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의 '윗선'이란 혐의를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다음 주 검찰 포토라인에 선다. 피의자 신분이다. 사법권력의 정점에 섰던 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11일 오전 9시30분 양 전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한다고 4일 밝혔다. 전직 대법원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일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검찰은 조사를 통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원의 재판에 개입하고, 특정 성향의 판사들에 부당한 인사 불이익을 줬음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양 전 대법원장이 이 같은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들을 지시 또는 묵인하거나 최종 보고받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법원행정처 문건들을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보고받았다는 진술을 작성자 등 당시 심의관들로부터 확보한 상황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을 직접 진두지휘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을 청와대의 뜻대로 지연시키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데 앞장 선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5년 5월부터 2016년 10월 사이 피고 측 대리인인 김앤장법률사무소 소속 한모 변호사와 세 차례 독대하고, 사건 진행 과정을 논의했다.
최근 드러나고 있는 '법관 블랙리스트' 사건도 양 전 대법원장이 최종 결정권자였다. 검찰이 확보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에는 판사에게 어떤 불이익을 줄지에 대한 V자 표시와 함께 양 전 대법원장의 결재 서명이 들어있다.
박근혜 정권의 정당성을 흔들 수 있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에 대한 관리도 양 전 대법원장 주도로 이뤄졌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실제 원 전 원장의 1심 판결을 비판한 판사들에게는 인사상 불이익이 주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행정처 문건에는 원 전 원장 1심 판결에 대해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 한다는 고사성어로 진실을 가리는 거짓이라는 뜻)'라고 비판한 김동진 부장판사에 대해 '조울증'이라는 허위 진단이 적혔다.
지난해 6월부터 조사에 착수한 검찰은 조만간 양 전 대법원장을 포함한 사법농단 연루자들의 신병 처리 방향을 결정할 계획이다. 특히 문무일 검찰총장이 "새해에는 민생수사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힌 만큼, 설 이전에 주요 적폐수사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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