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진 경제' 시대, 문제는 일자리가 아니다

[서리풀 논평] 소득 참사, 진짜 의미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4분기 가계소득 동향은 통계의 정치적 역할을 잘 보여준다. 물론, 그 정치는 경제적 정치 또는 정치적 경제다. 모든 이들이 한 마디씩 거드는 형국이니, 정치도 그런 정치가 없고 경제도 그런 경제가 없다.

먼저, 통계로 전달되었으되 요약·정리·변형·추상화된 현실을 보자(☞관련 기사 : 저소득층 덮친 '소득 대참사').

"작년 4분기(10~12월) 소득 하위 20% 계층(1분위)의 가구당 소득은 월평균 123만8,000원으로 1년 전보다 17.7% 감소했다. 이는 매년 4분기를 기준으로 2003년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1분위 가구의 소득은 지난해 1분기 -8.0%, 2분기 -7.6%, 3분기 -7.0% 이어 4개 분기 연속 큰 폭의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 반면 고소득층은 더 잘살게 됐다. 작년 4분기 소득 최상위 20%(5분위) 가구의 소득은 월평균 932만4300원으로 10.4% 증가했다. 5분위 가구의 근로소득(월평균 688만5600원)도 14.2% 뛰었다. 이들의 월평균 처분가능소득 역시 1년 전보다 8.6% 증가한 726만500원에 달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여러 해석이 난무하지만,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설명은 찾기 어렵다. 기껏해야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탓하면서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을 공격하는 전문가가 태반이다.

'소득주도성장'은 경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정치의 한복판에 있다. 과학으로는 효과를 "아직 잘 알 수 없다"는 정도가 진실처럼 보이지만(☞관련 기사 : "소득주도성장 없었다 vs 효과 나올 것"…경제학회서 격론), 경제적 이해, 그리고 이와 밀접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싸움이 절정이다. 훗날, 역사가는 오늘 이 국면을 '계급투쟁'이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일자리가 줄어 저소득층의 소득이 떨어졌다는 설명은 그나마 논리적이다. 앞서 인용한 기사도 일자리가 소득 감소의 주된 요인이라 분석했다.

"2017년 4분기 각각 1분위 0.81명, 2분위 1.31명이던 가구당 취업자 수는 작년 4분기 각각 0.64명, 1.21명으로 더 낮아졌다. 가구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다.

이에 반해 4분위의 가구당 취업자 수는 같은 기간 1.77명에서 1.79명으로, 5분위는 2.02명에서 2.07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1분위 가구가 주로 차지하는 임시직이 2017년 4분기에 비해 작년 4분기에 17만 명 감소한 반면, 4·5분위 가구원이 주로 구성하는 상용직은 같은 기간 34만2000명 증가한 것도 계층간 일자리 사정의 차이를 말해 준다."

좀 더 합리적 설명이 필요하다. 일자리가 줄었다, 좋은 일자리는 더 적다,. 이런 말이 놀라운가? 처음 듣는가? 적어도, 예상하지 못했던 '참사'는 아니다. 경기가 어떻고 최저임금이 어땠다는 이야기는 제쳐 놓더라도, 일자리가 줄어들고 사라지는 것은 모두가 불가피한 추세라고 하지 않았던가.

무엇을 하면 된다는 소리는 하나도 없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만 하는 쪽은 새삼 거론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자는 바가 한 가지 있기는 있으니, 기-승-전-결의 비논리적 종착점은 늘 '규제완화'라는 신화에 이른다. 이들은 이제 더 강하게 주장하겠지만, 논리가 연결되지 않으니 감흥도 없다. 수십 년 동안 이들이 하자는 대로 따른 결과가, 오늘 이 사태의 한 가지 원인이라는 점만 짚는다.

대조적인 안이나 대책이라고 한들 뾰족한 수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부랴부랴 장관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하면서, 노인 일자리 사업을 확대하고 근로장려금 제도를 보강하자고 한다. 딱하다. 정말 이것이 '대책'이고 ''대안'일까? 경제부처와 장관들은 믿을까?

