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되돌려야 하는 시간, 409일

[기고] 스타플렉스(파인텍)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공사판에서 몇 달 임금을 밀린 노동자들이 일을 못하겠다며 털썩 주저앉았다. 찾아가니 나를 붙잡고 언론사 타령을 한다. "우리 돈 못 받고 이런 거 기자들에게 알려야 하는 거 아니야?"

건설 현장에서 두어 달 임금체불은 흔한 일. 공사 막판에는 원청과 하청의 공사자금 장난질에 노동자들은 체불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한다. 월급날만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에게 이것만큼 서러운 일이 없다. 그래, 이게 건설현장 적폐지 싶지만 무심하게 말한다.

"기자들 안 와요. 이런 걸로는."

그러자 한 이가 묻는다.

"그럼 어떤 걸로 오나?"

그러게, 방송국 카메라는 어떤 걸로 오나. 싸우는 노동자들은 얼추 그 답을 알고 있다. 그래서 굴뚝에 오르고, 망루를 짓고, 끼니를 거부하고, 차가운 아스팔트를 기어간다. 그렇게 해야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고 질문이 생겨난다. "왜 저렇게 한대?"

▲ 고공농성 중인 굴뚝. ⓒ이창근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파인텍 노동자들은 그 질문을 두 차례나 받았다. 2014년, 그리고 2017년 두 번에 걸쳐 굴뚝에 오른 것이다. 일명 고공농성. 처음 차광호가 오른 굴뚝은 높이 45미터. 지금 박준호와 홍기탁이 있는 곳은 땅에서부터 75미터 떨어져 있다. 세 사람 모두 봄을 지나 겨울까지 사계절을 견뎠다.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두 번째 고공농성은 400일을 넘겨 또 다시 매서운 겨울을 맞고 있다.

그래도 지금이 낫다고 한다.

"정말 힘든 건 두 번째 고공에 오르기 전까지 파업하고 1년이었죠. 굴뚝에 오른 건 당시에 할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던 거죠." (김옥배 조합원)

2015년 첫 번째 고공농성은 408일 만에 마무리 됐다.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의 도장이 찍힌 고용 승계 합의서를 가지고 굴뚝에서 내려왔다. 스타케미칼 노동자였던 이들은 파인텍 소속이 되어 충남 아산공장으로 가게 됐다. 이때 남은 조합원이 8명.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7년, 한국합섬이 파산하기 직전만 해도 조합원은 800명에 달했다. 건실했던 기업이 공금횡령과 무분별한 투자, 부채합병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파산하자 떠날 수 없던 노동자들이 공장을 지켰다. 파산 5년 만에 스타플렉스가 한국합섬(스타케미칼)을 인수하고 이들은 복직을 이룬다. 그 수가 140여 명.

그러나 스타케미칼마저 1년 8개월 만에 매각된다. 노동조합이 해온 먹튀자본 의심이 적중한 게였다. 스타케미칼 인수비용(399억 원)보다 비싼 값에 팔릴 설비와 공장부지가 스타플렉스에게 남겨졌다. 노동자들에게 남은 것은 일자리 상실이었다.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싸우기를 결정한 사람은 서른 명 남짓. 2년간의 싸움과 첫 번째 고공농성을 거쳐 11명으로, 합의과정에서 다시 8명이 됐다.

8명의 노동자는 고용승계 약속을 받고 아산공장(신설법인 파인텍)으로 간 날, '있는 이들의 장난질'의 무서움을 깨달아야 했다. 누군가에게는 1평짜리 고공에서 1년 넘는 시간을 보내고 간신히 손에 쥔 약속이었지만, 누구에는 잔꾀 부린 술수에 불과했다.

기업이 사무직 직원을 모욕하는 방식에 책상빼기가 있다면, 생산직 노동자에게는 가짜 공장이 있나 보다. 아산으로 내려간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급조된 낡은 공장이었다. 기계는 수십 년 전 사양이고 기숙사는 가재도구 없이 휑했다. 공장장과 조합원 8명을 제외하고는 어떤 직원도 없었다. "사기 당했죠."

단체협약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임금도 정해진 바 없이 최저임금으로 몇 달을 버텼다. 합의서가 종이쪼가리로 전락할 위기에 이들은 아산 공장을 떠나 파업을 했다. 기다렸다는 듯 회사는 아산공장을 폐업처리 했다.

일터는 사라지고, 이들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그사이 조합원은 다섯이 남았다. 그나마 자신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파인텍 투쟁은 '해결된' 문제. 노사 합의를 이뤘으니 다들 해결된 거라 여겼다. 간단히 잊혔다. 그래서 다시 하늘로 오르기를 결심하기까지 외로웠다.

