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식을 위한 변명

[기자의 눈] KTX 사고의 진짜 원인과, 철도 개혁 '백래시' 유감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11일 사퇴의사를 밝혔다. 일부 직원들은 오 사장이 사퇴하지 말아야 한다는 글들을 코레일 내부 게시판에 올리고 있고, 급기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오영식 사장 사표를 반려해 달라"는 글이 올라와 오후 6시 현재 7300명을 넘겼다. 내용은 이렇다.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은 이전 정부에서 추진되어 왔던 철도공사 구조조정이 원인입니다.
따라서, 책임은 기재부와 국토부의 담당 공무원들이 져야 합니다.
정책을 세우고 추진했으며, 철도안전을 위한다고 하면서 관련 조직만 늘린 국토부는 왜 책임을 회피하고 철도공사 사장에게만 화살을 돌리는지 이해가 가지 않네요.
그리고 평소에는 철도 안전에 전혀 관심이 없다가 이번 사고를 이용해 자기 조직 이익만을 추구하는 각종 이익집단들이 문제이며, 자극적이며 확인되지 않는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사들 또한 철도안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않고 희생양만 만들 뿐입니다.

오 사장의 사퇴를 촉발시킨 강릉선 KTX 탈선 사고의 책임은 철도 경찰 등 수사 기관과 정부 진상조사단의 조사 등을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이번 사고 원인은 신호보안장치의 문제로 좁혀지는 것으로 보인다. 선로 전환기 설계와 시공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들린다. 물론 다른 요인들에 대해서는 조사 결과를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강릉선 KTX는 2012년에 착공해 2017년에 완공됐다.

현재까지 제기된 원인을 살펴보면, '시설의 문제이냐, 운영의 문제이냐' 여부로 귀결된다. 철도시설공단이 애초 불비한 시설을 시공한 것인지, 제대로 시공된 시설 운영 과정에서 관리를 못해 신호장치 오작동이 생긴 것인지 여부다.

물론 오 사장이 사퇴할 이유가 없다는 건 아니다. 책임 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중요하다. '낙하산이었고, 정치인이니까 어차피 나갈 것'이라는 비판도 총선까지 시간이 넉넉히 남아있다는 점을 보면 큰 공감을 못 받는다. 불명예 사퇴가 총선 도전을 위한 경력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사건이 또 다시 '노조 악마화'의 좋은 먹잇감으로 사용될 것이 우려되는 것이다. 오 사장 사퇴로 이 사건이 마무리되거나, 또는 오 사장의 사퇴를 빌미로 국토부와 청와대를 공격하려는 극우 진영의 의도가 관철되는 게 우려될 뿐이다.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번 사태에 코레일 사장의 책임이 있는가? 항상 구조적 문제를 따져왔던 언론도, 정치권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지 않는다. 이번 사태는 시설과 운영을 충돌시키고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만들어 온 한국 철도 시스템에 원인이 있다. 철도공사가 철도시설공단과 철도공사로 쪼개지고(김대중 정부의 상하 분리), 철도 안전을 책임질 승무원은 비정규직으로 숙련도와 전문성이 사실상 거세됐다. (노무현 정부의 코레일 승무원 파업 사태) 뒤이어 이명박 정부는 아예 철도 일부를 민간 기업에 팔아넘기려 했고, (관련기사 : KTX 민영화, 강릉선이 수상하다) 이것이 무산되자 박근혜 정부는 철도 정비, 운영, 보수를 '아웃소싱'하려 했다. 철도 운영 회사가 있고, 시설 공사 회사가 있고, 안전 담당 회사가 있고, 승무 담당 회사가 있고... 지난 20년간 한국의 정부는 이런 방식의 '철도 산업 쪼개기'를 효율과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밀어붙였다. 수익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공공 기관 3대 분야 기능 조정 추진 방안' 중 SOC(사회간접자본) 분야를 보자.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철도시설공단의 정비·유지·보수 부문에 대한 아웃소싱을 늘린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전문 정비 업체 인증제 등 안전 확보, 경정비 분야 위주로 아웃소싱을 확대"하고, 유지·보수와 관련해 "철도시설공단의 관리·감독 기능 강화로 안전 제고, 아웃소싱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물론 이런 계획들은 일단 멈춤 상태다. 그러나 공공분야 민영화를 주장하는 세력은 곳곳에 포진해 있다. 국토부 안에도 있고, 자유한국당 안에도 있다. 심지어 코레일 안에도 있다. 이들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안전 따위는 자회사에 넘겨도 좋다고 생각한다.

