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버려진, 남겨진>(구정은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에 대해 저자는 '쓰레기 책'이라고 말한다. 문화일보와 경향신문에서 국제부 기자로 오랫동안 일해온 저자는 그간 써온 국제 뉴스들을 기반으로 '버려지고 잊혀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책을 썼고, 출판사 편집자와 둘이 이 책을 '쓰레기 책'이라고 불렀다고 에필로그에서 밝혔다.
나는 이 책이 21세기 지구별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생각한다. 십수년 넘게 국제 뉴스를 취재해온 기자인 저자가 스스로 밝힌 '마이너한 감성'으로 찾은 사라지고, 버려지며, 남겨진 지구 곳곳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제 뉴스와는 결이 다르다. 트럼프와 시진핑과 메르켈, 또는 김정은 등에 대한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물밑으로 권모술수가 판치는 국제 정세와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구인으로 인류의 앞날을 위해 걱정해야할 일들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준다.
이제는 남태평양의 낭만 따위를 얘기할 수 없는 쓰레기섬이 되어 버린 나우루를 비롯해 바다를 뒤덮은 플라스틱 쓰레기, 가나,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가난한 나라에 쌓이는 휴대폰 등 전자 쓰레기는 '국제적 쓰레기 불균형'이라고 부를 만한 문제를 보여준다. 부자 나라에서 흥청망청 소비하고 즐긴 쓰레기는 가난한 나라로 떠넘겨진다. 일부 서방 선진국은 유독성 쓰레기를 동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로 '수출'하는데, 이 쓰레기가 분류되고 해체되는 과정에 이들 가난한 나라에서도 가장 가난한 여성과 어린이 노동자가 동원된다.
낡고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들만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먹거리 중 3분의 1은 먹히지도 않고 버려지지만, 아프리카 10개국 난민 200만 명은 심각한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가장 슬픈 현실은 가장 많이 폐기되는 것 중 하나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2014년 국제 노동 인권 단체인 워크프리 재단은 '세계 인구 중 0.5%에 해당하는 3850만 명이 노예 상태에 있다'고 봤다. 워크프리 재단에 따르면, 인도에서만 약 1400만 명이 사고 팔리며, 중국은 320만 명, 파키스탄은 210만 명이 노예로 매매된다. 난민과 이주 노동자들의 문제로 관심을 돌리면, 사실상 노예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세계 곳곳에 이주 노동자들의 밀입국 루트가 있다. 조금이라도 잘사는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밀입국 루트이고, 인신매매 업자들에게는 밀매 루트다. 거기서 유통되는 상품은 난민 혹은 노예 혹은 이주자다.(...)이주 희망자들은 대개 모든 재산을 팔아 밀입국 알선 조직들에 돈을 주고 불법 월경을 시도한다. 밀입국 조직들이 이들에게 제공하는 운송 수단은 낡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은 난민들은 유럽에선 '망명지 쇼핑객', 한국에선 '가짜 난민'이라 불리며 배척된다.
"결국 난민은, 이주자는 누구인가. 지구적인 경쟁에서 내몰린 사람들이다. 나고 자란 곳에서 살 수 없어 다른 땅을 찾아 가는 사람들이다(...)만인 대 만인의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에게는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난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나보다 형편이 못한 이들에게 돌을 던지고 빗장을 닫아거는 사회는 아귀다툼의 사회다(...)저임금 노동자들의 무한 경쟁만 남아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잠재적 난민이며 저들이 우리의 미래다.”
부정의에는 눈 감지만 불이익엔 분노하는 각자도생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이 황망한 지구의 현실에 대해 고민해야할 이유는 이대로 가면 더 나빠질 것이 분명한 우리의 미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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