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위에 따르면, 등급 분류에는 다음과 같은 7가지 기준이 있다. 주제의 기준, 선정성의 기준, 폭력성의 기준, 대사의 기준, 공포의 기준, 약물의 기준, 모방위험의 기준이다. 이에 따라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매체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자를 포함하여 만 18세 미만의 자는 관람할 수 없는 영상물로, 등급분류 기준이 되는 7가지 고려요소가 구체적, 직접적, 노골적으로 표현된 작품을 뜻한다.
청소년 유해 매체 지정은 영상물 외에도 다양한 콘텐츠에 대해 이루어지고 있다. '청소년보호법'에 따르면 청소년 유해 매체란 청소년에게 유해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유통이 부적절한 매체물을 말한다. 이는 ①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청소년에게 유해한 것으로 결정하거나 확인하여 여성가족부장관이 고시한 매체물 또는 ② 다른 법령에 따라 해당 매체물의 윤리성·건전성을 심의할 수 있는 기관이 청소년에게 유해한 것으로 심의하거나 확인하여 여성가족부 장관이 고시한 매체물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매체물 중 영상과 게임이 아닌 다른 매체들은 '사전 등급분류'가 아니라 '사후 심의'를 받게 된다는 점에서 심의 형태의 차이가 있고, 심의기관도 각 매체에 따라 다르다. 청소년 유해 매체 여부를 심의하고 결정하는 기관으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간행물윤리위원회,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있고, 영상물등급위원회도 심의 기관 중 하나이다.
'사회적 모순'을 표현하면 청소년관람불가?
흔히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라고 하면 주로 성적인 것이나 폭력적인 장면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과 폭력의 요소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당연한 조치라는 생각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그렇기만 한 것일까? 청소년관람불가 및 12세나 15세 등 연령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것은 정말 청소년을 위한 것일까? 먼저, 영상물의 등급은 선정성 및 폭력성 기준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7가지 기준 중 일부일 뿐이다. 영등위는 위에서 살펴본 7가지 기준을 모두 고려하고 있다. 그 중 영등위 홈페이지에서 안내하고 있는 '주제의 기준'을 살펴보자.
"사회적 가치나 통념에 반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청소년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치는 것"
"일반적인 청소년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것"
"건전한 국민정서를 왜곡하거나 훼손할 수 있는 내용인 것"
"사회적 모순 등을 과도하게 표현하여 청소년의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
영향을 받는 대상을 '청소년'으로 명시했을 뿐, 마치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던 국가가 입맛에 맞게 출판, 보도 등을 검열하던 모습이 연상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회적 가치나 통념은 누구의 기준을 우선시하고 있는가? 사회적 가치나 통념에 반하는 내용은 어떤 점에서 청소년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치는가?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는 것은 왜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가?
실제로 청소년관람불가는 아니지만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은 영화 중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있다.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공동정범〉이 이에 해당된다. 〈공동정범〉에 대하여 15세 이상 관람가 판정을 내린 영등위에 따르면 "강제 진압, 참사에 대한 책임 문제 등을 주제로 포함하여 이해도 등을 고려할 때 15세 이상의 청소년이 관람할 수 있는 영화"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공동정범〉에 앞서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도 비슷한 이유로 15세 이상 관람가이다.
24시간 편의점을 배경으로 아르바이트 노동자와 각양각색의 손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는 청소년관람불가이다. 이 영화는 영등위로부터 "주제 다소 높음, 선정성 다소 높음, 폭력성 다소 높음, 대사 및 모방위험 높음" 판단을 통해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의 사회 비판적인 요소를 청소년들로부터 차단하려는 의도였던 건 아닌지 의심을 받으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공동정범〉과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는 결과적으로 다른 연령 등급을 받기는 했지만, 7가지 기준 중 "폭력성 다소 높음"이라는 비슷한 판단을 받았다. 하지만 이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 폭력은, 실제적 폭력에 초점이 맞춰지기보다는 강자에 의한 약자에 대한 폭력이나 국가폭력의 장면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등위에서 고려하는 폭력성의 기준이 물리적 폭력과 학대 장면 등 자극적일 수 있는 요소들을 규제할 의도라고 한다면 이 영화들에서 등장하는 '폭력'이 과연 그 규제 대상일지 의문스럽다. 사회적 차별과 폭력을 다룬 장면을 단순히 "폭력이 등장했다"라고 유해물 딱지를 붙이는 것은 적절한가. 이미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회적 폭력에 대해 알고 고민할 기회를 청소년들로부터 빼앗는 효과인 것은 아닐까.
'청소년 보호'는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
이처럼 연령 등급을 심의하고 분류하는 기준과 체계는 얼핏 보면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것처럼 읽히는 말들과 '유해한 내용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신념을 근거로 내세우지만, 결국 특정 가치관과 정치적인 이념에 따라서 매체를 규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 청소년의 입장에서 이 같은 심의 절차는 사전 검열로 작동하고 있다. "다양한 영상물을 소비하는 국민들에게 영화 관람, 선택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나이에 따라 접근조차 할 수 없게 하는 것이 현재 등급 분류의 결과인 것이다.
청소년들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어느 정도의 경험을 갖고 있는지를 누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건전한 국민정서'란 무엇이고 이는 왜 청소년들에게 특히 더 요구되는가? 우리 사회의 현실과 모순을 아는 것은 왜 유해하다고 여겨지는가? 청소년에게 특정한 입장과 가치관을 받아들일 것을 의도하는 건 아닌가? 실제로 동성애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판단한 여러 사례들이 계속 문제가 되기도 했다. 영등위 등에서 실시하는 심의는 사실상 청소년 보호를 위해서라기보다는, 특정한 가치관에 따른 선도와 교육의 차원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청소년 보호'는 결코 가치중립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청소년에게 무엇이 유해한지, 청소년이 무엇을 몰라야 하는지, 청소년에게 무엇을 교육하고 권장할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이는 청소년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 및 인식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것이다.
연령에 따라 접근을 차단하는 제도는 그대로 둔 채, 심의의 기준만 바꾼다면 문제가 해결될까? 보다 객관적인 기준과 합리적인 체계를 갖추고 심의 위원을 다양하게 구성하여 민주성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아니다. 영상물 심의 등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행해지는 각종 문화와 매체에 대한 심의가 과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또는 '격리'하기 위한 것인지 다시 물어야 한다. 이미 지금의 심의는 정치적인 이유에 따라, 특히 보수적 기준에 강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 그리고 심의 자체가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구성원들 각자의 이념과 가치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결국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려면 특정한 이념이나 사회 문제가 청소년에게 유해하고 차단되어야 한다는 편견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미디어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청소년을 교육과 선도의 대상으로 바라보느냐, 문화적 권리 및 다양한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누릴 주체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심의 제도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청소년에게 다양하고 많은 정보를 제공하면서 선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지원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보호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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