409일, 오래된 물음

하늘에 오르면, 그나마 카메라가 비춘다. 목소리가 전파를 탄다. 그러나 "왜 투쟁하는가?" 질문이 시작된 순간, 또 다른 곤혹은 시작된다.

싸우는 사람들은 싸움 내내 사람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하늘에 올라서도, 끼니를 거르면서도, 아스팔트에 사지를 대고 엎드려서도 왜 투쟁하는지를 말해야 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질문이 따라 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다른 데 가서 일을 할 수도 있는데 왜 여기서 계속 투쟁을 하냐. 그런 바보 같은 말이 어디 있습니까?"

400일 넘게 굴뚝에서 사는 노동자(홍기탁)가 말했다. 수화기 너머로 그 말을 들었을 때 조금 통쾌하다고 할까, 그랬다. 나 또한 종종 생각했다. '왜 포기 못 하고 계속 싸우는가'처럼 하나마나한 질문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기어코 나도 묻는다.

왜 못 떠났냐를 묻지만

"왜 떠나지 않고 함께 하나고요?"

천 여 명의 조합원이 다섯으로 줄었다. 그 다섯 명에게도 떠날 기회는 많았다. 왜 떠나지 않았냐는 질문에 한 조합원은 선선히 대답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답을 듣기 전에, 질문이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다.

왜 못 '떠났냐'고 물었는데, 그는 왜 ‘함께했냐’고 받아들였다. 그는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함께 한 것이다. "왜 남았지, 내가. 그냥 이번이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다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김옥배) 흘리듯 말하지만, 함께 해왔다.

고공에서 다른 이가 덧붙여준다. "지내왔던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의리. 그게 우선이 되었던 거 같아요."(박준호 사무장)

이들은 말한다.

"지금은 왜 싸우는지를 말할 수 없어요. 나중에 투쟁이 끝나고 문득 아 그때 내가 이래서 같이 했구나. 이렇게 떠오를 때가 있겠죠."(김옥배)

투쟁이 길어질수록 싸우는 이유를 하나하나 되새기기보다 매 순간 하루하루를 버티는 일이 중요해진다. '질긴 놈이 승리한다'는 말이 노동조합에서 흔히 쓰이는데, 질기게 버티는 일이 쉽지 않아 생긴 말일 게다. 그 쉽지 않은 걸 해내야 종잇조각에 불과한 합의라도 손에 쥘 수 있다.

권력과 돈을 가진 이들에겐 너무 쉽고, 가진 것 없이 일한 대가를 받고 사는 이들에겐 너무 어려운 것이 세상이다. 공장이 파산하고 매각되는 과정에서 수백, 수천 명 노동자의 밥줄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사회안전망이 미흡한 한국에서 밥줄은 곧 목숨줄이다. 목숨줄 지키겠다고 5년 동안 텅 빈 공장(한국합섬)을 지키고 두 차례나 고공에 올라갈 각오를 해야 한다. 그에 비해 밥줄 빼앗는 일은 너무 쉽게 일어난다.

파산과 대량해고가 적합한 요건을 갖췄는지 정부가 관리감독 해야 한다는 말은 힘없는 입바른 소리.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말이다. 기업은 가뿐히 떠난다. 계산되는 것은 영업이익보다 부지 부동산과 매각 비용이 높은지 뿐이다. 그것이 기업이 말하는 경영상의 위기이다.

가진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장애물 경기와도 같고, 그래서 장애물을 뒤로 하고 돌아서는 일이 더 쉬울 때가 많다. "에잇, 더럽다. 너희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 갈 수도 있었어요." 많이들 그렇게 한다. 그러나 홍기탁은 75미터 굴뚝에서 묻는다. "그렇게 돌아서 간 길에 다른 세상이 있나요."

간명한 이유가 들리지 않는 세상

어차피 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몸이다. 다른 세상은 없다. 그러니 지금은 최선을 다해 버티는 중이다. 싸우는데 뭐 그리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할까.

홍기탁과 함께 굴뚝에 오른 박준호는 간명하게 말했다. "옳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 부당하다는 것." 이것이 투쟁을 하는 이유다.
"생활고와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지키려고 했던 것은 일자리와 민주노조." 홍기탁 전 지회장은 이리 말한다. 이 간명한 이유 하나 들으려고 굳이 묻는다. 단순하고 명료하지만 브라운관에 담기지 못하는 말들. 이토록 간단한 이유가 사람들 귀에 가닿지 않는 세상이라, 노동자들은 반복해 묻고 답하고 고공에 오르고 단식을 한다. (차광호를 비롯해 사회인사 5명이 무기한 동조단식에 들어갔다. 차광호 지회장의 단식은 15일째다.)

