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선 성적표가 그래프로 정교하게 나온다"

[한국과 프랑스의 공공성 上] 박흥수가 묻고 목수정이 답하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선거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민주당 자체에 대한 지지도로 보기는 어렵다. 정치 권력에 대한 교체 욕구가 '촛불 정부' 시대를 만나 투영된 곳이 하필 민주당이었을 뿐인 것으로 해석된다. 즉, 민심은 정치권에 한국 사회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표로 경고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승자독식의 1등 숭배주의, 효율성과 성과 우선의 분위기 속에 공동체 가치의 훼손을 겪어왔다. 안정된 삶을 누리는 일은 바늘구멍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되었고 이는 여러 형태로 분화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특권으로 오르는 사다리는 이미 걷어차인 지 오래다.

학력과 일자리마저 부의 대물림을 통해 이어지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버린 사회, 평범한 삶조차 목숨 걸고 도전해서 얻어야 하는 사회라면 미래가 없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답은 '공공성'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에 나오는 '공화국' 정신이 한국 사회에 제대로 공유되고 실현될 때, 공동체의 희망은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민심은 새 지방 권력의 집행자로 나선 이들이 제대로 된 개혁을 실천하길 바라고 있다. 재벌과 권력자와 정치가들, 그리고 학력을 배경 삼은 이른바 엘리트들의 사적 이해관계를 해체해야 한다. 국민들이 바라는 개혁이란 공화국 시민의 삶이 가장 먼저 고려되는 정책, 즉 사회 공공성을 구석구석 착근하는 일이리라.

<프레시안>은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 한국의 철도정책과 교육정책을 '공화국 정신'이 깊이 뿌리 내린 프랑스 사회라는 거울을 통해 비춰보자는 취지로 대담을 준비했다.

철도 정책 연구를 통해 공공성을 이야기해온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과 프랑스에 살면서 '진보'의 가치와 관련해 끊임없이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목수정 작가가 무더위 속에도 프레시안에서 마주 앉았다. 이 대담을 2회에 걸쳐 싣는다. 첫 회는 주로 한국과 프랑스의 교육 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 박흥수 연구위원(왼쪽)과 목수정 작가(오른쪽). ⓒ프레시안(최형락)

"한국 교육에서 바뀌어야 하는 두 가지"

박흥수 :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언제 한국에 오셨습니까?

목수정 : 네. 오랜만이네요. 지난 7월 12일에 도착했으니 한국에 온 지는 열흘 좀 넘었습니다. 8월 14일에 돌아갑니다.(이하 존칭 생략)

박흥수 : 프랑스 철도, 특히 파리시를 둘러싼 광역철도 정책과 관련해서 현지에서 피부로 느끼는, 시민의 관점에서 느끼는 것을 듣고 싶어서 만나 뵙자고 했는데,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생각정원 펴냄)라는 책도 새로 나왔다. 책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프랑스 교육과 관련된 책인 듯하다. 한국은 알다시피 교육 문제는 늘 중요한 화두다. 막내가 고3이다. '고3 갑질'을 견디느라 요즘 힘이 든다.(웃음). 프랑스란 창을 통해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이나 교육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인가.

목수정 : 한국 교육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오롯이 프랑스 교육제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박흥수 : 프랑스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에서도 본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것은 아닌가.

목수정 : 당연히 속마음은 그런 면도 있지만, 적나라하게 비교하지는 않았다. 사실 내 아이는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자랐다.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보고 느낀 것을 풀어냈다. 프랑스 산부인과에서 산모를 대하는 방식, 이후 산모가 누릴 수 있는 사회적 혜택부터 시작해서,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점들을 담았다. 지금은 아이가 중학생인데, 탁아소,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과정을 순차적으로 풀어냈다. 단순히 학교 내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의 이야기도 담아냈다, 사실 교육은 학교 안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지 않나.

박흥수 : 중학교까지의 이야기만을 담았나.

목수정 : 아니다. 출판사에서 고등학교까지 해달라고 했다. 그래야 완성이 된다고.(웃음) 그래서 고등학교 부분은 인터뷰와 취재를 통해 썼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와 마찬가지 포맷을 선택했다. 초등학교, 중학교는 각각 교사 한 명과 학생 두 명을 인터뷰했는데, 고등학교 때는 학생 한 명과 교사 한 명의 인터뷰를 실었다.

사실 어떤 나라의 교육제도를 한마디 말로 정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 사는 동네에 따라, 학교가 사립이냐 공립이냐에 따라 모두 다르다. 그런 다양한 상황을 담으려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대체로 어떤 방식의 삶을 사는지 에피소드 중심으로 다루고, 관련해서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딱딱한 책은 아니다. 엄마의 시각으로 아이를 따라가며 아이와 나눈 대화도 담겼다. 그러면서 아이의 시각과 나의 시각이 섞이는 구조가 됐다.

