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은 멀쩡한데 왜 나만 그런데요?"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각자의 신호등을 켜자

"환자분의 어지럼증은 일종의 신호등이라고 생각하세요. 누구에게나 각자의 기울기가 있어요. 그래서 어떤 원인에서건 건강의 균형이 깨어질 때 그 쪽으로 먼저 기울게 되어 있습니다. 체질이라기보다는, 몸과 감정을 쓰는 습관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내적 패턴 같은 거죠."

명의라 칭송 받는 의사들은 단박에 알아차리겠지만, 저는 그 정도 경지에 이르지 못해 환자와 일정 기간 이야기도 나누고 치료를 해야만 환자와 그를 둘러싼 우주를 조금씩 알아갑니다. 그 인식의 폭과 깊이가 깊을수록 환자에게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지요.

환자가 살아온 삶의 시간과 지금 그를 둘러싼 환경에 의해 환자가 자신과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결정되고, 몸과 감정이 반응하는 일정한 길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물론 제가 알지는 못하지만, 그 바탕에는 분명 유전자의 장난이 일정 부분 깔려 있겠지요. 이 길이 평평하고 넓고 탄탄하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굽어지고 기울고 푹 꺼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같은 일을 겪더라도 환자가 받아들이는 현실은 개인마다 전혀 다르고, 자연스레 그 반응 또한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가장 자주 듣는 말이 "다른 사람은 멀쩡한데 왜 나만 그런데요?"입니다. 그럼 저는 "그 멀쩡한 분에게도 조금만 더 알고 보면 허당이 분명 있습니다."라고 답합니다.

탄탄대로가 이상적인 건강이라면, 현실적으로 '건강하다'고 하는 상태는 이 기울고 굽은 길이 내 몸과 감정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적당히 견뎌내며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고 과부하가 걸리게 되면 그 균형은 깨어지고 한 쪽으로 쏠리게 됩니다. 우리가 자전거나 눈썰매를 탈 때 "어~어~" 하다가 넘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앞선 환자처럼 어지럼증이 그 신호인 경우도 있지만, 가장 흔한 신호는 감기입니다. 그래서 감기를 건강의 신호등이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두통이나 어깨 뭉침도 흔하고, 갑자기 잠이 잘 오지 않거나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유 없이 피곤하고 짜증이 늘거나 갑자기 한숨이 자주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 많이 하면 근육통 오고 열 받으면 잠 안 오는 거 아니냐고 묻기도 하는데, 그 과부하가 신체적인가, 감정적인가에 크게 관계없이 균형이 무너지면 맨 처음 발생하는 증상이 사람들에게는 있는 듯합니다.

이럴 때 일차적으로는 이 패턴을 알고 조금 기울어질 때 균형을 바로 잡아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마 한의학에서 말하는 미병(未病)의 상태가 왠지 기우는 느낌이 들고 안 좋은 증상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단계일수도 있습니다.

물 잔이 엎어지고 난 후에는 물을 많이 치워야 하고 잘못하면 잔까지 깨져서 사태가 심각해지기도 하지만, 찰랑거릴 때 내려놓으면 물이 조금만 넘치거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평소 본인의 몸과 감정에 관심을 갖고 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환자 중에는 마치 병은 자신과 상관없는, 그저 없애야 하는 해충처럼 대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태도의 끝은 매일 한 움큼씩 먹는 약으로 귀결되기 쉽습니다. 현악기 연주자가 미묘한 음의 차이를 인지하고 현을 조율하듯, 우리도 자신의 몸과 감정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조율해야 합니다. 이 작업에는 자신을 잘 아는 주치의를 두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다음으로는 내부의 패턴을 좀 더 균형 잡히고 튼튼하게끔 유지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다양한 방법들 중에 본인에게 적합하고 재미가 있는 것을 선택해서 오래 지속합니다. 재능이 있고 없고를 떠나 오래도록 지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멈추지 않고 지속하면 변화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이 과정은 나무가 한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방식이 올바르다면 분명 도움이 됩니다. 이때는 제대로 알려줄 스승이 중요합니다.

몸과 감정에 들어온 별 거 아닌듯한 신호에 귀 기울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자의반타의반으로 오래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신호의 또 다른 이름은 산화적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미미할 때 바로 바로 처리하는 것이 산화적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만성염증을 줄여서 노화를 늦추고 건강수명을 늘릴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됩니다.

모두가 비슷한 면이 많지만, 사람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의학은 치료의 편의를 위해 개인 하나하나의 개성보다는 일정한 범주로 묶어서 보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그러다 보니 무시하거나 놓치게 되는 부분들도 당연히 발생합니다. 이 부분은 개인의 노력으로 채워야 온전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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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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