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가족 채용' 비리 온상? 검증해보니…

정규직화·민주노총 겨냥하다 모순투성이 자료 수두룩

서울교통공사로 인해 불거진 공공부문의 '가족 채용 비리' 의혹과 관련, 서울교통공사 외에도 인천공항공사, 국토정보공사, 가스공사, 도로공사, 남동발전, 세라믹기술원 등에서도 유사한 '가족 채용'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야4당이 주장하는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나, 기획재정부가 실시 계획을 밝힌 공공기관 채용 전수조사 등의 조처를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례다.

그러나 자유한국당과 일부 언론 등 보수진영에서는 이번 사태가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동정책과 △민주노총의 '밥그릇 챙기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드러난 사실들을 보면, 이같은 주장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규명해야 할 의혹의 초점이 과연 '가족 채용 비리 의혹'인지 '정규직화' 또는 '민주노총'인지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노조가 주범? "3급 이상 고위직은 노조 가입 안 돼"


23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최근 한국당 유민봉 의원이 밝혀낸 '정규직 전환자 중 기존 직원 가족 108명' 가운데 26명은 3급 이상 고위직의 친인척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26명이 3급 이상 고위직 친인척인 것은 사실"이라며 "(대상자는) 1급 1명, 2급 9명, 3급 16명"이라고 밝혔다.

교통공사 임직원 가운데 3급 이상 고위직은 전체의 10.3%로, 정규직 전환자 중 '고위직 친인척' 비율 24%의 절반 이하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 이날자 <중앙일보>는 "교통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3급 이상 고위직 친인척에게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은 '정규직화는 민주노총(노조) 밥그릇 채우기'라는 보수진영의 프레임에 오히려 어긋난다. 가족 채용 과정에서의 비위 유무에 대해서는 감사원 감사가 진행될 예정이지만, 만약 비위가 있었다 한들 그 혐의자는 '임직원'이지 '노조'가 아니라는 말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3급 이상 고위직은 노조 가입이 안 된다"고 말했다. 교통공사 노조 관계자는 "(3급 이상은) 규정상 가입이 되는 경우도 있고 안 되는 경우도 있는데, 실제로는 거의 가입을 하지 않고 있다"며 "대부분 관리직이어서 규정상 가입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조선일보>가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을 인용해 보도한 강원랜드 사례에서도, 채용 비리 의혹에 연관된 이 중 하나는 "강원랜드에서 20년간 근무한 1급 간부"였다. 신문에 따르면, 강원랜드는 채용비리 사태 이후 공채 탈락자 225명을 구제하는 과정에서 25명의 기존 임직원 친인척을 채용했다. 이들을 포함해 강원랜드 정규직 전환자·대상자 중 기존 임직원 친인척은 99명이라고 신문은 보도했다.

또 한국가스공사에서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확정한 1203명 가운데 기존 임직원 친인척은 33명이었는데, 이 가운데는 "감사실 고위 간부의 여동생과 처남"도 포함됐다. 통상 인사·감사업무 담당자는 노조 가입 대상자가 아닌 경우가 일반적이다.

채용 시점, 왜 논란인가?

서울교통공사의 의혹과 관련해서는 문제 제기 대상자들의 채용 시점이 중요한 변수로 제기된다. 보수진영에서는 이들이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에 대해 미리 알았거나 예측하고 '정규직화를 노린 기획 입사'를 했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이날 <중앙일보>는 서울시가 지난 2015년 3월 작성한 '노동정책 기본계획안'을 입수했다며, 이런 문건의 존재로 볼 때 정규직화 정책 발표(2017.7월) 이전에도 공사 임직원들은 정책 방향을 알거나 유추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로 보도했다.

그러나 서울시 노동정책 수립에 관여한 한 시 관계자는 "오보"라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2012년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것이고, 이번에 문제가 된 108명은 (정규직의 일종인) 무기계약직 상태에서 '일반직 정규직'으로 직군 통합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무기계약직을 일반직화한다는 방침은 2017년 4월 처음 내부에서 검토됐고, 박원순 시장에게 보고된 것은 같은해 6월, 발표된 것이 7월17일"이었다고 부연 설명했다.

즉 무기계약직 노동자를 공채 합격자들과 같은 '일반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특혜인지 여부는 차치하고, 만약 그것이 특혜여서 논란 대상이 된다면 2017년 이전까지는 누구도 해당 정책 방향을 짐작할 수는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서울시 내부 사정은 물론, 중앙정부 차원애서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19대 대선은 2017년 5월이었다.

실제로 이날 추가로 보도된 공공기관 채용 비리 의혹 사례들을 보면, 서울시 외의 공공기관, 문재인 정부 이전 시기에서도 '가족 채용 비리'로 의심할 수 있는 사례들이 다수 있다.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상남도 대상 국정감사에서 대한애국당 조원진 의원은 경남도 산하 12개 공공기관에서 40명의 채용비리 사례가 적발됐다고 밝혔다. 2015년 경남무역이 계약직 경리사원을 채용하고 이듬해 해당 사원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는데, 이 업무를 관장한 것은 총무팀장이고 대상자는 총무팀장의 조카였다고 조 의원은 밝혔다.

이날 <조선일보>가 보도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사례도, 조사 대상 기간은 '최근 3년간'이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지난 3년간의 정규직 전환자 중 21명이 공단 직원과 친인척 관계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환노위 소속 이장우 의원(한국당)이 밝혔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기인 2009년에도 기존 임직원 친인척 7명이 채용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2009년 1월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기간제근로자 무기계약 전환 지침'에 따라 비정규직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당시 기존 직원인 모 부장과 차장의 배우자, 처남 등이 전환 대상에 포함됐다. 이들의 채용 시점은 1997년, 1999년, 2001년, 2003년 등이었다.

SH공사의 사례에서 보듯,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문재인 정부 이전에도 역대 정부에 의해 추진돼 왔다. 실제로 '상시업무 종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대선공약이었고, 그의 대선 승리 후인 2013년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비정규직 문제는 박 당선인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주요 과제로 거론했던 사안"이라며 "공공부문부터 솔선수범해 정규직 전환 문화를 만드는 공약을 지킬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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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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