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사태 발발후 국내 모든 신문매체를 통틀어 매경만 유일하게 흑자 기조를 유지하는 동시에, 신문부수가 눈부시게 확장되는 사세 팽창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언론계의 ‘IMF스타’ 매일경제**
‘경제의 생활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매경이 지난 몇 년 사이에 얼마나 욱일승천했는가는 매출액이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표 참조>
IMF사태가 터진 해인 97년에 9백58억5천만원이던 매경의 매출액은 외환ㆍ금융위기 확산으로 기업들이 무더기 도산하고 실업자들이 속출한 결과 98년에 일시적으로 8백58억5천만원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99년 들어서는 급증세로 반전돼 이 해에 매경의 매출액은 1천2백83억원을 넘어섰고, 2000년에는 무려 1천7백41억원을 기록했다. 2000년도 매경의 매출액은 3천억원대 매출액을 기록한 조선, 중앙, 동아일보와 2천억원 정도의 매출액을 기록한 한국일보에 이어 모든 신문매체를 통털어 랭킹 5위에 달하는 경이로운 액수였다. 당시 조ㆍ중ㆍ동 등 ‘빅3’와 한국일보를 제외한 여타 종합지 가운데 매출액이 1천억원을 넘는 신문사가 없었을 정도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기간중 매경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흑자를 냈다는 사실이다.
97년 14억7천만원이던 매경의 흑자는 98년 매경의 매출액이 줄어들고 한국경제, 서울경제 등 경쟁지들이 큰 폭의 적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13억8천만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어 99년에는 50억원, 2000년 들어서는 33억4천만원의 흑자를 냈다.
매경의 이같이 경이로운 신장세는 언론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모아 매경은 상당기간 언론계와 학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매경의 경쟁지인 한경, 서경 등이 매경의 성장 배경을 다각도로 벤치마킹했음은 물론, 심지어는 종합지중 랭킹 1위인 조선일보까지 매경을 벤치마킹했을 정도였다. 언론학계에서는 매경의 성장과정을 분석한 논문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언론계 경영진들 사이에는 ‘매경 따라하기’가 유행하기도 했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매경이 이런 식으로 계속 성장하다가는 얼마 안가 빅3 가운데 동아일보까지 제치고 랭킹 3위 자리를 차지하며, 미국처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양대 종합지와 월스트리트저널이라는 경제지가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뉴 빅3’ 시대가 열리는 게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였다.
가히 ‘매경 신화(神話)’라 불릴 정도로 놀라운 성장세였다.
***밑둥부터 흔들리는 ‘매경 신화’**
그러나 윤태식 게이트로 ‘매경 신화’가 밑둥채 흔들리고 있다.
매경은 윤태식 패스21 주식을 보유한 언론인 25명 가운데 자사 기사가 5명을 차지, 숫자 면에서 ‘랭킹 1위’를 차지했다.
구속자 숫자에서도 15일 현재 전체 구속 언론인 4명 가운데 2명을 차지해 역시 랭킹 1위를 차지했다.
양이나 질, 모든 면에서 결코 자랑스러울 수 없는 1위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이들 매경기자가 윤태식으로부터 받은 뇌물액수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8일 구속된 매경 중소기업부의 이계진 기자는 2000년 1월과 2001년 1월 두차례에 걸쳐 1억9천만원에 상당하는 패스21 주식 1천4백주를 받은 것으로 검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지난 12일 구속된 매경 중소기업부의 민호기 부장은 1억6천만원 상당의 패스21 주식 1천3백주와 별도로 9백만원의 현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촌지’ 차원으로 넘길 수 없는 거액이다.
자사 기자들의 패스21 주식 보유 사실이 드러나자 장대환 매경사장은 격노하며 사표 수리 등 엄중문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 사장은 특히 경쟁지인 한국경제신문에서는 단 한명도 패스21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반면, 매경은 주식보유자 숫자에서 언론계 랭킹 1위를 차지한 대목에 대해 크게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윗선이 이처럼 격노한 결과 구속된 두명을 포함한 데스크급 한 명이 이미 사표를 냈고, 나머지 두 명도 상당한 사내 중징계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 마디로 현재 매경 분위기는 ‘살풍경’하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조심스런 전언이다.
