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시간, 중국 대륙을 달리는 겁나는 기차여행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두 번째 이야기

5월 23일. 07:18분 연길을 떠나 11시에 창춘(長春)역에서 집결, 12:05분 출발 열차에 탑승.

25일. 07:18분 충칭(重慶)역 도착. 몇 군데 구경한 후 버스로 3백여 공리(公里, 킬로미터) 동쪽의 언스(恩施) 투자족-먀오족 자치주로 이동.

26일. 언스 일대 관광.

27일. 언스 일대 관광 후 완저우(萬州) 부두로 가서 19:00분 출항하는 유람선에 승선. 윈양(雲陽)항에 들러 장비묘(張飛廟)를 둘러보고 22:30분에 다시 출항.

28일. 아침결에 백제성(白帝城)을 관람하고 오후에 구당협(瞿塘峽)과 무협(巫峽)을 지남. 도중에 신녀천로(神女天路) 관광이 있음.

29일. 오전에 신농계(神農溪) 관광. 오후에 서릉협(西陵峽)을 지나 산샤(三峽)댐에 도착, 댐 공원과 굴원고리(屈原故里)를 구경하고 이창(宜昌) 시내에 투숙.

30일. 오전에 산샤댐 관광. 배가 댐을 지나가게 하는 '선박엘리베이터(垂直升船機)' 체험이 중심. 오후에 버스로 3백여 공리 동쪽의 우한(武漢)으로 이동.

31일. 동호(東湖), 황학루(黃鶴樓), 홍루(紅樓) 등을 구경하고 후부캉(戶部巷), 스먼커우(司門口) 등 우한 중심가에서 자유시간을 가진 후 한커우(漢口)역에서 18:04분 창춘행 열차 탑승.

6월 2일. 03:35분 창춘 도착. 09:39분 연길 도착.

친지들이 권하는 관광단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대충 '충칭과 산샤 방면'이라는 말만 듣고 뒤늦게 참가를 결정하고 난 뒤에 위와 같은 요점을 담은 일정표를 받아보니, 지금까지 해본 것과 아주 다른 종류의 관광이 될 것 같다. 흥미롭기도 하고 좀 겁이 나기도 한다.

고등학생 때 어디선가 '가 보고 싶은 곳'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 기억이 남아있는 것은 중국을 이야기한 것이 나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국은 '나쁜 나라'로만 인식되고 모두 미국, 서양만 바라볼 때였다.

그때 내가 중국을 떠올린 것은 <삼국지>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전에 읽은 김용환 화백의 <만화 삼국지>로 시작해 정음사 판, 을유문화사 판을 거쳐 영창서관 판 <현토 삼국지>(한문에 토씨만 붙인 판본)까지, <삼국지>는 <임꺽정>과 함께 내 소년기의 가장 큰 읽을거리였다. <삼국지>로 익힌 한문이 중국 고전으로 길을 열어주었고 역사 공부를 중국사로 시작하는 계기도 만들어주었다. 문화대혁명의 전통 파괴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내 마음속의 ‘중국’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아 초조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1980년대 교수직에 있을 때는 타이완과 홍콩에 열심히 다녔다. 홍콩의 삼련(三聯)서점에서 구입한 책으로 서재다운 서재를 비로소 꾸릴 수 있었다. 중국과 국교 수립 후까지 교수직에 있었다면 열심히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런데 교수직을 떠나고 보니 돌아다닐 시간은 넉넉한데 돌아다닐 돈이 없게 되었다. '물 좋고 정자 좋기 힘들다'는 탄식이 나왔다. 2002년이 되어서야 중국에 오게 되었는데, 유람객 팔자가 아니었다. 검소한 생활 속에서 중국을 겪어보러 온 것이었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지낸 날짜를 합치면 5년가량 되는데 연변 이외의 장소에서 지낸 날짜는 두 달이 될까? 그중 '관광'이라 할 만한 여행은 2008년 처가 식구들을 따라 하이난다오(海南島)에 가본 것뿐이다. 이제 300만 원 거금을 들여 열흘간 유람에 나서는 것은 시간도 돈도 좀 더 마음 편하게 쓸 '퇴각로'에 접어들었다는 자각 덕분이다. (여행사에서 걷는 돈은 1인당 인민폐 4000여 원, 우리 돈으로 70만 원 남짓인데, 다니면서 그 정도 돈이 더 든다고 한다.)

일정표에서 제일 먼저 '백제성', '장비묘' 등 <삼국지>를 떠올리는 장소들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들여다보며 양쯔강(長江)을 떠올린다. 어릴 적부터 내 마음속의 ‘중국’을 대표하는 존재가 양쯔강이다. 이번에 유람선 위에서 지나칠 300여 공리 산샤 항로는 양쯔강의 큰 부분 하나다. 본격적인 중국 구경의 출발점으로 삼을 만한 곳이다. 이창에서 우한까지 2박3일은 주차간산(走車看山)이 될 것 같다. '첫 술 밥에 배부르랴' 하는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데까지 보고 올 일이다.

신영복 선생의 '서삼독(書三讀)'이란 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책은 반드시 세 번 읽어야 합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그 필자를 읽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합니다.

모든 필자는 당대의 사회역사적 토대에 발 딛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를 읽어야 합니다.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하는 까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유람에 이런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관광 대상지가 텍스트 내용이다. 다음으로 관광의 형태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 관광에 참여하는 내 입장과 관점을 스스로 음미한다. 이 세 층위의 읽기가 나란히 진행되는 여행이 될 것이다.

