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이 내놓은 '큰 선물'은 구조조정?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산업은행은 답하라

2개월 전에도 얘기했지만,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린 적이 없다. 다시 2개월 만에 <인사이드 경제>는 GM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말았다. 끝난 줄 알았던 한국GM 사태, 하지만 100일도 지나지 않아 GM은 또다시 구조조정의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또다시 장밋빛으로 사탕발림

지난 20일, 카허 카젬 사장은 한국GM 관련 3가지 중요한 변화 내용을 발표했다.

△내년에 SUV 7만5000대 생산물량 늘어날 것이며 5000만 달러 들여 라인 증설 예정
△글로벌 제품 개발 업무 전담할 연구개발 신설법인을 연말까지 설립
△조만간 한국에 GMI(해외사업) 본부 설립해 중국 제외한 아·태 지역 관리·조정 역할 수행

그러자 한국의 일부 언론들은 또다시 GM을 찬양하며 마치 한국GM 앞날에 탄탄대로가 놓인 것처럼 대서특필을 하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들, 제발 자중해 주시라. 자본이야 자기 사업을 장밋빛 미래로 치장하는 게 본능이기에, 언론의 역할은 진위를 제대로 가려주는 것이다. 좋게 써준다고 ‘글로벌 짠돌이’ GM이 광고를 밀어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우선 GM은 ‘물량’이 늘어난다고 했지 ‘신차’를 배정한다고 하지는 않았다. 즉, 7만5000대의 물량 증가는 ‘일시적’인 것이다. 내년 연말부터 길어야 2년 정도 유지되는 것일 뿐, 그 기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최소한 이 정도 팩트체크는 하고 다뤄야 하지 않을까? 차세대 트랙스와 별도로 구형 트랙스 생산을 중단시키지 않고 연장 생산할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글로벌 제품 개발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신설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며, 즉각 100명의 엔지니어를 추가 채용해 3000명의 엔지니어링 역량을 갖출 것이라 한다. 이것도 계산을 제대로 해봐야 한다. 올초 구조조정에서 희망퇴직으로 500명 안팎의 엔지니어들이 회사를 그만뒀다. 3500을 바라보던 연구개발 역량이 3000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즉, 카젬 사장의 발표는 500명 가까이 줄어든 인력을 겨우 100명 충원한다는 얘기이다. 이런 발표가 뉴스거리가 될 정도이니 다른 부문은 어느 정도일까? 희망퇴직으로 300명 가까이 회사를 그만둔 정비사업소의 경우 인력 충원이 이뤄지지 않아, 과거 10명이 했던 일을 5~6명이 맡은 실정이다. 이러다간 과로로 쓰러지는 노동자가 있을까 걱정되는 수준인데, 겨우 100명 충원한다고 생색을 낸단 말인가.

마지막으로 GMI 본부 설립 관련해서는 거의 아무런 추가 정보가 없다. 중국을 제외한 아·태 지역 사업을 관리·조정한다고 했는데 도대체 어떤 업무를 수행할 예정인가? 인력은 몇 명이고 그 중 외국인과 한국인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어느 도시에 본부를 설립하게 되는가? 구체적인 얘기를 하지 않는 점이 오히려 수상쩍은 상황이다.

종합 자동차회사 한국GM이 해체된다

카젬 사장의 발표 내용 중 자세히 살펴봐야 할 내용이 있다.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는 것까진 좋은데, 그것 때문에 연말까지 ‘신설 법인’을 설립한다? 지금까지 한국GM이라는 하나의 법인 소속으로 아무 문제없이 연구·개발 업무를 담당해 왔는데, 굳이 왜 별도 법인을 만들어 한국GM으로부터 떼어낸단 말인가?

이번 문제만 따로 떼어서 보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한국GM에 벌어진 역사를 살펴보면 소름 끼칠 정도의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인사이드 경제>는 독자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5년 전 한국GM의 사업 구조를 아래와 같이 도표로 나타내 보았다.


우선 신차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센터가 있고, 완성차 생산(부평·창원·군산) 및 주요 부품인 변속기를 생산하는 공장(보령)을 갖고 있다. 쉐보레 유럽·러시아 등 해외판매망을 갖추고 수출을 하며, 완성차만이 아니라 부품을 묶어 CKD 수출도 한다. 내수 판매망과 함께 A/S 정비망을 담당하는 사업부(CCA, Customer Care Aftersales)도 갖추고 있다.

이 모든 사업들이 한국GM이라는 단일법인 아래 사업부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쉐보레 유럽·러시아는 자회사로 편재되어 있으며, 베트남 현지공장을 갖춘 GM 베트남도 자회사로 소유하고 있다. 베트남 자회사는 대부분 한국GM에서 부품을 CKD 형태로 수출하면 현지에서 최종 조립과 판매를 담당한다.