박흥수 : 우리 아이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저렇게까지 공부를 해야 하나' 할 정도로 끔찍하게 공부를 한다. 물론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다.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대학 입학 후로 유예된 삶을 살고 있다. 시험성적에 일희일비하는 것을 지켜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사실 나는 초등학생 때만 해도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만큼 무한한 상상력과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사라졌다. 한국의 많은 아이들이 공무원이 되거나 공기업에 입사하는 게 성공인 것처럼 생각하는 게 안쓰럽다.

목수정 :어제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마지막 질문이 '한국 교육과 프랑스 교육의 괴리가 있는데, 이 책을 쓰고 나서 가장 심적으로 바꿨으면 하는 게 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사실 '경쟁'과 '시간'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 있어서 한국 교육이 바뀌었으면 한다.

▲ 박흥수 연구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서열이 없으니 경쟁이 없다"

박흥수 : 하나하나 이야기해보자.

목수정 : '경쟁'을 없애는 건 간단하다. 모든 초·중·고에서 시험을 보지만, 아이들에게 시험 등수를 알려주지 않으면 된다. 등수를 몰라도 누가 제일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아이들은 눈칫밥으로 안다. 하지만 두루뭉술한 아이들이 있지 않나. 그런 애들은 몇 등 하는지 모른다. 내가 우리 아이에게 '00친구는 공부 잘하냐'고 물어보니 '몰라' 이러더라. 그래서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고 물으니 되레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되묻더라. 관심을 굳이 가지지 않으면, 그리고 친구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으면 그 아이가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서열이 없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는 교육과 관련해 아주 쉬운 방법을 쓴다. 나는 한국에서 대학교육까지 다 받지 않았나. 그 모든 교육을 받은 결과, 나 스스로 판단 내린 게 있다. 한국 교육에서 나를 괴롭힌 건 '경쟁’이었다. 선생은 내 옆에 아이가 나보다 공부를 잘하면 '넌 그 아이가 너보다 공부를 잘하는 것을 증오해야 해, 넌 걔를 잡아먹어야 해. 뛰어넘고 싶지 않니? 2등인데, 1등으로 복귀해야 하지 않니'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것이 매우 싫었다. 그러한 경쟁 트랙이 계속됐다. 당시 나는 온몸이 아팠다.

박흥수 : 성적이 좋은 아이들도 상처가 많다. 내가 고등학교 때는 전교 등수를 따져 학교 내 도서관 입실권을 줬다. 지금은 앞자리나 급식실 가는 순서를 성적순으로 서열화한다는 곳도 있다고 하더라. 예나 지금이나 줄 세우는 것을 일상화하는 게 한국 교육이다. 그러다보니 온 사회에서 순위를 매긴다. 회사에서도 1등부터 꼴등까지 승진 순위가 있고, 심지어 술자리 건배사로도 순위를 가린다.

목수정 : 프랑스에선 그런 것을 못 한다. 엘리트 교육을 지양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우리 아이는 클라리넷을 배운다. 프랑스에서는 한 구당 음악특성반이 하나씩 지정돼 있다. 그래서 그 구에 있는 여러 학교 중 그 특성반에 들어가고 싶은 학생이 지원한다. 칼리와 아빠가 솔깃했다. 가면 좋을 거 같다고. 그런데 음악특성반의 지원조건이 특이하다. 첫째가 '기존에 음악을 하고 있지 않을 것'. 둘째가 '음악적 동기가 왕성히 있을 것'이었다.

박흥수 : 음악 하는 학생을 뽑는데, 전혀 음악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조건이 독특하다. 한국 같으면 시험 봐서 음악을 잘하는 애들을 뽑지 않나.

목수정 : 특성반 프로그램은 엘리트 교육을 위해서가 아니다. 음악 천재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악이 학교 교육에서 주는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음악을 통해서 아이들이 학교가 좀 더 즐거워지도록 하기 위해 진행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이 있다. 아이가 클라리넷을 배우러 간 첫날, 악기를 줬다. 학교 교장은 특성반을 졸업할 때까지 악기를 학교에서 제공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공화국 학교에서는 교육을 유상으로 하지 않게 돼 있다'고 하더라.

박흥수 : '공화국'이라는 단어를 프랑스에서 사용하니 어감이 다른 듯하다. 한국과 프랑스는 모두 공화국이지만 한국에 내재화되지 못한 공화국 개념은 낯설게만 느껴진다.

목수정 : 프랑스 사람들은 공화국이란 말을 자주 쓴다.

박흥수 :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학교'와 '군대'다. 그런데 경쟁이 없는 조건이라면 학교는 다시 다니고 싶다.

목수정 : 누구도 자기보다 잘하는 친구가 있다고 조바심내지 않는다. 친구를 칭찬하는데 아무 주저가 없다. 어떤 친구가 잘한다고, '너는 뒤처진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누가 잘하는 게 상관없는 식이다.

박흥수 : 그곳에서의 성적표는 어떻게 나오는가.

