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망월동 참배 검토"…의원 제명엔 확답 유보

시민단체 "위기 넘기려는 미봉책 아니냐" 불신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 사태와 관련, 광주 5월 단체 관계자들이 국회를 찾아 각 당 지도부를 면담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들의 방문을 받고 연신 "죄송하다",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등 5.18 단체들은 13일 오후 한국당 김병준 위원장을 시작으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를 차례로 찾아 입장을 전달했다.

유봉식 광주진보연대 상임대표는 김 위원장 면담 자리에서 "첫째, 북한 침투설에 대해 '해석이 다를 수 있다'고 하는데 북한군 개입설 관련 당의 공식 입장을 밝혀 달라. 둘째, 3명의 국회의원에 대해 징계위가 열린다고 하는데 당 지도부 입장에서 공식 출당조치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유 상임대표는 이어 "셋째, 다른 정당들이 (3명 의원을) 국회 윤리위에 제소한 상황이다. 자체 출당 조치뿐 아니라 이 분들이 국회의원 자격을 유지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수치이니 자격을 박탈할 수 있도록 한국당도 제명 입장으로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달라"고 했다.

유 상임대표는 넷째 요구사항으로 한국판 홀로코스트 방지법(반5.18 방지법) 제정에 대한 한국당의 협조를 촉구하고, 다섯째로 "당 비대위원장께서 사과를 하셨지만 당을 대표한 사과가 이런 방식으로는 아닌 것 같다. 망월동 묘지에 와서 당 지도부가 무릎꿇고 사죄하는 심정으로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5.18 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을 못 하고 있다"며 "당 지도부 공식 입장으로, 조속히 국민에게 적합한 위원을 추천해서 진상조사 활동이 본격화될 수 있도록 해주고, 만약 정쟁 수단으로 계속 시간을 끌거나 정상화되지 못하는 상황이 될 것 같다면 지도부에서 깨끗하게 추천을 포기하고 다른 정당에 위임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병준 "광주 현장비대위, 지도부 망월동 참배 등 검토"

김병준 위원장은 이같은 요구를 전달받고 "우선 이런 자리에 뵙게 돼서 죄송스럽다"며 "광주 희생자 영령과 유가족, 광주시민들에게 깊은 유감과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김 위원장은 "사실 당 지도부가 모르는 상태에서 토론회가 있었는데 저도 개인적으로 깜짝 놀랐다"며 "지만원 선생을 모셔서 공청회를 하는 것이 역사 인식에 맞지도 않고 타당하지 않다는 개인 견해를 밝힌 바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5.18 단체들의 6가지 요구사항에 대해 "그날 토론회에 나온 문제 발언은 저희 당의 입장이 아니다"라며 "그렇지 않아도 제가 광주에 가서 비대위를 열고 지도부 전체가 망월동을 참배하는 것까지 검토를 지시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북한군 침투설 등은, 저희 당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일부 의원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당 전체 입장은 그렇지 않고, 사법적 판단까지 내려져서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고 우리 당은 결론내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다만 "말씀하신 요구들을 100% 수용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의원 제명 등 부분은 틀림없이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최대한 노력해서 절대로 요구를 가볍게 여기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국회 윤리위 차원의 징계 요구, '한국판 홀로코스트 방지법', 5.18 진상조사위원 추천 등 문제에 대해서는 원내 사안인 만큼 나경원 원내대표와 협의하겠다고 그는 답변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당 차원의 자체 징계에 대해서도 "윤리위는 (지도부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위원회"라며 "말씀하신 정도의 조치(출당)가 될지 그보다 약한 조치가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윤리위가 열리고 있고 쉽게 결론을 못 내는 것으로 안다.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다"고만 했다.

그러나 한국당 윤리위는 이날 결론을 내지 못하고, 14일 재차 회의를 열어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윤리위 내 이견으로 인한 진통을 시사한다.

