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움직이지 않는 이주', 남북 청년들 서로 호기심 갖길

[장벽 너머 사람들을 만나다 ⑦] '세제곱관점' 유디트 앤더스 활동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10대였던 청소년들은 독일 재통일이라는 격변을 겪었다. 하지만 서독과 동독 청소년의 체감은 달랐다. 재통일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서독에 비해, 동독 출신의 청소년들은 완전히 달라진 교육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그런데 동독 출신들에게는 힘겨웠던 재통일의 기억은 서서히 지워져 갔다. 재통일된 독일 사회의 주류인 서독 출신들의 통일 기억이 이들의 기억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이들의 기억은 잊혀져 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동독 출신의 젊은 세대들, 즉 1976~1986년에 태어나 10대 또는 그보다 더 어렸을때 베를린 장벽 붕괴와 재통일을 겪은 이른바 동독의 '제3세대'들은 2010년 '세제곱관점'이라는 사회 문화단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베를린 장벽 붕괴와 재통일의 기억을 나누는 것과 함께, 동독의 관점과 서독의 관점, 그리고 유럽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13살 때 재통일을 겪은 동독 출신의 유디트 앤더스(Judith C. Enders, 1976년 생) 씨는 이 단체의 창립 멤버다. 그는 "201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주년이 지났을 때 당시 TV에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과 정치인들이 장벽 붕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들은 주로 서독 출신이었고 동독 출신인 저희가 했던 경험과는 완전히 달랐다"며 "세대별로도 재통일의 경험이 다 다를 텐데 이런 것들이 무시됐고, 서독 출신 남성 위주로만 장벽 붕괴와 재통일을 바라보는 것이 불편했다"고 말했다.

앤더스 씨는 동독 출신인 자신들이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의 재통일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 세대가 장벽 붕괴와 재통일 문제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이를 바탕으로 지금 동독이 직면한 문제에 대해 우리의 관점으로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생각했다"며 '세제곱관점'이라는 단체를 꾸리게 된 이유를 소개했다.

앤더스 씨는 "세제곱관점을 만든 이후 2011~2012년 동독 출신의 젊은 층들을 대상으로 컨퍼런스를 열었는데 당시 150명 정도의 사람들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그동안의 침묵에서 벗어나 드디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했다"며 "독일 사회에서 재통일 이후 동독 출신의 제3세대들의 목소리가 조명된 사실상 첫 사례였다"고 전했다.

그런데 독일 내에는 여전히 재통일된 사회에 원만하게 적응하지 못하는 동독 출신 '제3세대'들도 존재한다.

이와 관련 앤더스 씨는 "여전히 동독 출신의 사람들에게는 '2등 시민'이라는 콤플렉스가 있다. 더군다나 지방에 남아있는 동독 출신들은 동독 밖으로 나갈 기회를 가지지도 못했고 부모님도 이를 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서독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본 적도 별로 없다"며 이들을 변화로 이끌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없애야 한다. 동독 출신이라서 가지고 있는 부끄러움과 같은 감정이 있는데 이런 것을 함께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같은 독일 국민인 서독 출신의 사람들도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9월 16일 (현지 시각) 베를린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유디트 앤더스 활동가 ⓒ특별취재팀

프레시안 : 동독에서 태어났다가 재통일 이후 서독에서 거주하셨다고 들었다.

앤더스 : 구 동독 지역인 라이프치히의 남쪽에 있는 알텐부르크에서 태어나 3살 때까지 살다가 베를린 인근 북쪽에 위치한 비트슈톡이라는 작은 도시로 이주했다. 재통일 된 이후에 마르부르크라는 예전 서독 지역의 도시로 이사해서 1년 정도 살았다. 그런데 당시 느낌이 좋지 않아서 베를린으로 다시 돌아갔다.

서독 지역으로 이사했을 때 김나지움 1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김나지움은 독일의 인문계 중등 교육기관이다. 김나지움 11학년은 한국 기준으로 고등학교 2학년에 해당한다. 편집자) 그 학교에 800명 정도가 다녔는데 그 중 동독 출신은 3명밖에 없었다. 또 동독 시절과 비교했을 때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이 달랐다. 동독 출신은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을 좀 더 잘했고 언어 과목이 부족했다. 언어 과목도 영어나 프랑스어보다는 러시아어를 배웠다.

