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에 '망국 책임' 고종 국장 재현을?

역사학계, 여론 "3.1 정신 어디로 갔나" 비판 봇물

"고종 황제가 3.1운동이랑 무슨 상관이지? 잘 모르겠는데..."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1일 오전, 서울시 덕수궁 돌담길에 기다랗게 둘러진 흰 천을 바라보던 시민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돌담길 630미터에 높이 2미터 30센티미터에 달하는 '흰 천'의 정체는 서울시가 3.1운동 100주년 기념 사업으로 고종 장례를 재현하기 위해 조성해놓은 것이다. 전시 제목은 '백년 만의 국장'으로, 문화재청과 합작했다.

ⓒ프레시안(서어리)

지난 달 21일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로 서거 100주년을 맞은 고종의 국장을 예술적으로 재현하겠다'는 취지로 행사를 알렸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행사 성격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국장 재현은 100년 전의 열띤 독립 열기와도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고종이 국권 침탈의 원인 제공자라는 역사적 평가도 있는 만큼 3·1운동과 고종을 연결 짓는 건 무리라는 지적이다.

이에 서울시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러한 우려와 반발에 대해 "고종의 국장이 있어서 만세운동이 가능했다"고 반박했다. 서해성 서울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총감독은 "고종의 죽음이 있었고 그때 거대한 장례식이 있었기 때문에 3.1운동을 위한 합법적 공간이 확보됐다"고 말했다. 덕수궁에 추모객들이 많이 모였기에 만세 운동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해명에도 여전히 역사학계와 여론은 비판의 목소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흰 천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김연지(41) 씨는 "3.1운동은 헌법전문에서 제일 처음 언급될 만큼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데, 100주년 행사를 고종 국장 재현으로 한다는 것은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프레시안(서어리)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이사는 "3.1운동은 독립, 자유, 평등, 민주, 평화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외친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선구적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운동"이라며 "국체에 관한 시대정신을 '제국에서 민국으로' 완전히 전환시킨 대한민국 민주공화정의 연원"이라고 설명하며 국장 재현, 흰 천 두르기 등 행사는 3.1정신과 거리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3.1운동을 전후한 모든 독립선언・독립방략에서 극소수 복벽파를 제외하곤 모두 민주공화주의를 표방했다"면서, 아울러 "황실에는 망국의 책임이 있고 또 종친 다수가 일제가 주는 작위를 받는 등 친일의 흑역사가 있다"면서 대대적인 추모 행사에 반대의 뜻을 밝혔다.

이번 전시는 오는 5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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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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