목수정 : 중학교에서는 성적표가 컴퓨터 그래픽으로 정교히 나온다. 하지만 이는 누구와 자기를 비교하는 그래프가 아니다. 모두 나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해주는 수치다. 과목별로 그래프가 있는데, 과목별 반 평균이 있고, 내 점수가 있다. 이 그래프를 통해 아이들은 어떤 과목이 반 평균 이하인지, 이상인지, 그리고 내가 어떤 과목을 제일 잘하고 못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신이 '이 과목은 좀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여기에 자질이 있는 건가. 내가 무엇이 부족한가' 이런 생각을 하게끔 해준다. '내가 지난번엔 스페인어를 못 했는데, 이번에는 잘했네' 이런 식이다. 그렇게 그래프를 정교하게 만들어도 내가 몇 등이라는 것은 아이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순수하게 어제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게 하고, 우정을 깨지 않도록 한다. 심지어 음악이든 미술이든, 경연대회가 하나도 없다. 10년을 우리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데 대회 상장이 하나도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 학기 말에 하는 축제와 파티가 전부다.

박흥수 : 아이는 무엇이 하고 싶다고 하나.

목수정 : 우리 아이는 알아서 한다고, 그런 거 물어보지 말라고 한다.(웃음) 그런데 하고 싶은 직업까지는 아니지만 직업 이외의 사회 참여 활동으로 하고 싶은 것은 있는 듯하다. 동물을 구조하는 일을 꼭 하고 싶다고 한다.

▲ 목수정 작가. ⓒ프레시안(최형락)

"한국의 아이들에겐 시간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박흥수 : '경쟁'에 이어 '시간'을 한국 교육에서 바꿨으면 한다고 했다. 프랑스 교육에서의 '시간'은 어떤가.

목수정 : 한마디로 '시간'이 무척 많다. 그리고 그 시간에 아이들을 내버려 둔다. 여름방학 기간이 두 달하고도 열흘이다. 그리고 그 여름방학 이외에도 1년에 방학이 두 주씩 네 번 있다. 9주 공부하면 2주는 무조건 쉬는 식이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는 매주 수요일에는 수업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바뀌어서 중학교까지는 수요일은 오전만 수업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그래서 아이는 클라리넷을 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에는 학원이 없지만 가정교사는 존재한다. 그런데 아이들의 평균 10%가 그런 가정교사를 경험했다고 한다. 주목할 점은 그렇게 가정교사에게 배우는 시간이 1년에 평균 40시간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깐 여름방학 두 달 동안은 아무것도 안 하니. 나머지 10개월 동안 1주일에 1시간씩 가정교사에게 배우는 식인 것이다.

박흥수 : 경쟁이 없는 것도 좋은데, 시간까지 상당히 많이 주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런 조건이면 더욱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딸은 여름방학에도 전교생이 의무등교를 하고 있다. 학교에서 문제 풀이를 하는 식이다. 이 무더위에.

목수정 : 물론, 시간이 많으니 아이들이 딴 짓을 한다. 그런데 그 딴 짓이 항상 나쁜 게 아니다. 가치공동의 테마로 시를 쓰기도 하고, 아이들이 각자 악기를 다룰 줄 아니 조그마한 악단을 만든다든가 그런 식으로 논다. 어디로 소풍을 가는 경우도 누구는 돗자리, 누구는 컵, 누구는 요리 프로그램을 짜는 식이다. 그렇게 아이들이 무궁무진하게 딴 짓을 한다. 바람직한 딴 짓이다. 아이들이 '타이트'하게 짜인 시간 속에서 자투리 시간 30분이 남으면, 무엇을 하겠나. 할 게 게임밖에 없다. 그런데 시간이 무한대로 남으면 그 시간 내에서 유용한 것도 하는 분위기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자유 시간이 있다 해도 부모는 그 자유 시간을 또 짜주려고 한다.

박흥수 : 많은 아이들이 아주 작은 자투리 시간 남으면, 극도의 집중력으로 게임을 한다. 아이들의 자유 시간을 부모가 더 불안해한다. 조금만 노는 기미만 보여도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것처럼 압박한다.

목수정 : 밀가루 반죽을 만들려면 치대야 하지 않나. 그런데 그렇게 치댄 밀가루를 어느 순간에는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다. 발효돼서 맛이 제대로 퍼지게 하기 위해서다. 그 시간은 스스로가 가진 재료들의 맛이 서로 어울려서 제맛을 만들어 내는 시간이다. 그 마술의 시간이 아이들에게도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이들 각자가 가진 천부적 재능이 발효될 시간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리석게도 아이들의 천재성을 죽인다. 매우 기계적인 학습이 진행된다. 이런 것들이 아이들의 기를 질리게 만들고, 제대로 사고하지 못하게 만든다. 프랑스에서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축구도 그렇다. 그런데 이 나라가 이번 월드컵에서 1위를 하지 않았나. (기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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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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