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에서 드러난 비자금 및 차명의 부동산 규모는 20억원 안팎의 거액으로 알려져, 앞으로 대구지역에 한차례 파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가에서는 이번 문희갑 파동이 그동안 'TK(대구경북) 정치세력화'를 추진해온 이 지역 출신 정치집단에게도 적잖은 타격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며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검찰, 문희갑 비자금 문건 및 테이프 확보에 성공**
대구지검 특수부는 26일 문시장의 비자금 문건 관리자인 그의 측근 이모씨(65)와 문건을 보관해온 한나라당 전 대구시지부 간부 김모(53)씨의 포항 사무실과 자택 등 5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결과, 이날 밤 문제의 비자금 문건과 김씨가 문시장 및 이씨와 나눈 대화녹음 테이프와 녹취록 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검찰이 문건 등을 찾아낸 곳은 김모씨의 포항 사무실로, 검찰은 여기서 지난달말 김씨와 문희갑 시장이 대구시청에서 비자금 문건과 관련해 나눈 대화를 기록한 14분 분량의 녹취록과 이씨가 비자금 문건을 김씨에게 전해주면서 나눈 대화를 녹음한 2시간 분량의 녹음테이프를 확보했다.
검찰이 확보한 비자금 문건에는 문시장이 투신사에 가.차명 계좌를 개설해 수십억원대의 비자금을 관리해오다 지난 2000년과 2001년에 걸쳐 인출한 내역을 예금주명, 인출일자, 비밀번호 등과 함께 기록하고, 인출시 수표의 금액과 매수 역시 상세히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은 이밖에 부동산 관련서류 등 비자금 조성과 연관된 서류 일체와 컴퓨터 디스켓 등도 압수, 정밀분석작업을 벌이고 있다.
검찰은 문제의 문건과 테이프 등을 확보함에 따라 문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법 여부, 가차명 계좌를 통한 비자금 관리의 금융실명제 위반 여부, 부동산 실권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 여부를 중점조사중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현재 소환을 거부하고 있는 이모씨에 대해 지난 23일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한편, 문시장도 금명간 소환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문시장의 사법 처리 여부가 주목되고 있으며, 지난 20일 문시장은 오는 6월 대구시장 선거 불참을 발표해 문시장이 이미 신변정리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기도 했다.
***비자금 문건, 사전에 이회창총재에게 전달**
문시장의 비자금 의혹은 그와 경북고 동기(37회)인 이모씨가 지난 2월부터 주변사람들에게 불만을 제기하면서 퍼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모씨는 지난 90년 4월3일 대구 서구갑 보궐선거 당시부터 문시장의 비자금을 관리해온 인물로, 보궐선거후에도 관리해온 잔여금액은 2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시장은 또 이와 별도로 제주도에 차명으로 4천여평에 달하는 두 건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대구시 남구 대명동 소재의 주택을 차명으로 소유하다가 이를 B모건설에게 매각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비자금 의혹은 문시장의 측근인 이모씨가 최근 피부경화증 등으로 고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갑 보선과 시장당선이후 문시장이 자신을 제대로 돌봐주지 않는 데 대해 불만을 느끼고 있던 와중에, 최근 문시장이 이씨가 관리하고 있던 나머지 돈을 모두 가져 오라고 하면서 폭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씨는 이에 평소 친분이 두텁던 한나라당 대구시지부 전 고위간부인 김모씨를 지난 2월 찾아가 억울함을 토로하며, 자신이 보관하던 비자금 관련 문건 등 자료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게 전달해 문희갑이 시장 선거에 못나오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김모씨는 이 자료를 지난달 26일 이회창 총재에게 전달했으며, 이씨의 주장과 증언을 담은 2시간짜리 녹음테이프를 만들었다.
그후 2월말부터 한나라당 주위에서 문희갑 비자금 문건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지난 18일부터 대구지역 언론에 이 사실이 보도되기 시작했고, 이에 대구참여연대, 달구벌직장협의회 등 대구지역 시민단체들은 지난 19일 성명을 통해 문시장의 공식 해명과 한나라당의 자료 공개, 검찰의 수사착수를 촉구했다.
이같은 여론에 따라 대구지검은 지난주 수사에 착수했으며, 한나라당에 대해 비자금 문건을 25일 오전까지 검찰에 제출해줄 것을 요구했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25일 '당내 문제'라는 이유를 들어 제출을 거부했다.
이에 한때 수사가 주춤거리는듯 했으나 법원으로부터 압수영장을 받은 검찰이 26일 자택 및 사무실 수사에 들어가 26일 밤 비자금 문건을 확보하는 개가를 올리게 된 것이다.