이렇게 다른 점이 있다 보니 서독 출신 친구들은 저를 비롯해 동독에서 온 친구들을 좀 특수한 아이들처럼 봤다. 마치 동물원에 있는 동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서독 출신의 다른 친구들은 동독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심지어 동독이 있었는지 들어본 적이 없는 친구들도 있었다.

동독 출신인 우리에게 재통일은 모든 시스템이 바뀌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독 출신 친구들의 일상은 별로 바뀐 것이 없이 그대로 지속되고 있었다. 즉 서독 친구들은 TV를 통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봤지만, 이게 그 친구들의 인생에 있어서 아무런 전환점도 아니었다. 이렇게 배경이 다르다 보니 서독 친구들이 나의 말을 이해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학교 내에서 소외감도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가 따돌림을 당하거나 그런 정도는 아니었다. 서독 친구들은 동독 출신인 우리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같이 어울리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새로운 저에게는 서독 출신의 친구들이 우리의 상황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고 그래서 좀 섭섭한 마음도 있었다.

프레시안 : 학창시절의 경험이 '세제곱관점'이라는 단체를 만들게 된 이유가 됐나? 단체를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이고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앤더스 : 독일의 재통일을 동독의 관점과 서독의 관점, 그리고 유럽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에서 세제곱관점이라는 이름의 단체를 만들게 됐다. 또 여기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우리는 내가 보는 관점과 다른 사람이 보는 관점이 다르며, 이런 부분을 서로 이야기하고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주년이 지났다. 당시 TV에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과 정치인들이 장벽 붕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주로 서독 출신이었고 동독 출신인 저희가 했던 경험과는 완전히 달랐다. 세대별로도 재통일의 경험이 다 다를 텐데 이런 것들이 무시되고 서독 출신 남성 위주로만 장벽 붕괴와 재통일을 바라보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 세대가 장벽 붕괴와 재통일 문제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이를 바탕으로 지금 동독이 직면한 문제에 대해 우리의 관점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6명의 동독 출신 친구들과 2명의 서독 출신 친구들이 모여서 동독 출신의 많은 젊은층들이 서독에 가서 교육을 받는 문제, 동독에 아무도 남지 않은 문제, 미래 동독은 과연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의 문제 등에 대해 우리의 관점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다.

우선 2011~2012년에 '(젊은) 세대의 자기 발견과 기성세대와의 커뮤니케이션'(selfdiscovery of a generation and communication to the older generation)이라는 이름으로 컨퍼런스를 열었다. 1976~1986년에 태어난 동독 출신의 이른바 '제3세대 동독'(Dritte Generation Ostdeutschland)'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이들이 장벽 붕괴와 재통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리기 위해 컨퍼런스를 시작했다.

당시 컨퍼런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150명 정도의 사람들이 참가했는데 대부분 이 연령대의 사람들이었다. 참가자들은 그동안의 침묵에서 벗어나 드디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 이 컨퍼런스를 통해 제3세대들이 재통일을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당시 컨퍼런스는 독일 사회에서 재통일 이후 동독 출신의 제3세대들의 목소리가 조명된 사실상 첫 사례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컨퍼런스를 베를린에서 했는데, 사실 베를린은 동서로 나뉘어져 있고 접촉도 많았던 곳이었기 때문에 다른 지방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방에 살고 있는 동독 출신 청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버스로 투어를 시작했다.

▲ 세제곱관점에서 진행한 버스 투어 안내 사진. 버스에는 '제3세대 동독'(3te generation ostdeutschland)라는 문구가 쓰여있고, 아래에는 구 동독 지역의 지도가 놓여있다. ⓒ유디트 앤더스 제공

열흘 동안 각 지역 버스 터미널에서 동독 출신의 청년들을 만나 대화하고 서로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또 지역 사회에서 학교를 위한 프로젝트를 한다든지 아니면 대안적인 문화 센터 같은 모임 단체나 할레에 위치하고 있는 연구 단체 등에서 행사를 열면서 지방에 있는 청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서로 생각을 교환하는 활동을 했다.

