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맥이 직립하는 인간에게 중요한 이유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바로 서는 힘을 키우자

"제가 허리가 자주 아픈 원인이 홧병이라고요?"

"물론 그것 때문 만이라고는 할 수 없죠. 부족한 운동도 분명히 큰 영향을 줬을 거예요. 그런데 지난 몇 해 간의 기록을 살펴보니, 신체적인 과로보다는 감정적인 스트레스가 심할 때 아파서 오신 적인 많아요. 근육의 긴장이 커진 상황에서 근근이 유지되던 균형이 깨지고 통증이 발생한 거죠.

소염진통제나 근육이완제가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몸이 버티다가 회복할 수 있는 힘을 많이 소진한 상태에서 통증이 발생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치료는 감정적 불균형으로 인한 신체적 긴장을 푸는 것을 주로 하고 등과 허리 근육을 편하게 하는 것을 부수적으로 할 거에요. 생활에서는 위장에 부담 안주는 범위에서 영양섭취 잘 하시고, 조금 더 일찍 주무세요."

하루에도 여러 번 허리가 아파서 온 환자들을 치료하지만 그 원인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가장 흔한 경우는 일시적 과로나 부상 등으로 등과 허리 근육에 무리가 온 경우입니다. 이럴 때는 문제가 되는 부분만 풀어주면 되기 때문에 치료도 비교적 잘 되고 대증약을 복용해도 회복이 잘 됩니다. 단기전으로 상황이 해제되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흔히 말하는 허리디스크나 요추관협착증과 같은 관절의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입니다. 이럴 때는 환자의 몸 상태와 생활패턴을 파악해서 보다 중장기적인 전략으로 접근합니다. 치료와 약물치료도 필요하고 운동이나 자세 교정, 그리고 영양섭취와 같은 일상의 영역에서 변화가 필요합니다. 통증이나 저림과 같은 증상만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면 병을 키우거나 훗날 낭패를 볼 수 있으므로, 당장의 불편함을 개선하면서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동시에 해나가야 합니다. 이런 환자들에게 치료는 드러난 증상의 개선과 함께 환자가 자신의 몸을 잘 바꿀 수 있도록 지지 해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서는데 필요한 힘이 약해진 경우가 있습니다. 이전에 요통이 직립과 장수의 합작품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인간이 직립을 선택하면서 허리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요인들에 의해 이 직립에 필요한 힘이 떨어지게 되면 그만큼 허리는 물리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고 이것이 요통과 허리관절의 이상을 가져옵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렇다면 허리 근력운동을 하면 되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허리를 받쳐주는 힘이 약하다는 말을 듣고 허리를 강화하는 운동을 하다가 도리어 탈이 나서 오신 분들도 있지요. 물론 당연히 하체와 등과 허리 부분의 근력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직립의 힘은 단순히 근력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한의학의 경락체계에는 기경팔맥의 영역이 존재합니다. 그 중 충맥(衝脈)은 다리에서 아랫배를 거쳐 허리, 그리고 윗배(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가슴을 거쳐 인후부와 입술주변까지)로 흘러가는데, 몸의 발육과 영양작용에 관여해서 이 충맥의 성쇠가 성장과 노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충맥의 '충(衝)' 자는 찌르다, 맞부딪치다, 위로 올라가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무엇인가에 반해서 위로 향하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럼 충맥이 이겨내야 하는 힘은 뭘까요? 그것은 바로 중력입니다. 충맥의 경로와 의미, 그리고 직립이라는 단어를 매칭하면 중력에 반해서 몸을 바르게 세우는데, 이 충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근력과 함께 십이경맥의 바다라고 불리는 이 충맥이 만들어주는 내부의 힘이 든든해야 안팎으로 짱짱하게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힘은 단순히 몸이 바로 서는 데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특히 직립을 함으로써 인체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하게 된 뇌로의 순환에도 영향을 줍니다. 공간적으로 가장 높은 부위에 있기 때문에 충맥 힘의 충만함이 머리로 올라가는 흐름을 활성화 하는데 토대가 되지요. 뇌의 기능이 떨어지면 몸이 무너지는 것처럼, 사고나 병, 그리고 노화에 의해 몸이 서서히 허물어지면서 뇌의 기능이 저하되는 데는 이러한 영향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동양의 양생법에서는 나이가 들어서도 이 힘이 약해지지 않게끔 하기 위한 방법들을 연구해 왔습니다. 약물을 통해 충맥의 힘을 키우는 것부터 특정한 자세나 움직임, 그리고 호흡 등을 이용하는데, 이 부분은 추후에 한 번 이야기 하겠습니다.

이러한 힘이 약해지는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역시 노화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최초로 서기 시작한 이후 점차 왕성해지다가, 성장이 멈추고 청년기가 되면서 충만한 상태를 유지한 후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이 약화를 체감하는 시기가 바로 중년입니다.

충맥에 해당하는 부분이 다치거나 소아마비 등으로 약해진 것도 원인이 됩니다. 여성의 경우에는 자궁을 적출하는 수술을 받거나 과도한 출산이나 유산을 경험해도 영향을 받지요. 이와 함께 앞서 말한 감정적 스트레스로 인해 상체가 긴장 상태가 되고 이것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 오랜 기간 지속되어도 약해질 수 있습니다. 실제 나이든 환자들 중에 유달리 허리와 아래 뱃심이 약해진 환자들을 보면 젊어서 과도한 감정적 스트레스에 노출된 환자들이 꽤 많습니다. 물론 하체의 힘을 키우거나 유지하기 위한 운동이 부족하거나, 너무 혹사를 당해서 약해진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지요.

이 외에도 최근의 환경적인 요인으로 공기의 질이 나빠진 것도 우려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장부의 기능은 저하하는데, 그 중 폐는 마치 화력을 조절하는 풀무처럼 호흡을 통해 순환을 추동하고 대사를 조절하는 한편, 호흡운동 자체가 가지는 물리적 힘의 이동에도 관여합니다.

그런데 미세먼지는 폐의 퇴행성 변화를 가속화합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COPD와 같은 질환이 대표적이지요. 이렇게 되면 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질병에 걸릴뿐만 아니라, 순환을 추동하고 조절하는 힘이 떨어져 전신의 노화가 가속화됩니다. 또한 아래로 내려오는 힘 자체가 약해지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는 힘 또한 떨어지면서 신체의 붕괴 또한 빠르게 일어날 확률이 큽니다. 숨을 쉬기 어려운 공기 중을 뛰어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지요.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이 직립이라는 혁신을 선택 혹은 선택당함으로써 많은 이익을 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오래 살게 되면서 중력에 반하여 제대로 서지 못해 생기는 부담을 안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화와 함께 이 부담이 가중되면서 생기는 질병들이 꽤 많지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 살기는 어렵더라도, 내 힘으로 걷고 움직이며 인간다움와 자존을 지키며 사는데 있어 바로 서는 힘을 키우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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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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