관광의 내용 못지않게 관광의 형태에 흥미가 끌린다. 창춘에서 충칭까지 43시간의 기차여행부터. 한커우에서 창춘으로 돌아오는 기차는 33시간짜리다. 고급 관광단이라면 현지까지 왕복에 비행기나 고속철을 이용하겠지만 중국 서민들은 일반열차를 2박3일 타고 다니는 데 익숙한 모양이다. 가는 기차간에서 5~6끼 때울 식량을 마련하는 것이 여행 준비의 첫 과제다. 아내는 누룽지를 주식으로 마련했고, 나는 컵라면 몇 개를 끼워 넣었다.

김정은의 베트남 행 '열차 장정(長征)'을 사람들이 신기해했다. '최고지도자의 시간'을 며칠씩 잡아먹고 중국 열차 운행에도 적지 않은 부담을 주며 그렇게 천천히 움직이는 길을 택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중국과의 관계에 뭔가 큰 이유가 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속성 차이를 떠올리는 것은 문명사 공부하는 사람의 직업병일까?

15세기 말에 시작된 '대항해시대' 이래 세계를 좁게 만드는 변화를 추동한 이동 수단은 선박이었다. 지금까지도 장거리 화물 운송에는 선박의 역할이 압도적이다. 장거리 여객 수송에는 20세기 중엽부터 비행기의 역할이 자라나 왔다. 근대세계에서 여객과 화물의 이동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과정에서 육상 수송은 상대적으로 위축된 모습을 보여 왔다. 근대의 육상 교통수단으로 가장 전략적 가치가 큰 것이 철도인데, 철도는 선박과 항공에 비해 제한된 지역 내의 역할에 머물러 있다. 그 역할이 가장 크게 나타난 것이 아메리카 횡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 정도인데, 19세기 말에 맡았던 역할에서 지금까지 별로 자라나지 못하고 있다.

철도의 위축은 해양세력의 득세가 반영된 현상이 아닐까? 또한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시대상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철도의 효과적 발전을 위해서는 철도가 통과하는 여러 나라의 적극적 협력이 필요하다. 먼 곳의 식민지를 경영하며 이웃나라와 경쟁하던 제국주의시대나 먼 곳의 패권국을 추종하며 이웃을 적대하던 냉전시대에는 철도의 이점이 광역으로 펼쳐지는 데 제약이 있었다. 냉전이 해소된 이제 철도의 발전을 위한 조건이 비로소 마련되고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에서 철도의 역할이 클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뒤늦게 냉전을 벗어나는 한반도에서도 철도사업의 발전이 크게 기대된다.

장거리 운송수단으로서 항공과 선박에 대한 철도의 경쟁력은 크게 자라날 것이다. 여객운송에서 비행기에 대한 장점이 먼저 발휘되고, 화물수송에서 해상수송에 대한 경쟁력이 뒤따라 자라날 것이다.

비행기의 장점은 빠르다는 데 있고 열차의 장점은 에너지 소비가 적다는 데 있다. 에너지 문제는 계속 더 심각해진다. 열차의 장점은 커지는 것이다. 한편 이동하는 시간을 활용하는 길은 정보산업의 발달에 따라 계속 더 넓어진다. 비행기의 장점은 작아지는 것이다. 한반도와 중국이 고속철로 이어지는 때가 온다면 나는 연변 다니는 데 비행기 탈 생각이 없다. 베이징에도 기차로 다닐 것이다. 상하이나 홍콩에 갈 일이 있으면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결정할 것이다.

30년 전 한국의 고속철을 놓고 어느 나라 기술을 들여오느냐가 큰 선택의 문제였다. 지금 같으면 중국 기술을 들여오는 데 별 이론이 없었을 것이다. 중국 내 고속철 건설이 다른 모든 나라의 고속철 건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상황이 오래되었다. 중국의 고속철 건설이 맹목적으로 확대되어 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는 비판도 많지만, 나는 적극적 확대 정책을 지지한다. '해양의 시대'에 형성된 경제구조의 수익성에 얽매이지 않고 '대륙의 시대'의 경제구조로 나아갈 시점에 와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0년 전 폴 서루(Paul Theroux, 1941~)의 <중국기행(Riding the Iron Rooster: By Train Through China)>(서계순 옮김, 푸른솔 펴냄. 절판)을 읽으며 많은 감흥을 일으킨 일이 기억난다. 문화대혁명의 여파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중국을 기차로 여행하며 온갖 부조리를 겪지만 그 속에서 '만만디(漫漫的)'의 원리를 음미하는 저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연변 올 때 지금의 여행 계획이 있었다면 그 책을 가져와 다시 읽었을 텐데.

2002년 연길에서 베이징까지 25시간 기차를 타고 갈 때, 그보다 10여 년 전 서루가 경험한 분위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번 43시간 열차여행에도 그 시절 분위기가 많이 남아있을 것을 예상한다. 지금은 고속철로 10여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인데, 이곳 서민 관광객들은 30시간 절약하기 위해 20만 원 더 쓸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연변 촌사람들에게는 기차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도 다 관광의 시간이다. 나도 그 촌사람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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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협

40세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둔 후 20여 년간 독학으로 문명교섭사를 공부해 온 역사학자. 서울대학교 이공계 수석 입학 뒤 사학과로 전과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프레시안 장기 연재를 바탕으로 <해방일기>, <뉴라이트 비판>, <페리스코프>,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등의 책을 썼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와 한국 사회를 조망하는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역사 앞에서>의 저자 김성칠 교수가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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