자꾸 노인 일자리를 이야기하지만, 어떤 연령층이라도 좋은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법을 들은 적이 없다. 인구당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보급률을 자랑(?)하면서, 자동화, 인공지능, 공유경제라며 있는 일자리마저 대책 없이 줄이자는 상황이 아닌가. 노동시간 단축까지 반대하면서 무슨 수로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지, 정녕 모르겠다.

기업 투자 활성화가 대안이라고? 무슨 좋은 방법이 있으면, 규제완화 같은 총론 말고 각론을 제시해주기 바란다. 대세는 '고용 없는 성장', 이 한 마디로 대안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전망하고 판단할 수 있다(☞관련 기사 : 2년 새 2만3000개···대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당기순이익(2133억원)이 2016년보다 2.6배(191.4%)나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직원 수는 오히려 감소했다(-28명). 공장 자동화로 인력 수요가 크지 않은 데다 당장 공장이 잘 돌아간다고 섣불리 채용을 늘렸다간 경영 여건이 악화했을 때 신속히 대응하기 어려워서다.


(…) 중앙일보가 기업분석 전문업체인 한국CXO연구소와 국내 100대 기업(매출액 기준) 재무제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최근 2년간 이들 기업의 매출은 4.9%, 영업이익은 80.8% 늘었으나 고용은 오히려 2.7% 줄었다."


누구는 '참사'라고 표현하는 현실, 그리고 그 정치를 보며, 패러다임이 진정한 문제임을 주장한다. 몇십 년째 지속하는 발전국가 모형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 양적 성장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경제주의 모델이 그대로라는 것을 절감한다.

낡고 전통적이라 문제가 아니라, 바뀐 세상과 맞지 않으니 문제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누구나 아는데, 말만 하니 더 문제다. 바뀐 세상, 가장 중요한 것은 인구 변화, 그중에서도 노인 인구 증가와 고령화, 초고령화다. 이제 곧 '거의 모든 것'을 압박하리라.

이런 눈으로 보면, 소득 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졌다는 통계가 전혀 놀랍지 않다. 우리 사회에 이만큼 노인이 많았던 적이 없고, 노인 인구 비율이 높았던 적이 없다. 가난한 노인도 단군 이래 가장 많다. 1954년 출생자가 55만 명가량, 1959년 출생자가 80만 명가량인데, 노인의 상대빈곤율은 47%가 넘는다.

이제 시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구 피라미드 그림은 지금 만 60세부터 만 50세까지가 가장 두껍다. 10년, 15년 안에 이들은 노인이 되고, 빈곤율이 그대로면 절반 정도가 통계의 소득 1분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현재 대책으로 격차가 줄어들까?

한국 경제는 과거와 다르다. 성장과 일자리도 같지 않다. 이를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제는 정체 정도가 아니라 역진할 가능성이 크다. 줄고 위축될 것이다. 그 모든 '욕망'과 '의지'가 작동해도, 지금까지와 같은 식으로 양적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단언한다!).

소득 격차의 진짜 의미 중 한 가지는 이런 것이다. 특히 미래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고통에 관한 한 현실 경제도 중요하지만, 또 그 때문이라도 국가와 사회 발전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지 않을까? 역진에 대비하는 사회로, 나아가 이에 맞는 삶의 양식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있을까?

경제지표와 통계수치가 역진한다고 곧 삶의 질과 가치가 후퇴하지는 않는다는 데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좋은 정책과 사회적 실천으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고 더 낫게 할 수 있다. 불평등도 줄일 수 있다.

정부에 한 마디. 역진의 시대에는 경제와 일자리 정책보다 사회정책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기초연금을 더 빨리 확대하는 것. 사실, 국정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 그보다 더 급하다.

한 마디로, "경제를 살리는 사회정책을 넘어, 사회정책을 뒷받침하는 경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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