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 간첩 만들었는데 '국가에 봉사했다'며 감형?

법원, '유우성 사건' 기획한 국정원 직원에 징역 1년6개월...유우성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

"오랜 기간 국정원에 근무하며 국가안보를 위해 봉사했으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당시 증거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장이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초 검찰은 4년을 구형했다. 검찰 구형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양형에 대해 재판부가 밝힌 사유는 위와 같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강성수 부장판사)는 18일 공문서변조 등 혐의로 기소된 전 대공수사국장 이태희 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최현도 전 대공수사국 부국장에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씨는 2013년 간첩 혐의로 기소된 유우성 씨의 항소심 재판에서 유 씨의 중국-북한 출입경 기록에 대한 영사 사실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해 증거로 제출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이듬해 증거조작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자 수사팀이 요청한 증거를 일부러 누락하거나 변조된 서류를 제출해 수사를 방해한 혐의도 있다.

이 씨와 최 씨는 지난 2017년 국정원 내부 고발자가 공개한 '유우성 사건 사법 방해 사건' 서신에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 [단독] 국정원, 간첩 조작 수사 방해 "철저히 조사할 것") 내부 고발자에 따르면 이 씨와 최 씨는 직속 간부(국장 1급, 단장 2급으로서 수사 방해를 기획, 주도했다. 이 내부 고발자는 이들에 대해 당시 이렇게 술회했다.

"2급 최○○ 단장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검찰에서 압수수색 들어온다 하니까 행정팀으로 허둥지둥 내려가서 자신이 예산 결재한 서류는 몽땅 없애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가 비웃음을 사신 분이지요. 애처롭습니다. 조직 생활 30년 가까이 하신 분들이면 아쉬울 것이 뭐가 있습니까?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지만 설령 일어났더라도 의연하게 차분히 바라보면서 직원들을 다독여야 할 간부 분들이 오히려…."

"1급 이○○ 국장도 자신이 그렇게 해놓고 지금에 와서 모른 척하면서 입을 닦고 있는 것도 부끄러운 처신이라 봅니다."

재판부는 이들에 대해 "엄격한 준법의식으로 증거수집 의무를 수행할 책무가 있고, 상급자로서 부하직원에 적법하게 하도록 지휘·감독할 의무가 있었다"면서 "공문서에 대한 공공의 신념이 훼손되고, 국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돼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지적하며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증거은닉 혐의에 대해서는 "당시 이 전 국장 등이 국정원 직원에게 중국 내 협조자의 2차 조사를 지시하며 1차 조사와 다르게 왜곡하거나 은폐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근거를 찾지 못했다"면서 "중국 내 협조자의 진술서도 국정원 직원들이 일부 표현이 이상한 부분을 수정한 것 외에는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오랜 기간 국정원에 근무하며 국가안보를 위해 봉사했으며 아무런 형사 처벌 전력이 없다"라며 "또한 대공수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국정원의 관행을 만연히 따르다가 이 사건을 저지른 것뿐 (대공수사국 과장) 김보현과 (국정원 협조자) 김원하가 주도한 증거조작에 조직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최현도는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유가강(유우성) 가족에게 사죄할 뜻을 표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유우성 "조작 지휘했던 이들에게 국정원에서 '봉사'라니..."


피해자인 유우성 씨는 이날 판결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유 씨는 <프레시안>에 "재판부가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며 비판했다. 유 씨는 "국정원의 조작 사건으로 엄청난 인력과 세금을 낭비했는데도 이처럼 가벼운 형을 준 데 대해 무척 실망스럽다"고 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이들이 우리 가족에게 '사과'를 했다는 점을 참작했는데, 저희는 정식으로 사과를 받은 적도 없다"며 "최현도가 최후 변론에서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본 국정원 직원들과 모든 분들에게 사과한다'는 것을 두고 그렇게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특히 재판부가 이 씨 등에 대해 국정원에서 오랜 기간 기여한 점을 참작해 양형을 정한 데 대해 분노했다. 그는 "이태희와 최현도는 제 사건 조작 전체를 지휘 했던 이들"이라며 "그럼에도 재판부가 이들에게 '국정원에서 봉사했다'고 밝힌 점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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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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