연구·개발 ⇒ 생산 ⇒ 수출 및 내수 판매 ⇒ 정비 등 무릇 ‘종합 자동차회사’로서 갖추고 있어야 할 대부분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5년 전부터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우선 2013년에 유럽 판매망인 쉐보레 유럽을 철수·청산하게 되며, 2015년에는 쉐보레 러시아를 GM의 다른 자회사에 매각해 버린다.

올해 5월 31일자로 군산공장을 폐쇄해 버렸으며, 얼마 전에는 베트남 자회사마저 베트남의 국영회사에 매각 계획을 발표했다. 이제 한국GM에 남아 있는 자회사는 하나도 없으며, 유럽과 러시아에서 운영했던 독자적인 수출 판매망도 사라졌다. 그런데 이제 여기에서 연구·개발 부문마저 별도 법인으로 분리한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에 최적화된 시스템으로

카젬 사장의 발표 내용을 잘 분석해보면, 글로벌 GM은 한국 사업을 여러 개의 법인으로 분할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우선 기존의 한국GM에서 연구·개발 법인이 신설되어 분리된다. 아울러 아·태 지역 등 해외사업부문은 GMI 본부라는 별도 법인으로 분할된다. 기존 캐딜락 수입·판매를 담당하던 GM코리아까지 합하면 총 4개의 자회사를 운영할 계획인 것이다.


기존 한국GM 법인은 생산·판매·정비 사업으로만 특화되며, 5년 전 명실상부한 ‘종합 자동차회사’로서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것도 끝이 아니다. GM은 지난 6월부터 직영 정비사업소조차 외주화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바 있다. CKD 센터 역시 축소 또는 외주화하려 한다. 그래서 해당 부문을 붉은 글씨로 표현해 보았다.

만일 이런 GM의 의도가 모조리 관철된다면, 사실상 한국GM 법인은 완성차와 변속기 생산 기능만 남게 된다. 저렇게 되면 한국GM은 본사의 위탁생산·하청기지 역할로 쪼그라들게 된다. 글로벌 GM이 한국을 하청 생산기지로 써먹다 버리려는 것 아니냐 하는 세간의 의혹이 어떻게 현실화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연구·개발 부문이라고 안전할까

글로벌 GM으로부터 역량을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진 한국GM의 연구·개발 부문은 안심해도 좋은 것일까? 사실 이런 질문 자체가 난센스에 가깝다. 완성차 회사가 독자생존을 하려면 생산과 연구·개발, 그 어느 것이라도 따로 떨어져선 안 된다. 실제로 GM이 다른 나라에서 벌여온 역사를 보면 잘 드러난다.

우선 올초 GM 철수설과 함께 가장 많이 인용된 사례인 호주를 살펴보자. GM은 이곳에서 완전히 철수한 게 아니다. 수입차 판매법인과 함께 디자인 센터를 남겨두었다. 즉, 공장을 폐쇄하고 생산 관련 사업을 중단한 것이다. 이런 사례를 보면 생산 부문을 제치고 연구·개발 부문만 살아남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럽 오펠 사례는 정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해 GM은 오펠을 전격적으로 PSA에 매각하면서 R&D 센터까지 함께 팔아치웠다. PSA는 처음에는 오펠의 R&D 센터를 최대한 활용할 것처럼 언론 플레이를 하다가 최근 이곳을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GM이 연구·개발 능력을 가장 높이 평가했던 오펠의 R&D 센터를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렇다. 생산시설 없이 연구·개발 부문만 남아 있다면 과연 미래를 보장할 수 있을까?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오펠의 엔지니어들만이 아니라 생산직 노동자들도 R&D 센터 매각을 반대하고 나선 상태이다. 매각을 강행된다면 오펠은 독자생존 능력을 잃어버린 채 그저 PSA의 생산하청기지로 전락한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독자생존의 싹이 잘린 채 경쟁의 도가니로

"이에 따라 GM대우는 독자적으로 신차개발, 수출, 해외생산, 합작투자 등이 가능하게 되어, GM이 철수하더라도 독립된 자동차 회사로서 생존이 가능하고, 향후 국내·외 자동차사와의 전략적 제휴 및 M&A를 통한 계속 성장의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음."

2010년 12월, 산업은행과 GM은 ‘GM대우 장기발전전망 협약’이란 것을 체결했다. 그런데 정작 그 내용은 양쪽 모두 ‘비밀’로 묻어두기로 했던 모양이다. 그러다 2014년 당시 국회 정무위 박원석 의원이 산업은행에 2010년 협약 내용을 질의했더니 비밀유지조항 때문에 어렵다며 대신 협약 체결 당시 산업은행 내부 보고자료를 보내왔다.

