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망언 부끄럽다" 연설에 홀로 박수치지 않은 황교안

[현장] "여기가 어디라고 낯짝을"...유가족 오열 속 황교안 기념식 참석

"자기 얼굴 보여주려고 이 자리에 나타나는 게 정치인이냐. 정치인이라면 국민 마음을 어루만지고 공감해야 하는 게 기본이다. 여긴 민주주의 성지다. '5.18 망언'을 한 한국당 의원들 솜방망이 징계하고 여기를 어떻게 오나. 국민들 우롱하지 말라"

광주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참석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국화꽃을 든 어린아이부터 상복을 입은 유가족들까지 "황교안은 물러가라"를 외치며 황 대표의 기념식 진입을 막았다.

18일 오전 기념식이 열리는 국립 5.18 민주묘지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황 대표의 참석 소식을 접한 광주시민들은 '열사들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 '망언·왜곡 처벌하라', '황교안은 물러가라' 등의 피켓을 들고 민주묘지 주변을 빼곡히 감싸고 있었다. 황 대표가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한 김순례·김진태·이종명 한국당 의원에 대한 징계를 매듭짓지 않은 채 방문한 만큼 광주 시민들의 항의가 예상됐다.

ⓒ프레시안(박정연)


오전 9시 35분. 황 대표가 탑승한 차량이 국립 5.18 민주묘지 정문인 민주의 문 앞에 도착했다. 황 대표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시민들은 황 대표의 차 주변으로 몰려가 "황교안은 물러가라", "여기가 어디라고 오냐"고 외쳤다.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들과 경호원, 보좌진이 한꺼번에 뒤엉켜 민주묘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상복을 입은 시민들은 황 대표의 입장을 저지하기 위해 기념식으로 가는 길 한 가운데에 누워 스크럼을 짰다.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광주 시민을 모욕하지 말라", "5.18 망언 의원 징계하라"고 외쳤다.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 부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스크럼을 짜는 사람들은 늘어갔다. 민주묘지 정문부터 기념식장까지는 2분 남짓한 거리였지만 저항하는 시민들과 경호원, 보좌진, 취재진 등이 엉키며 25분동안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 인파 속에 뒤엉켜 입장을 시도하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프레시안(박정연)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입장을 저지하는 시민들. ⓒ프레시안(박정연)

결국 황교안 대표는 기념식으로 가는 정식 경로 대신, 샛길로 우회해 기념식장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황 대표를 쫓아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낯짝을 들고 오냐. 부끄럽지 않으냐"고 외쳤다. 경호원들과 경찰에 의해 시민들의 항의는 저지당했고, 황 대표는 "황교안은 물러가라"는 외침 속에 기념식장에 입장했다.

황 대표가 입장하자, 이번엔 미리 입장해 있던 유가족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상복을 입은 5월 어머니회 유족들은 "유가족이 느끼는 감정을 당신이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 당신이 여기가 어디라고 무엇을 했다고 오느냐"며 가슴을 쳤다. 몇몇은 울다 지쳐 실신했고 주변 시민들은 "행사가 끝나고 말씀을 드리자"며 이들을 달랬다.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입장에 분통을 터뜨리는 5월 어머니회 회원 ⓒ프레시안(박정연)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입장에 분통을 터뜨리는 5월 어머니회 회원 ⓒ프레시안(박정연)

황 대표가 자리에 앉기 전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하기 시작한 것. 시민들은 박수를 쳤고, 황 대표는 자리에 앉아 땀을 닦았다.

"5.18 망언 부끄럽다" 연설에 홀로 박수 치지 못한 황교안 대표

기념식은 예정대로 진행됐고, 시민들은 엄숙한 분위기에서 5.18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황 대표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사이에서 기념식을 지켜봤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식에서 "아직도 5.18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망언들이, 거리낌 없이 큰 목소리로 외쳐지고 있는 현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끄럽다"며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객석에서 시민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정당 대표들과 유가족들도 박수를 쳤다. 하지만 황교안 대표는 입을 꾹 다물고 박수를 치지 않았다.

기념식 행사가 끝나고 각 당 대표들은 5.18 민주묘지에 헌화를 하고 향을 피울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또다시 황교안 대표를 에워싸고 "전두환의 후예 자유한국당은 해체하라"며 "사과해"를 연호했다.

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의 헌화가 끝나고 황 대표의 헌화 차례가 됐지만, 시민들은 그를 에워싸고 길을 터주지 않았다. 결국 황 대표는 민주묘지에 분향을 하지 못한 채 돌아갔다.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헌화를 저지하는 시민들 ⓒ프레시안(박정연)

정양석 한국당 수석부대표는 이날 기념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광주시민들의 분노에 대해 "우리들 내부에서 그런 망언이 나오고 한 점이 있고, 여러 사정 때문에 징계 절차가 늦어지는데 광주 시민들이 좀 섭섭하실 거라 생각하지만 모든 부분을 만족시키기가"라며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이나 이런 부분들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전혀 이해 못 하는 것 아니다. 저희도 잘 안 되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다만 정 수석부대표는 이날 기념식의 대통령 연설을 거론하며 "대통령이 너무 편 가르기보다는 아우르는 발언을 했으면 좋았겠다"며 "대통령께서 또 많이 아프게 하신다"고 말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헌화를 마치고 "올해가 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으로 헬기 사격, 발포 명령, 전두환 장군이 당시 광주에 온 시기 등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많이 남아있다"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5.18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하는데 아직도 자유한국당이 위원 명단을 제출하지 않아 구성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당이) 하루빨리 명단을 제출해서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시키고 내년이면 광주민주화운동이 40주년인데 그때까지 진실이 모두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시행된 지난해 9월 '5·18 진상조사위'가 구성돼야 했으나 한국당이 진상조사위원을 제출하지 않아 8개월째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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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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