"사람들이 자꾸 왜 그리 싸우냐고 물어요. 노동조합과 약속한 것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는데 힘이 없다고 알았어요, 집에 갈게요, 이래요? 모르긴 몰라도 우리는 알아버렸는데, 저들이 어떤지 우리는 알아버렸는데. 알아버린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싸울 수밖에 없는 거지요."

▲ 파인텍 고공농성 문제 해결을 위해 오체투지를 하는 중인 문규현 신부. ⓒ연합뉴스

408일은 긴 시간이 아니다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했다. "요즘 어느 시절이 제일 생각나세요?" 홍기탁 전 지회장은 한국합섬 시절을 언급했다.
"한국합섬 마지막이 기억에 남아요. 멈춰버린 3만평 공장을 소수가 지키고 있었으니까. 새로운 자본(스타케미칼)이 들어오고 공장이 재가동되고 고용도 노동조합도 승계되고. 한편으로 (먹튀 자본일까) 불안하면서 한편으로는 너무 기뻤거든요."

김세권 회장이 책임지고 3년 전 합의(고용승계)를 이행한다면, 지금도 그때처럼 기쁠까. 그러기에는 너무 작은 약속이 오랫동안 지켜지지 않았다. 스타케미칼 차광호가 기록한 세계에서 유례없는 최장기 고공농성 기간이라는 408일마저 지났다. 최장 기록을 또 다시 같은 회사의 노동자들이 깰 예정이다.

"사실 408일이란 인생에서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에요."

이 또한 홍기탁의 말. 그렇다. 99년 한국합섬에 입사해 노동조합을 알게 되고, 노동자로 살았다. 그가 노동자로 살아온 세월에 비해서 400여일이란 긴 시간이 아니다. 앞으로 노동자로 살아가게 될 시간에 비해서도. 이게 진짜 마지막 투쟁이면 좋겠다는 땅 위의 조합원도, 그럼에도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면 노동조합을 세우고 노동자로 살아갈 일을 이야기한다. 오늘의 굴뚝은 살아가는 길목에 있을 뿐이다.

또 한 번 깨진 최장기 고공농성 기록인 408일이라는 시간을 기억해야 하는건, 굴뚝에 오른 이들이 아니다. 파인텍 조합원들도 아니다. 누군가의 시간이 하늘 위에서 자꾸 흘러감을 기억해야 하는 이는 오히려 우리이다.

질문을 되돌려야 하는 시간

어쩌면 408일은 일하는 사람들의 마지노선이다. 우리 앞에 장애물은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첫 번째 공장인 한국합섬이 매각되던 2003년에는 '노동유연화'라는 이름으로, 공장이 스타플렉스 손으로 들어간 2007년에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다시 '쉬운 해고-규제 완화'로, 그리고 2018년 지금, 또 다른 이름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이름이 붙건 안정된 일자리는 사라지고 해고는 손쉽고 노동조합은 공공의 적처럼 명명됐다.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리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장애물 경기에 전력을 다한다. 그런 세상에서 이들의 숫자를 기억함은, 노동의 마지노선이 여기 408일의 굴뚝에 있기 때문이다.
촛불도 그렇게 들지 않았느냐고 홍기탁은 되물었다. 우리가 믿어온 올바름의 마지노선을 기득권 세력이 건드렸다. 이것이 국가인가. 사람들은 그 선을 지켜내기 위해 광장에 나왔다. 지켜내지 못하면 '잘' 살아갈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추운 겨울 언 손을 부여잡고 애를 썼다. 지켜내야 할 마지노선은 촛불에만 있지 않다.

태안화력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도, 강남역에서 일어난 죽음도, 그리고 언급하는 것만으로 슬픈 수많은 학생들의 죽음은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이것만은’ 지켜야하는 순간이 있다. 408일에도 ‘이것만은’이 담겨 있다. 일할 권리를 되찾으려는 단순한 싸움이 최장기라는 기록을 자꾸만 갱신시키는 사회, 이것만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25일)로 고공농성 409일. 막지 못한 시간은 흘러갔다. 이제 물음을 되돌려야 한다. 이들에게 던져온 빤한 물음을 우리 자신에게 되돌려야 한다. 우리가 우리에게 물어야 한다.

"이들은 왜 투쟁을 하는가?"

누군가를 하늘에 오르게 하고, 망루에 가두고, 쇠사슬에 몸 묶게 하는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이들이 싸우는 이유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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