이처럼 우리는 주로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없애고, 동독 출신이면 가지고 있는 죄책감 같은 감정이 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영화 프로젝트, 사진 전시, 책 출간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고 웹사이트에는 구 동독에 대한 이야기도 실어 뒀다.

프레시안 : 동독 출신들이 느끼는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앤더스 : 동독에서는 전반적으로 재통일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통일을 통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이른바 '제2의 시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본인이 무엇인가 잘못했기 때문에 동독이 망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독 사회에서 소위 '잘 나가던' 사람들도 재통일 이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적응 역시 쉽지 않았고. 저는 그래서 동독 출신들은 '움직이지 않은 이주'를 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또 과거 동독이 독재정권이었기 때문에 독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다. 물론 슈타지에서 일했던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동독 출신을) 뭉뚱그려서 '독재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동독이 서독에 비해 기술적으로 뒤떨어지기도 하고, 발랄하고 활발한 서독의 이미지와 반대로 동독은 칙칙하고 재미없다는 이미지도 있다. 서독에서 생각하고 있던 동독에 대한 이러한 모든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동독 사람들에게 반영되면서 동독 출신들은 스스로 '뭔가 뒤떨어진 사람 같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서독 출신들은 동독 출신들을 좀 불쌍하듯이 (바라본다). 서독 출신들은 동독 출신들이 스스로 힘을 얻고 일어서는 것을 지원해주는 것 보다는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경우도 있다. 아마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이미 재통일이 된 지 3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이른바 제3세대들의 경우 통일 이후에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독 출신들에게는 그러한 부끄러움이나 죄책감 같은 것이 남아 있는 것인가?

앤더스 : 굉장히 다양하다. 저희 또래에서는 재통일이 됐기 때문에 (자유롭게 해외) 여행도 가고 유학도 가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는 사람도 있다. 반면 서쪽으로 나가는 것이 조심스럽고, 또 그런 기회도 별로 없어서 살던 지역에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독일 재통일 이후 현재까지 사회 통합이 됐다고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저희가 보기에 동독 출신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재통일 이후 동독 밖으로 나가며 유동적으로 이동하는 사람과 지역에 있는 사람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남성들이 지역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이 켐니츠 같은 지역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 같다. (켐니츠는 과거 동독 시절 '칼 마르크스의 도시'라는 이름의 '칼 마르크스 슈타트'로 불렸다. 재통일 이후 경제적으로 쇠락하는 양상을 보였으며, 최근에는 독일 극우단체의 시위와 난민 반대 시위 등이 일어나고 있다. 편집자)

지역에 남아있는 동독 출신들은 동독 밖으로 나갈 기회를 가지지도 못했고 부모님도 이를 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서독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본 적도 별로 없다. 베를린의 경우 본인이 따로 어딘가를 가지 않더라도 전 세계에서 베를린에 찾아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과정 속에서 개인의 변화도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동독 지역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접할 수 없다. 옛 동독 지역인 라이프치히나 드레스덴, 할레, 예나 등은 유학생이라도 있지만 다른 도시들은 누군가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다.

동독 출신들이 가지고 있는 수치심, 죄책감 등을 청산해야 하는데 이게 '생애사'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20~30년이 지나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돼 있다. 그래서 이게 지금 중요한 주제로 대두되고 있다.

프레시안 : 동독 출신 남성들이 유독 재통일을 힘겨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앤더스 : 저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동독에서는 여성들의 지위가 높았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아버지나 남편에 의존하지 않았다. 여성 해방이나 남녀평등을 이론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현실에서 있었기 때문에 동독 출신 여성들이 활동적이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 2013년 세제곱관점에서 처음으로 출간한 책 <제3세대 동독>(dritte generation ost) ⓒ유디트 앤더스 제공
그런데 동독 여성들이 서독 여성들에 비해 더 해방된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동독 여성들은 성평등을 자연스럽게 부여 받았다. 정치적으로 투쟁해서 쟁취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독에서는 여성 해방 운동이 있었고 서독 여성들은 이런 것들을 직접 투쟁해서 쟁취했다.