이에 정영일 광주시민단체협의회 대표가 "사과가 위기를 순간적으로 넘기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여론이 분노를 더 부추긴다"며 "정치적 제스처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쓴소리를 하자, 김 위원장은 "그런 의심이 있으시리라 생각하지만, 제 판단으로는 한국당도 변하기 위해,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당이 되려 하고 있다"며 "얼마나 흡족하실지는 모르지만, 제가 드리는 말씀을 포함해 이번에 당이 내리는 조치는 절대로 미봉책이 아니라고 말씀드린다. 이번 일이 한국당이 생각을 바꾸고 쇄신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고, 넓은 마음으로 한번 더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거듭 이해를 당부했다.

광주의 분노 "의원직 유지시키면 한국당 해체 운동"

국회 앞 상경 투쟁을 벌이고 있는 5월단체 회원들은 이날 한국당 등 5개 정당 지도부와 면담을 마치고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과 정문 앞 항의 집회를 잇달아 열었다. 오후에는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한국당 중앙당 당사를 항의방문했다.

호남을 지역 기반으로 하는 민주평화당은 이들을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 초청해 육성 발언을 듣고, 국회 기자회견과 항의 집회에도 동참하는 등 적극 지원에 나서고 있다. 5.18 단체 관계자들은 이날 오전 평화당 최고위원회에서 한 발언에서 논란 당사자인 의원들의 국회 제명과 극우논객 지만원 씨에 대한 구속 수사 등을 주장했다.

김후식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회장은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제1야당인 한국당이 주최해 피의자를 발표자랍시고 행사를 했다"며 "엉뚱하게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이런 일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세 사람을 국회에서 몰아내야 한다. 만약 국회의원 배지를 그대로 달고 있다면 우리는 한국당 해체 운동을 벌여나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회장은 "이종명 의원은 '유공자 명단을 알기 위해 (공청회를) 했다'고 하는데, 이미 공개돼 있다"며 "5.18 기념 문화재단에 가면 4000여 명의 명단이 있고 사진도 있다. 처음부터 다 공개된 것이다. 다른 유공자들은 공개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미 생년월일까지 다 공개돼 있다"고 반박했다. 김 회장은 "독일에는 나치 처벌법이 있는데, 우리 국회는 몇 번이나 법을 제정하려 했지만 한 번도 된 적이 없다. 차시에 꼭 그 법을 만들어 그런 일을 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국민 마음이 하나로 모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정춘식 5.18 민주유공자유족회장도 "한국당 의원 3명이 제명될 때까지 계속 투쟁하겠다"며 "지만원은 저희 유족들 가슴에 몇 번이나 못을 박았다. 어머니들은 한없이 울었다"며 "그런 사람들 국회에 놔두는 것을 우리 유족들은 볼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양희승 5.18 구속부상자회 회장은 "허위 사실을 날조하는 지만원을 왜 구속수사하지 않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하고 있느냐"며 "지만원이 5.18 진상조사위원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는데, 말이 되는 일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현애 5월어머니집 이사장은 "5월 어머니회 회원들은 80년 당시 자식이나 남편을 잃은 여성 가족들과 가족이 부상을 당한 이들, 또 본인이 직접 항쟁에 참가했거나 구속된 가족들 뒷바라지한 이들"이라며 "정치는 건 국민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눈물의 가족들에게 또다른 망언을 지껄이는 것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고 분노를 드러냈다. 정 이사장은 "북한 개입설은 한 지역을 정신적으로 말살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주장)할 수 없다"며 "다시는 이런 폄훼가 일어나지 않도록 칼을 들이대서, 고통을 겪은 가족들이 더 고생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3일 오후 국회에서 '5.18 망언' 논란과 관련해 정영일 광주시민단체협의회 대표로부터 항의서한을 전달받고 있다. 김후식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회장(사진 맨 오른쪽), 정춘식 5.18 민주유공자유족회장(왼쪽 아래 모자 쓴 이) 등 5월 단체 관계자들은 이날 국회에서 한국당을 포함한 여야 5당 관계자들을 만나 엄정 대응과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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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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