***90년 4.3보선 당시 민자당 수백억원 살포**
문희갑 시장은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지난 20일 기자회견을 통해 한나라당 대구시장후보 당내 경선 불참을 선언했다. 대구시장 3선을 노리던 문시장으로서는 뼈저린 좌절이었다. 정가에서는 문시장의 이같은 불참 선언이 검찰 수사를 중단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단행된 것으로 해석했다.
문시장은 그러나 기자회견에서 도리어 불씨를 키우는 발언을 했다.
그는 비자금과 관련, "문제의 비자금은 90년 대구서갑 보궐선거를 치를 당시 중앙당으로 내려온 지원금일 것"이라며 "과거 여러 차례 선거를 치르면서 선거자금 업무는 이씨에게 모두 맡겼기 때문에 자금사용 내역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직후인 21일 대구의 유력지인 매일신문은 90년 4.3선거 당시의 돈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비자금 파문에 휩싸인 문희갑 대구시장이 20일 기자회견에서 "문제의 비자금은 90년 대구서갑 보선을 치를 당시 중앙당으로부터 내려온 지원금일뿐"이라 언급했다. 그렇다면 당시 서갑 보선이 어떠했길래 그 정도의 돈이 남았을까.
4.3 서갑 보선은 우리 헌정사에서 보궐선거로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온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빅이벤트'였다.
5공 청산의 기류속에 정호용 전의원이 국회의원직을 내놓아 치른 서갑 보선은 당시 노태우정권이 추진한 5공청산의 정당성을 심판받는 장으로 전국적 관심을 끌었다. 그래서 민정.민주.공화 3당이 합친 민자당은 당운을 걸고 이 선거에 매달렸다.
이때 민자당 후보가 문희갑 전 청와대 경제수석. 거의 떠밀리다시피 후보로 나온 그는 의원직을 사퇴한 정 전의원이 다시 무소속으로 출마를 강행하면서 힘겨운 싸움에 직면했다. 민자당은 그런 문후보에게 국회의원 수십명을 붙여 37개 동별로 '동책'을 맡도록 했다.
따라서 상상을 초월하는 천문학적 거금이 퍼부어졌다. 당시 민자당은 정권의 명운을 걸다시피 했으므로, 수백억원의 선거자금을 뿌렸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투표일을 열흘쯤 앞둔 90년 3월24일 정 전의원이 여권의 집요한 압력과 설득에 굴복, 후보를 전격사퇴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여권은 10일간 퍼부을 선거자금을 상당한 규모로 남겼을 것이라는 후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문희갑의 발언은 90년 4.3선거 당시 여권이 얼마나 '더티(dirty)한 돈선거'를 자행했는가를 스스로 폭로한 셈이 된 것이다.
***한나라당 내분이 문희갑 스캔들의 빌미 제공**
비자금 문건 확보로 문희갑 시장의 사법처리 여부는 이제 초읽기에 들어간 분위기다.
문제는 그러나 이번 사건이 문희갑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한나라당의 근거지중 하나가 대구경북 이른바 TK지역이다.
TK세력들은 그동안 이회창 총재의 독주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며 'TK 독자 정치세력화'를 주장해왔다. 문희갑 시장도 그런 세력중 하나였다.
한 예로 지난 1월9일 TK출신 유력인사 3백50여명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2002년 재경 대구.경북인 신년교례회'를 가졌다.
노태우 전대통령, 신현확 전 국무총리, 박준규.채문식 전 국회의장, 이의근 경북지사, 박근혜.강재섭 한나라당 부총재 등이 참석한 이 모임에 문희갑 대구시장도 얼굴을 비쳤다.
이어 경북고 출신인사 3백여명은 이날 서울 강남에서 신년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인사말을 통해 "산업화에 기여한 TK가 올해는 분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골적인 TK정치세력화 주장이었다.
실제로 그후 TK는 박근혜 부총재의 한나라당 탈당에 이은 신당 창당 준비 및 한나라당내에서의 TK지분 확보론 등을 펼치며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본격추진했다.
문시장도 이런 세력의 하나였음을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회창 총재는 그동안 이같은 TK의 움직임을 경계했고, 이번에 비자금 문건이 이총재에게 전달된 것도 이처럼 한나라당 내분이 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게 지배적 분석이다.
요컨대 집안싸움에 여념이 없다가 TK지역에서 한나라당의 도덕성과 영향력에 치명적 타격을 입게된 문희갑 파동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동안 한나라당이 자신의 안방처럼 여겨온 대구경북지역에서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와 민주당 노무현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10%포인트로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정가에서는 이번 문희갑 파동이 이같은 지지율 격차를 한층 좁히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그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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