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파견, 얻어맞는 건 언제나 가장 서러운 비정규직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 공장 내 파업농성 도중 폭행 당해

지난 30일,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내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모 씨의 척추 12번 뼈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재 전치 10주를 판정받고 병원에 입원 중이다. 파업농성 중이던 이 씨는 대체 인력을 투입하는 기아차 관리자와 몸싸움을 벌이다 이같은 변을 당했다.

당시 사고현장에 있던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기아차 관리자 약 100명이 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 한 명 당 7~8명씩 달라붙어 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한다. 원청인 기아차는 하청 노동자들이 파업을 단행하자, 생산라인을 가동하기 위해 대체인력을 투입하려 했고 이를 막으려던 노동자와 충돌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척추뼈가 골절된 이 씨도 그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다. 원청 관리자들에 의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고, 이내 뼈가 부러졌다고 한다.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는 이날 아침 9시부터 기아차 화성공장 내 도장플라스틱 공장에서 무기한 파업 농성을 들어갔으나 원청인 기아차는 이들이 사유물인 공장을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이들이 도장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긴 하지만, 공장 설비는 기아자동차 소유이기 때문이다. 원청 관리자들이 파업 참가자들의 출입을 막고 대체인력을 투입한 이유다. 원·하청 구조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모순이다.

▲ 목에 밧줄을 걸고 농성 중인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지회장.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정규직 전환을 특별채용이라는 '꼼수'로 돌파?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 배경은 원청인 기아차가 사내하청 노동자 165명에게 강제전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회에 따르면 기아차는 도장플라스틱 공장 사내하청 3개 업체를 28일부로 계약해지하면서 이곳에서 10년 간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 165명을 다른 하청 업체에 재고용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기아차 비정규직지회는 이러한 결정을 법원의 판결을 회피하려는 원청의 '꼼수'로 판단한다. 이미 법원은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관련 소송에서 노동자들에게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기아차 불법파견(근로자 지위 확인소송) 집단 소송에서 소를 제기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심(2014년 9월)과 2심(2017년 2월) 모두에서 전원 승소했다.

법원은 두 번이나 기아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기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판결한 셈이다. 하지만 기아차는 이들의 정규직 전환을 미적거리면서 되레 꼼수를 부리고 있다. 정규직 전환 대신 특별채용이라는 카드를 꺼낸 것이다.

비정규지회에 따르면 특별채용은 사내하청 비정규직 중 1049명에게만 진행된다. 또한, 그렇게 채용될 경우, 불법파견 소송취하를 전제로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수 없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외에도 법원에서 판결한 체불임금(정규직과의 임금차액), 즉 정규직으로서 받아야 했던 그간 임금 차액을 포기해야 한다.

특별채용 규모도 문제다. 법원에서는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했으나 특별채용 규모는 전체 사내하청노동자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근속도 2분의 1만 인정된다.

이번에 문제가 되는 기아차 도장플라스틱 공장은 불법파견 판결을 받은 공장이다. 하지만 기아차는 정규직 전환 대신 특별채용을 진행 중이다. 게다가 특별채용은 도장플라스틱 공장 전체 하청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일부 하청 노동자에게만 적용되는 식이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네트워크 집행위원은 "도장플라스틱 공장 사내하청 업체 3개와 계약해지한 뒤, 여기에 속한 노동자 중 회사 말을 잘 듣는 노동자는 특별채용으로 정규직 전환을 시켜주고,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을 다른 하청업체로 강제전직시키는 식"이라며 "그들이 현재 165명""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원청인 기아자동차는 하청 노동자 길들이기의 수단으로 특별채용을 이용하는 셈이다.

상황 이렇게 된 데에는 정부 탓도 크다

사실 원청이 제시한 특별채용은 1사1노조 원칙으로 원·하청 노조가 한 노조로 묶여있던 기아차노조를 둘로 쪼개는 빌미로 작용하기도 했다. 원청 노동자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당시 기아차지부는 2016년 11월, 2800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 가운데 일단 1049명만 특별채용하기로 사측과 합의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로 구성된 기아차지부 사내하청분회는 법원 판결보다 훨씬 뒤처지는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싸울 것을 요구했다. 결국, 논란 끝에 가아치지부는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리하기로 했다. 말이 좋아 분리였지 일방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들에 의해 내쫓기는 식이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정부 탓도 크다는 지적이다. 그간 고용노동부는 법원의 판결에도 기아차를 대상으로 아무런 시정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불법파견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러한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지난 9개월 동안 활동한 고용노동부 행정개혁위는 지난 1일,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관련해서 노동부가 부당하게 처리했다며 사태해결 및 유감 표명을 권고했다. 그간 노동부의 책임방기를 지적하고 개선안을 권고한 것이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도 입장문을 내고 이러한 권고안을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로부터 한 달이 지났으나 아무런 조치가 없었던 셈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러한 약속을 한 노동부 장관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서 각각 노동부 차관과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을 지낸 '일자리 정책' 전문 관료가 지명됐다는 점이다.

▲ 비없세 등은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 열고 폭력행위 중단을 촉구했다. ⓒ프레시안(허환주)

비없세 등 "폭력사태, 문재인 정부에서 일어나 참담하다"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인권운동네트워크 등 83개 시민단체는 31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폭력사태에 대해 "노동존중을 내건 문재인 정부 시기에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이 참담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은 "식칼테러가 횡행했던 1970~1980년대가 아닌 2018년에 재벌이 노동자에 대한 폭력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정부 탓"이라며 그동안 정부가 불법 파견에 대해 시정조치를 하지 않은 점을 꼬집었다.

이들은 "법원 판결이 연일 나왔지만 고용노동부가 나 몰라라 하기에 불법파견 범죄가 진행될 수 있었듯, 정당한 파업행위에 대해서도 사측 관리자들이 폭력을 행사 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헌법상 권리인 노동자들의 파업권이 이렇게 짓밟힐 수 있었던 이유는 정부가 노동자 권리를 보호할 의지가 없고, 이에 필요한 실질적인 집행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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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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