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충'이라는 멸시, 그저 웃자고?

[프레시안 books] <타락한 저항>

지난 2017년 말 <프레시안>에 '블랙리스트에서 여성혐오까지'라는 주제로 연재된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의 글이 신간 <타락한 저항>(교유서가 펴냄)으로 나왔다.

책은 2000년대 한국을 뒤흔든 세 가지 사건을 주요 사례로, 우리 안의 반지성주의를 다룬다. 관련 사례는 박근혜 정권 시기 벌어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발로 탄생한 '나꼼수' 현상, 그리고 최근 한국 사회의 가장 주요한 논란으로 꼽히는 여성 혐오 사태다.

저자는 이들 사건을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반지성주의로 정리하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지성적 퇴행이 기존 진보-보수 이분법과 결합해 새로운 전선을 만들고 있음을 지적했다.

저자가 강조하는 반지성주의란 지식이 없는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알기를 거부하는 태도'를 일컫는다. 근래 남성 이용자가 주류인 극우 사이트를 보면 알 수 있듯, 그들은 나름의 지식으로 무장해 혐오 발언을 정당화한다. 그들은 그러나, 그 혐오 대상을 적극적으로 모르기 위해 애쓴다.

우리 사회를 뒤흔든 예멘 난민 사태는 물론, 과거부터 이어진 이른바 '귀족 노조' 프레임,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식의 인식이 모두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지성주의를 보여준다. 이들 상당수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적을 끊임없이 만들고, 그를 적극적으로 모르려 노력한다. 이 만들어진 '적'은 대체로 약자다. 그들은 약자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을 적으로, 새로운 마녀로 쉽게 둔갑시킨다.

이 상황을 불편해하는 사람은 쉽게 '진지충' 'PC충'이라는 식의 용어로 멸시된다. '정치적 올바름'을 건건이 짚는 사람은 '그저 웃자고 한 이야기'에도 쓸데없이 진지한 위선자에 불과하다는 식의 주장이 혐오를 표현의 자유로 정당화하는 폭력적 발화로 이어져 사회에 만연하게 된다. 이 같은 현상은 기실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트럼프를 탄생시킨 미국에서, 난민 사냥 사태로까지 이어진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일이다.

책의 사례를 톺아보며 독자가 끊임없이 나와 세상의 관계는 물론, 우리 사회와 다른 사회의 관계(예컨대 한국을 대상화하며 황당한 이야기를 연일 발산하는 일본 정치계는 한국을 적극적으로 모르려 애쓰는 주체로 볼 수 있다. 그 반대로, 한국 역시 일본을 적극적으로 모르려 하는 건 아닌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는 북한과 남한의 관계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와 타인의 관계(여성 혐오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를 생각해 볼 대목이 많다.

예를 들어, 블랙리스트 사건을 성토한 이들 중 적잖은 이가 촛불을 들었을 것이다. 그들 중 적잖은 이는 적극적인 여성 혐오 발화자로 나섰다. 이 같은 일은 도처에서 일어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여성 혐오적 태도를 '예술'로 이해한 이가 많았다.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반지성주의와 혐오의 결합은 모든 국면에서 얼굴을 바꿔 새로운 전선을 긋고 있다. 기존의 '진보'가 도처에서 보수 세력과 새롭게 결합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성토하는 이가 여성을 향해서는, 동성애자를 향해서는 아무렇지 않게 강자의 모습으로 군림하며 '너희가 우리를 이해해야 한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

저자는 압축적으로 정리한 수많은 사례를 통해 "솔직함을 빌미로 만만한 타인에 대한 조롱과 혐오 발언이 유머로 유통되고 있다면, 이 사회가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자세는 어떠한"지를 독자에게 묻는다. 우리 사회의 윤리 기준에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어야 하며,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지는 전위와 무례, 배려와 위선 사이의 경계선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 <타락한 저항>(이라영 지음) ⓒ교유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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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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