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 분출하는 혁명 도시, 평양을 소개합니다

[프레시안 books] 주성하의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

"이 세상에 북한만큼 겉과 속이 다른 곳은 단언컨대 어디에도 없다. 주민도, 정권도 매우 이중적이다. 워낙 단단한 가면을 쓰고 있어 외부에서 그 실체를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주성하 지음, 북돋움 펴냄)라는 표면적으로는 매우 이중적으로 보이는 제목의 책 머리말이다. 겉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의 속, 특히 평양은 시장경제로 급격히 진화되고 있다. 이 책은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의 탈북인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가 자신의 '휴민트'(정보원이나 내부 협조자 등 인적(人的)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은 정보 또는 그러한 정보수집 방법을 뜻한다)를 활용해 "외부인을 만나는 순간 속내를 철저히 숨긴 배우로 둔갑하는 평양 시민들"의 실생활과 속내를 끌어냈다. "평양시민 스스로가 작성한 평양 심층 보고서" 격인 이 책에 대해 저자는 "탈북해 한국에 온 후 지금까지 10여 권의 북한 관련 책을 냈지만 그중 이 책을 가장 먼저, 제일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고 머리말에서 밝혔다.

2018년 4월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에서 평양 시민의 '심금을 가장 틀어잡은' 노래는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과 윤도현의 '1178'이라는 인터뷰만 봐도 이 책이 담고 있는 정보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지금 평양에도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고 있다"


▲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 주성하 지음, 북돋움 펴냄.
평양의 부동산 투기 열풍과 하룻밤 유흥비로 1000-1500유로를 펑펑 쓰는 '북한 0.01% 금수저'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는 북한식 시장주의화가 어떤 모습으로 진화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지금 평양에는 서울 못지않은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한국적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 부동산 투기인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주택 시장은 북한의 자본주의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가에서 개인에게 주택을 배정하는 것은 기본 원리인 사회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투기 열풍'이 불고 있을까.

평양의 부동산 투자자는 주로 정부 기관이나 국가급 기업소를 등에 업은 개인, 또는 그런 개인들의 집단이라고 한다. 이들은 뇌물을 '윗단위 간부'에게 주고 평양시의 재건축 계획까지 입맛에 맞게 바꾸고 투자자를 모집해 아파트를 지은 뒤, 각자의 기여도와 투자금액에 따라 아파트를 배분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나눈다. 부동산 투기 열풍으로 평양의 아파트 가격은 2000년대 초에만 해도 최고가 5000달러에 불과했는데, 현재는 최고급 아파트는 30만 달러에 거래된다고 한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는 권력과 함께 돈이 필요하다. 건설상무를 조직해 움직이는 핵심 인물인 건설주는 투자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북한은 은행이 유명무실해 담보 대출 같은 것은 없다. 권력자의 비자금과 돈주(북한의 신흥자본가)의 달러가 있어야 한다. 투자한 권력자와 돈주의 레벨이 곧 건설주의 능력이다. 조선노동당의 핵심 권력 기관인 중앙당 조직지도부 고위간부 정도를 끼고 있으면 최상위 건설주에 속한다. 권력층 역시 돈을 불리기 위해 건설주라는 하수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권력층은 직접 나서지 않고 아내나 자녀를 대신 내세운다."

"욕망의 분출로 뜨거워진 혁명의 수도" 평양의 부동산 투기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한국의 부동산 투기와 너무나 똑같다. 차이는 북한 최고급 아파트의 로열층은 저층(2-3층)과 중층(7-12층)이라는 점 정도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 북한에서는 승강기가 자주 멎기 때문에 고층은 선호되지 않는다.

'그란트' 한 장만 찔러주면....

'0.01% 금수저'의 일상을 보면, 남한과 북한 두 사회의 유사성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

"그는 주말이 되면 친구들과 고려호텔 길 건너의 '창광숙소'를 찾는다. 점심에 친구 셋과 함께 가면 1000유로(한화 약 130만 원)로 새벽까지 빛낼(즐길) 수 있다. 가끔 기분이 내키면 1500유로를 쓸 때도 있다(...)창광숙소는 일명 '재포(재일동포)' 출신이 운영하는 곳이다. 원래는 외국인 전용이라 북한 주민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지만 실상 그곳을 찾는 외국인은 거의 없다. 주요 고객은 북한의 금수저나 돈주 같은 부류다. 창광숙소 1층에는 최고급 사우나, 최신식 안마 시술소와 함께 뉴욕의 맨해튼 거리에나 있을 법한 바가 있다. 가격은 유로로 책정되어 있지만 달러도 받는다. 사우나는 3유로, 안마는 20유로 정도로 시설과 서비스 수준에 비해 비싸지 않다(...)당구장이 있는 2층에는 침대방도 있어 '애인과 함께 오면 안성맞춤'이라 한다. 영업 규정상 2층 역시 외국인만 이용할 수 있지만 '그란트(50달러) 한 장 찔러주면' 체크인 없이 방을 빌릴 수 있다."

국가의 인민에 대한 통제력 상실과 극심한 부패를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북한의 시장주의화 방식에 대해 저자는 "사상 유례 없는 봉쇄 속에서, 세계와 분리된 채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소련이나 동유럽과도 다르고, 현재 중국이나 베트남과도 다르다고 평가했다.

2018년 문재인 정부 들어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이런 북한의 시장주의화가 배경이기도 하다. 저자가 책의 가장 마지막('창업 블루오션, 평양!')에서 소개한 것처럼 한국이 직접 북한에 투자를 할 수 있는 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된 한반도가 '자본주의 정글'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십년간 억눌렸다 이제 막 봉인이 해제되기 시작한 북한의 '욕망'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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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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