과거, 철도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이 거대한 '직선의 운송수단'은 근대화를 촉진시켰고, 자본주의의 산업, 노동에 필수인 시간 개념을 발달시켰다. 그러나 적자 문제, 부패 문제, 안전 문제가 불거지면서 1970~1980년대 들어와 철도 산업은 민영화의 세류에 휩쓸린다. 영국은 노선을 쪼개 운영사에 팔았고, 일본은 철도회사를 분할해 요금을 폭등시켰다. 프랑스와 독일은 시설과 운영을 분리했다. 이 대열의 맨 끝물에 한국 철도 산업이 있었다. 철도 선진국들이 '민영화의 폐해'를 깨닫고 철도의 '유용성'보다 '안전성'에 무게를 두며 관리 책임 체계를 일원화해 나가고 있는 가운데, 한국 철도는 정 반대로 흘러갔다.

프랑스 철도는 1997년 운송사업 부문 SNCF와 철도기반시설 RFF로 상하 분리돼 운영됐다. 하지만 상하 분리 이후 20여 년간 늘어난 비용과 업무 중복 등의 문제가 이어지자, 프랑스 정부는 지난 2012년 10월 30일, 상하 분리 15년 만에 SNCF와 RFF 재통합을 선언했다. (관련기사 : "KTX-SRT 통합 넘어 철도상하통합 추진해야 한다")

우리도 촛불 혁명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영화' 흐름에 이제 겨우 제동을 걸었다.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코레일은 안전 업무를 담당하는 승무원을 재고용했고, 철도 쪼개기로 인해 한 노선에 두 회사 소속 열차가 달리는 기형적 형태를 시정하고자 SRT 통합 논의를 시작했다. 상하 분리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다른 역대 사장과 달리 공감을 표했던 인사가 오영식 사장이었다. '철도 전문가'라는 사람이 관료에 휘둘리며, 철도를 쪼개고 특정 정당 공천을 받은 사례를 우린 똑똑히 기억한다.

이런 개혁이 못마땅한 '철피아'들이 있었다. 당장 예상대로 보수 언론은 이 사태를 '노조 왕국' 비난, '민영화 필요성' 주장에 얹었다. <중앙일보>가 "오영식, 코레일 노조왕국 만들어...후임 사장 고생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고, <문화일보>가 "'사고鐵 코레일에 SR 맡겨도 되나' 우려 확산"이라는 기사를 냈다. KTX 탈선 사고의 핵심 문제는 안전 문제이고, 관리의 문제인데 마치 노조 문제인 것처럼 호도하고, 코레일의 무능 문제인 것처럼 환원한다. 결국 코레일이 무능하니 '경쟁'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안전도 경쟁이 될까?

이번 사고와 관련해 함께 책임을 통감해야 할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운영자, 자유한국당의 태도도 적반하장이다. 철도 민영화를 계획하고, SRT를 탄생시킨 과거는 잊고, 오히려 이를 가속화하려는 명분으로 삼으려 하는 듯하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경부선에 문제가 생기면 코레일 사장이 물러나야 할까? 아니면 SRT 사장이 물러나야 할까? 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이 물러나야 할까?

정치도 그렇다. 시설(자유한국당)과 운영(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분리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자유한국당은 그 이유를 잘 모를 수 있다. 시설 부분은 빠져나가고 운영 부분만 책임지려는 태도를 보이는데, 좀처럼 유권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책임(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니 국민들은 끊임없이 의구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자유한국당의 정권 상하통합이 필요하듯, 철도 상하통합도 필요하다. 시민들에 신뢰를 주고,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오 사장 사퇴를 계기로 철도 공공성을 훼손하려는 세력의 부활을 철저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후임 사장도 개혁성을 중시해 사람을 찾아야 할 것이다. 20년 적폐를 청산하려면 철도를 잘 아는 관료보다는, 개혁을 잘 하는 비전문가가 나을 수도 있다. 특히 한국 철도에 맞는 인사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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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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