또 동독은 헌법에 남녀 평등이 있었지만 서독에서는 이 부분이 뒤늦게 헌법에 포함됐다. 서독은 부르주아지를 바탕으로, 동독은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계급의 평등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 문제에 대해서도 시스템적인 차이가 있다.

동독에도 좋은 제도가 있었다

프레시안 : 동독 출신은 통일되고 동독의 가치가 부정당하는 경험을 집단으로 한 것 같다. 그런데 성평등 문제와 같이 지금 생각하기에 재통일 이후에 남겨뒀어도 괜찮았던 동독의 제도나 사회문화적인 분위기들도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하나?

앤더스 : 그런데 여성 문제도 동독이 더 나았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이건 토론이 좀 필요한 문제다. 그리고 이 문제와 마찬가지로 동독 체제의 제도가 더 나았다기보다는, 재통일 이후에도 동독에 있던 제도들을 함께 개발해 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예를 들어 교육 시스템은 서독보다 동독 지역이 좀 더 평등했다. 또 경제적 격차도 동독이 서독에 비해 적었다. 그런데 동독으로부터 뽑아낼 수 있는 제도들을 재통일 이후 제대로 활용하기는 어려웠다. 서독이 승리자였고 동독은 패배자였기 때문이다.

또 동독에서 살던 사람들 중에 동독이 가지고 있던 교육, 여성, 경제 분야에 있어서 선진적이었던 부분을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전승되지 않은 측면도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부모세대들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 재통일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경우도 있다.

프레시안 : 재통일 이후 동독 출신들이 여전히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앤더스 : 개인적으로 다 다르다. 저같은 경우는 동독이나 통일 독일의 정체성보다는 유럽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미래를 바라보면서 미래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만 바라보면 잃어버린 것만 보이게 마련이다. 또 내가 누구인지를 바라보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면 안된다.

또 동독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 문제에 대해 서독도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시민 교육이나 정치 교육 등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마치 연인관계와 비슷한 것 같다. 현재 독일은 같이 있었다가 헤어짐을 겪었고 다시 만나지 않았나?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상대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이해할지가 중요하다.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세대 간에도 이해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와 자식 간 과거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게 필요하다. 그래서 저희는 제3세대 뿐만 아니라 그 부모들의 이야기도 책으로 묶어 출판하기도 했다.

저는 2010년 세제곱관점 활동을 시작하면서 저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개발해 낼 수 있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것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앞으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굉장히 많이 불편했지만 지금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많이 변한 상태다.

▲ 유디트 앤더스 ⓒ특별취재팀

프레시안 : 세대 경험이 다르다고 하셨는데 부모와 젊은 세대 간에 경험의 차이에 따른 갈등도 있을 것 같다.

앤더스 :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제3세대의 부모들은 보통 30~50대였다. 이미 동독 사회에서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경우는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 차근 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삶의 중반점에 위치하신 분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이 무너졌다. 이렇게 되면서 본인의 사회적 지위, 아이들의 교육 등 두려움과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걱정이 많았던 부모들이 아이들을 방치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 제3세대들은 이전 세대에는 없던 자유를 느꼈다. 그러면서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많았다.

프레시안 : 남북은 이제 다시 교류를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재통일을 겪은 본인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남북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앤더스 : 가능한 한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서로 호기심을 가지고 만나길 바란다. 사람마다 좋은 경험도 있고 나쁜 경험도 있는데 예전에 서로 하나였던 것을 상기시키면서 만나길 바란다.

서로 심리적으로 견제하면서 '이렇게 하게 되면 어려움이 있겠지' 라는 생각보다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이렇게 대화하면 지금보다 더 나아지겠지' 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교류하면 좋을 것 같다. 열린 마음과 관대한 마음, 호기심 이렇게 세 가지를 가지고 서로를 만났으면 좋겠다. (통역 : 한정화)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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