매경은 극도의 입조심 속에 이번 스캔들의 파장이 향후 사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매경이 바짝 긴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경제지는 특성상 개인 주식투자가와 기업을 양대 독자층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경제지의 기사는 최대한 정확해야 하며, 투자가들이나 기업의 이해관계와 상충돼서는 안된다.
이같은 큰 원칙에서 볼 때 매경 기자들이 윤태식으로부터 수억원대 뇌물들을 받고 왜곡된 ‘조찡 기사(아부성 기사)’를 썼다는 사실은 주식투자가들의 이해관계라는 측면에서 볼 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차대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신문기사의 ‘신뢰’에 치명적 손상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자칫 이번 사태에 잘못 대응하다간 독자의 격감으로, IMF사태후 어렵게 쌓아올린 위업이 하루아침에 모래성 신세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매경 급성장의 다섯가지 비밀**
언론계는 그러나 매경 경영진이 이번 사건을 아랫사람의 윤리적 문제로만 돌리려 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사태의 원초적 원인 제공자는 다름 아닌 경영진일 수도 있다는 인식에서이다. IMF사태 이후 장사장 등이 일관되게 기자들에게 주입해 온 이른바 ‘사업 마인드’가 이번 사태의 화근이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인 것이다.
지난 2000년 주목할만한 매경 관련 연구논문이 한 편 나왔었다.
경향신문 기자였던 이은형 한국개발연구원(KDI) 현 홍보실장이 쓴 ‘매일경제 사례 연구를 통한 언론산업에서의 리더십 연구’라는 석사논문이 그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논문은 매경의 경이로운 급신장 원인을 분석하려는 의도에서 작성된 것이지, 결코 비판적 목적에서 쓰여진 글은 아니다.
“지난해 외환위기로 인한 어려움이 극심했던 상황에서 조선일보, 매일경제신문 등 극소수의 신문사만이 수익을 낼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매일경제는 흑자기조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신문부수 확장과 함께 사세가 성장한 유일한 신문이었다. 어떻게 매일경제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더욱 빠른 성장세를 보일 수 있었을까.”
연구자는 이같은 큰 화두 아래 매경의 성장원인을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 번째, 정진기 창업주가 강조했던 ‘위기를 준비하는 의식’
두 번째, 부채 없는 경영
세 번째, 매경이 전 사원에게 고취시키는 ‘사업 마인드’
네 번째, 기업친화적 태도
다섯 번째, 기자교육의 중요성 및 기자 공채 원칙
이 가운데에서 특히 기사 작성과의 유관성 측면에서 주목해야 하는 대목은 첫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항목이었다.
***'사업 마인드'와 '기업친화적 태도'가 매경의 보도정신?**
“첫 번째, 정진기 창업주가 강조했던 ‘위기를 준비하는 의식’ 즉 ‘매경정신’이 매일경제 경영진 및 임직원들에게 공통적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신문사에 비해 자금사정이 취약했던 매일경제는 항상 자금난에 부딪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고, 따라서 임직원들은 편집국, 영업국 등 소속에 상관없이 회사의 자금사정이나 수익구조에 관심을 갖도록 훈련되었다.”
“세 번째, 매일경제가 전 사원에게 고취시키는 ‘사업마인드’이다. 편집국 기자들은 사업 마인드를 가지고 취재처 또는 독자들이 하고자 하는 각종 사업이나 캠페인을 적극 도와주면서 간접적으로 매경의 판촉활동을 활성화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실제로 매일경제신문을 보면 매일 1~2건의 사고(社告)가 실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기자들에게는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등 사업을 많이 유치하도록 장려하였다.”
“네 번째, 기업친화적 태도이다. 정진기 창업주, 장대환 사장은 기업친화적 신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으며, ‘구속되는 재벌 총수’ ‘재판정에 서는 기업 경영인’들의 사진을 싣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지켜오고 있다.”
매경은 이같은 정신에 ‘브랜드가치 높이기 전략’ ‘뉴미디어 전략’ ‘지식극대화 전략’을 접목시킴으로써 매경 성장신화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이 논문은 분석하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매경 성장에 가장 기여를 많이 한 전략이 브랜드 가치 전략이다.
