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일본 군수기업 후지코시에 강제 동원됐던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2심 판단이 또 나왔다. 지난 2016년 12월 13일 항소 접수 이후 778일 만이자, 이 회사에 대한 다른 근로정신대 소송 2심에서 같은 취지의 판결이 나온 지 불과 7일 만에 나온 결론이다. 최근 일본 정부가 '전범 기업'을 적극 변호하며 한국 법원의 판결들에 반발하는 가운데, 법원이 '한일청구권과 개별 청구는 별개'로 본다는 데 근거한 판단을 연이어 내리고 있다.
서울고법 민사7부(부장판사 이원범)는 30일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옥순 씨 등 5명이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유지했다. 원심인 1심은 후지코시가 김씨 등에게 각각 위자료 1억 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소송을 제기한 근로정신대 피해자는 김옥순(90)·최태영(90)·오경애(89)·이석우(89)·박순덕(87) 할머니다.
재판부는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기존의 법원 판단을 받아들이면서 "청구권 협정에 이르는 과정에서 한국 측 대표자들의 발언이나, 청구권협정 이후 관계 장·차관 연설이나 발언, 1965년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조약 및 협정해설'에서의 내용도 이 같은 결론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이 사건 소 제기 시까지 김씨 등은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었다. 2012년 5월24일 대법원 판결로 장애 사유가 소멸했다고 보더라도 그로부터 상당 기간으로 볼 수 있는 3년 이내에 이 사건 소가 제기됐으므로 적법하다"면서 항소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김 씨 등은 실상을 알지 못한채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회유를 받고 근로정신대에 자원하거나 강제로 차동원되어 1944∼1945년 일본에 가 후지코시 공장에서 매일 10∼12시간씩 군함과 전투기 부품을 만들었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했던 것은 물론 당시 급여 또한 지급받지 못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후 김 씨 등은 태평양 전쟁 종결을 전후로 귀국했다. 이들은 2015년 4월7일 한국 법원에 후지코시를 상대로 일제 근로정신대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 1심은 2016년 11월23일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김 씨 등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후지코시가 김 씨 등에게 위자료 1억 원씩을 지급해야 한다고 봤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당시 12∼15세 소녀들이었는데 피해자들의 당시 연령과 강제노동에 종사한 시간, 열악한 근로 환경,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던 점, 피해자들이 귀국한 뒤 겪은 사회적·경제적 어려움 등을 모두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번 2심 재판부도 "원고들은 나이 어린 여성들임에도 가족과 헤어져 자유를 박탈당한 채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하고 혹독한 노동에 강제로 종사해야 했다"며 "여러 사정을 고려하면 1심 법원이 인정한 위자료가 과다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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