답변자료에 따르면 당시 산업은행은 ‘독립된 자동차회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GM이 철수하더라도 GM대우는 디자인·엔지니어링센터가 있으니 독자적으로 신차 개발도 할 수 있고, 쉐보레 유럽·러시아 등 해외판매망이 있으니 수출도 가능하며, 베트남 자회사도 갖고 있어 해외생산 및 합작투자도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산업은행과 GM 사이에 새로운 협약이 체결된 지금과 비교해보자.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가? 우선 GM은 한국GM의 독자적인 해외판매망(쉐보레 유럽·러시아)부터 청산·매각해 버렸다. 베트남 자회사도 팔아치운다고 한다. 이제 연구·개발 부문까지 독자법인으로 분리한다고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렇다. GM은 완전히 꽃놀이패를 쥐게 된다. 생산직·사무직에 모두 달콤한 말을 속삭이며 충성 경쟁을 유도할 것이다. "글로벌에서 한국의 연구·개발 역량을 인정한 것이다. 연구·개발 법인이 알짜 회사다." "트랙스 물량 늘리는 것 보면 모르겠나? 본사에서 한국의 제조품질 역량을 최고로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생산 파트를 버리고 연구·개발 부문만 남길 수도 있고(호주 사례), 연구·개발 파트는 팔아치우고 생산 부문만 남길 수도 있다(유럽 오펠 사례). 어느 쪽을 버리고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점은 노동자들이 얼마나 양보와 충성 경쟁을 하느냐를 놓고 본사의 판단에 내맡겨진다.

한국GM 사업 전체를 포기한다면 세기의 먹튀 사건이 되지만, 사업부문을 잘게 쪼갠 뒤에 하나씩 버린다면 먹튀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게다가 각 사업부문끼리 경쟁을 유도해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결과적으로 한국GM은 GM이 철수할 경우 독자적으로 생존의 길을 모색할 수 없는 처지로 내몰리게 된다.

응답하라 홍영표 원내대표, 이동걸 회장!

GM이 이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과연 문재인 정부는 모르고 있었을까? 무려 8,100억의 국민 혈세를 산업은행을 통해 지원하는 협약을 체결한 당사자가 바로 문재인 정부이다. 이러한 내용을 모르고 있었을 리가 없다.

“제너럴 모터스(GM)가 선물을 준비하는 거로 안다.” “GM과의 협상 관련, 발표하지 않은 ‘큰 선물’이 있다. 기대해도 좋다.”

정부와 GM의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이던 5월 초, 홍영표 의원이 부평과 창원의 GM 협력업체들을 만나서 한 얘기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걸까? 이 얘기를 한 지 며칠 뒤에 홍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홍영표 원내대표에게 묻는다. 도대체 GM이 준비한 선물이 바로 축소, 분할, 외주화로 점철된 추가 구조조정인가?

게다가 연구·개발 부문만 별도로 떼어내 신설법인을 만든다거나, 베트남 자회사를 매각하는 결정 등은 모두 한국GM 이사회를 통해야만 가능하다. 그 이사회에는 산업은행이 추천한 3명의 사외이사가 참석한다. 어쩌면 몇몇 결정은 산업은행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안일 수도 있다. 비토권 행사가 안 되더라도 이사회에서 얼마든지 문제를 제기하고 쟁점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카허 카젬 사장이 갑자기 저런 발표를 내어놓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저런 내용에 대해 이미 사전 합의가 있었던 것인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8000억 세금을 들여서라도 5년, 10년 간 30만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면 ‘가성비’가 높다고 주장해온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뭐라고 답할 것인가.

지난 6월 말에 산업은행은 이미 4000억의 혈세를 우선주 형식으로 GM에 지원한 상태이다. 그러나 GM은 7월 3일까지 창원공장 불법파견 시정지시를 하거나 77억의 과태료를 물어내라는 고용노동부의 명령 그 어느 것도 이행하지 않았다. 불법파견으로 사용해온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하지 않았고 과태료도 물지 않았다.

GM은 아마도 과태료 처분에 ‘이의제기’를 함으로써 문제를 법정 소송으로 끌고 갈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이 투입한 혈세 중 일부는 김&장에 수억~수십억 수임료로 쓰일 것이다. 불법으로 사용해온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는 대가, 즉 불법을 지속하는 대가로 말이다.

그렇다면 산업은행은 국민 세금으로 GM의 불법을 지원하는 꼴이 된다. 불법파견으로 사용되어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장실 농성이 벌써 2주째다. 8100억 혈세를 투입해서 얻고자 했던 결과가 이것이었는지,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 역시 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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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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