브랜드를 많이 알리고 친숙함, 국가경제를 걱정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경제신문으로서의 이미지 구축 등을 가능하게 한 계기는 바로 1년에 3백건이 넘는 각종 이벤트사업, 캠페인이었다. 가장 성공적인 캠페인은 ‘비전 코리아 캠페인’이었는데, 외환위기로 낙망하고 실의에 빠져있던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으며 당시 신정부의 호응을 바탕으로 이미지 제고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3백건이 넘는 각종 사업 및 행사를 통해 매경을 새롭게 접하는 사람이 수만명에 이르며 이들은 잠재적 독자 또는 잠재적 기자들이라고 매경은 보고 있다.
실제로 매경 기자들이 실시한 IMF 극복을 위한 전국 순회강연에는 1백38회에 총 10만명이 참석했으며, 이 기간동안 하루 3백여통의 신규구독신청 전화가 왔다고 매경측은 설명했다.”
***'곰바우' 정신이 부족했다**
연구자는 그러나 매경의 성장전략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결론부에서 이런 전략이 자칫 신문으로서의 매경의 위상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고 있다.
“사업 마인드를 강조함으로써 기자들의 시간과 노력을 취재 및 기사작성 등 본업이 아닌 곁가지에 기울이도록 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이에 대한 개선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매경이 그동안 강조해온 경영 건전성, 사업 마인드 등으로 자칫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언론사만의 고유 소명이 훼손되지는 않는지를 살펴보고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보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윤태식 게이트에의 매경 연루를 예고하는 듯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이같은 우려는 이 연구논문에서만 제기된 게 아니었다.
한 예로 매경을 심도깊게 벤치마킹했던 조선일보가 도달한 최종결론 역시 “도입 불가(不可)”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기자들에게 사업 마인드를 과도하게 도입할 경우 예견되는 부작용을 우려했던 것이다.
언론단체의 한 관계자는 “매경 사건은 결국 터질 게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진이 기자들에게 ‘기자정신’ 대신에 ‘비즈니스정신’을 과도하게 주입하면서 본인도 모르게 기자들의 윤리의식이 흐려지는 부작용을 낳고, 그 결과 윤태식 게이트에 기자들이 대거 연루되는 불상사를 낳은 것”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이번에 윤태식 게이트 연루자가 없어 차별성을 보인 한국경제신문의 한 논설위원은 “우리 신문사 기자들이 좀 ‘곰바우’래서 그렇지, 뭐 특별히 잘 나서 그런 건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리 수익성을 중시하는 경제지라 할지라도 언론에는 빼어난 비즈니스 감각 못지않게 우직한 ‘곰바우 정신’이 중요하다는 지적일 것이다.
***아직 매경은 이번 사태의 원인 분석을 못하고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매경은 근원 분석의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인상이다.
“검찰은 7일 오후 정통부 노모 국장과 언론사 전 기자 이모씨가 패스21 주식을 무상 또는 액면가로 제공받은 사실을 확인, 구속영장을 청구했다.”(1월8일 매일경제)
“검찰은 홍보성 기사 게재 대가로 윤씨로부터 주식 1천3백주(1억6천만원 상당)와 현금 9백만원을 받은 모 경제지 전 부장 민호기씨를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했다.”(1월12일 매일경제)
이것이 이번 윤태식 게이트 관련 매경기자들에 대한 매경의 보도 전문이다.
다른 언론들이 모두 ‘매경’ ‘이계진 기자’ ‘민호기 부장’ 등으로 실명을 박아 보도하고 있음에도 유독 매경만은 ‘모 경제지’ 또는 ‘전(前) 기자’ ‘전(前) 부장’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IMF사태후 매경은 ‘주먹구구식 경영’이 지배하던 한국언론사에 최초로 서구식 ‘과학적 경영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새로운 장을 개척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 기자정신과 비즈니스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데 실패, 이번 윤태식 게이트에서 그 한계를 드러냈다.
누구든 한번 실수는 있을 수 있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필요한 것이 ‘공개 반성’이고 ‘대(對)독자 사과’이다. 매경의 이번 수난이 새로운 신화 창출을 위한 자성과 거듭남의 장(場)이 되기를 언론계와 매경 독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이제 매경 경영진이 결론을 내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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