동참하고 있으며 남중국해 등지에서 정기적인 합동군사훈련 및 '항행의 자유 전략'을 벌이고 있다.
중국이 지난 3월 말 열린 리커창 중국 총리와 이낙연 국무총리의 회담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국이 일대일로 건설에 적극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밝혔고,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한국은 일본처럼 제3국 시장에서 일대일로와 협력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고 일대일로에 참여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이나 일본도 일대일로의 취지에 동의하며 참여 의사를 밝힌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반대로 미국은 미국의 우방이나 동맹의 일대일로 참여를 저지하거나 비난하고 있다. 미일무역협상에서 일본에 일대일로에 참여하지 말 것을 강하게 압박하고 최근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로마는 미중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칠 수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은 최근 한국에 반(反)화웨이 캠페인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한 데 이어, '항행의 자유 작전'에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의 지지 표명을 요청했다. 북핵문제가 답보상태이고 중국과 전면적인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인도-태평양 구상'에 합류하지 않는 한국을 주시하고 있다.
한국은 한국의 안보와 한반도의 비핵화· 평화체제 정착을 위해 한미동맹을 흔들림 없이 유지해야 함에는 변함이 없다. 또한,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한국은 뗄 수 없는 관계로 동북아 평화 유지, 한국의 높은 대중경제의존도, 동북아 안보경제협력공동체 형성,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과의 협력적 파트너십 유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이 미중 갈등 상황이 발생하는 개별 사안마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합리적인 결정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한국의 높은 대중국 경제 의존도에 의한 중국의 경제 무기화, 경제보복이다. 지난 30여 년 간 한중 상호보완적 경제 구조와 아시아 경제의 세계 경제성장 주도로 한국과 중국은 경제 관계에 있어서 상호 윈-윈하는 관계였으나 한국의 지나치게 높은 대중국 경제 의존도는 한국 경제가 중국 경제 동조화와 종속관계 심화로 한국 경제 구조의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한국은 현재 미중 무역전쟁의 파고를 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미래 한국을 위해 대중국 경제 의존도를 낮추는 중장기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경제 보복에 대한 영향력을 감소시킬 수 있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 과정과 그 후의 남·북·중 경제협력, 동북 3성 지역에서의 다자경제협력, 동북아 공동체형성 등의 사안에서 중국과 대등한 협력을 할 수 있다. 강한 상대에게 약하고 약한 상대에게 강한 중국의 태도를 파악하고 역내 중견국이자 중국의 대등한 경제협력 파트너로서 자주적이고 소신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 수립을 위해 다음과 같은 사항이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한국은 중국의 산업구조 변화와 한중 간 상호보완적 분업구조 약화, 주력산업의 중첩과 산업기술 격차 축소 등 한중 경제협력에 대한 산업 구조적 측면의 분석과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미중 무역전쟁이 확전되고 장기화됨에 따라 중국의 경제성장률 하락, 수출 둔화, 부채리스크 증가, 실물경기 둔화와 시장 불안 확대, 부동산 침체, 중국 기업과 가계의 연쇄 디폴드 가능성 증가로 발생할 수 있는 중국발 경제위기에 대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중국발 경제위기에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셋째, 미중 무역전쟁은 미국이 중국을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함으로써 기술굴기와 군사굴기, 일대일로를 저지하려는 전략이다. 미중은 경제적 합리성에서 벗어난 결정을 할 것이고 양국 모두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 '세계 일류'를 지키기 위한, 탈환하기 위한 싸움을 계속 할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단기적인 합의점에 도달하더라도 중국의 패권도전이 지속되는 한 우주·항공·IT 등의 첨단산업, 미래 먹거리, 군사· 안보 분야에서 미중 패권 전쟁은 계속 될 것이다.
넷째, 대중국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차이나 리스크와 미중무역전쟁의 피해를 줄이는 근본적인 대책일 수 있지만 단기간에 급격하게 이루어질 수 없으며,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먼저 중국 수출에서 중간재 수출 비중을 낮추고, 글로벌 경제의 변화에 대응하면서 중국과 서비스·투자 분야의 FTA 타결 노력, 새로운 경제협력 모델 개발 등 달라진 한중경제 구조에 따른 새로운 경제협력 방안의 모색도 적극적으로 시도되어야 한다.
한국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원칙과 일관성 있는 답을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소규모 개방 경제이면서 미국과 중국 수출 비중이 37%에 달하는 한국은 장기화될 미중무역전쟁과 양국의 보호무역주의, 그 과정에서 미중간 선택을 강요당하는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중국의 경제성장률 저하와 점증하는 중국발 경제위기의 위험에 대해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미국의 더 공정하고 호혜적인 무역 관계 형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미국의 시대'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동북아에서 영향력 확대와 자국의 안보·자원·시장 확보를 위한 미·중·일·러의 치열한 지정학 전략의 최전방에서 한국은 어떠한 전략을 펴야 하는가?'
한국은 동북아 중견국으로써 100여 년 전 강대국에 의해 규정된 지정학적 딜레마를 극복하고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한반도의 전략적 지정학을 정립해야 한다. 한반도의 전략적 지정학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대비한 해륙국가로서의 위상 정립, 동북아 4강과의 협력적 파트너십 형성, 한반도 지정학을 강화할 수 있는 지경학적 전략 포함, 대중경제의존도 감소, 신북방·신남방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한 경제·외교·안보적 이익 공유와 국제 사회의 지지세력 확보를 지향해야 한다.
한반도의 전략적 지정학이 한반도 평화체제와 미래 한반도 100년을 준비하는 한국 경제·외교·안보에 갖는 함의는 자강이다. 100년 전 조선이 꿈꾸었지만 이루지 못한 자강을 한국의 높아진 국제적 위상과 경제발전의 자부심을 바탕으로 개방 경제이면서도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자주국방의 길을 모색하는, 4강의 지정학적 전략에 한반도의 전략적 지정학으로 대응하면서 한반도 자강의 길을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위기의 때에 당면한 현안에만 함몰되지 말고 자강을 통해 한반도 미래 100년을 준비해야 한다. 그 과정은 한반도의 힘을 통합하고 민족이 화합하고 한반도가 번영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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